<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04

분타주 개망신 당하다. (4)

등록 2003.04.13 12:50수정 2003.04.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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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곡의 차기 곡주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은 여럿이 있었으나 그 가운데 셋이 각축을 벌이는 중이었다.

청죽수사(靑竹秀士) 이법(李法)과 금의존자(錦衣尊子) 정금보(鄭金寶), 그리고 일흔서생(一痕書生) 노현(盧賢)이 그들이었다.


가장 연장자인 청죽수사는 젊은 나이에 석학이 되어 지금껏 선무곡의 요직을 두루 거친 사람이다.

그가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주변에는 선무곡의 여러 장로와 호법 등 가장 많은 세력이 포진해 있는 후보였다.

금의존자는 선무곡 제일부자의 아들로 태어나 지금껏 고생이라곤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이었다.

그는 막강한 금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모으는 중이었다. 참신성이 부각된 그의 주변에도 제법 세력이 결집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마에 한 줄기 깊은 주름이 있어 일흔서생이라는 외호로 불리는 노현은 빈농(貧農)의 자식으로 태어나 숱한 고난 끝에 학문을 이룬 사람이었다.


그의 주변에도 적지 않은 세력이 있기는 하였으나 셋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부는 진심으로 그를 보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떨어지기를 바라기라도 하는지 연신 흔들어대는 세력이었던 것이다.

선무곡의 나이든 사람들은 셋 가운데 선출 가능성이 가장 놓은 사람은 단연 청죽수사라 하였다.


금의존자와 일흔서생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둘은 서로 연합하기로 하고 이를 대내외에 공포하였다.

이 방법 이외에는 대세를 뒤집을 만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곡도들에게 누가 청죽수사와 자웅(雌雄)을 겨루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일흔서생 노현이 나서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금의존자는 깨끗이 승복하면서 전촉적으로 일흔서생을 밀어주겠다고 대내외에 천명하였다.

덕분에 금의존자의 명성은 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사람들은 다음 번 곡주는 그가 될 것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선무곡 역사상 여러 번 곡주를 선출해 보았지만 이 같은 경우는 전무하였기에 곡도들은 이를 상당히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그 결과 대세는 일흔서생 쪽으로 삽시간에 옮겨갔다.

선무곡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둘만 있으면 이번 곡주 선출문제에 대하여 갑론을박(甲論乙駁)을 나누었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선무곡 최대의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곡주를 위시한 수뇌부들이 날이면 날마다 붕당 싸움을 하느라 곡도들을 위해 한 일이라곤 거의 없었다.

따라서 누가 곡주가 되건 다 똑같다면서 무관심해 하였는데 이번엔 달라졌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대세가 일흔서생에게 기운 가운데 드디어 내일이면 곡주를 선출하는 날이 되었다. 이날 선무곡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저녁 무렵 느닷없이 금의존자 정금보가 일흔서생 노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선포한 것이다.

일흔서생에게 있어 이것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흥미롭게 곡주 선출 과정을 지켜보던 이회옥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 하였다. 그러던 중 분타주의 나직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안색이 돌변하였다.

"바보 같은 놈! 네깟 놈이 감히 본성에 반기를 들어? 흥! 어림도 없는 수작. 네놈은 이제 끝이야. 크크! 본성이 가만히 있을 줄 알았지? 크흐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절대 곡주가 못 되지."

'으음! 그랬군, 그랬어…! 이러면 안 되는데…'

현재 분타주 집무실 앞에서는 마차에 치어 죽은 두 소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연일 항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동시에 조사전 터에 전각과 마구간을 짓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면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중이었다.

이 두 가지가 이번 곡주 선출과 미묘하게 맞물려간다는 느낌에 흥미를 느끼던 차였다. 듣자하니 전에는 곡주가 되려면 누가 더 무림천자성과 가까운지 자랑하여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후보들은 누가 더 무림천자성에 당당하게 맞서서 권익을 회복할 것인가를 다투는 듯 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분타주의 발언이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이러던 차에 선무곡 내에는 이상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무림천자성에서 일흔서생이 말을 안 들을 것 같자 일부러 낙선시키려 금의존자에게 협박을 가했을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금의존자가 지지를 철회하면 패색이 짙던 청죽수사가 다시 대세를 회복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회옥은 이런 추측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외한인 자신이 보아도 금의존자의 지지철회가 일흔서생에게 미칠 파장이 엄청나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패배할 것이라 믿어지던 일흔서생이 신임 곡주로 선출된 것이다. 비록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薄氷)의 연속이었지만 결국은 당당한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처음엔 청죽수사가 승리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상황이 갑작스럽게 뒤집어진 것이다.

이회옥이 보기엔 곡내를 떠돌던 청죽수사에 대한 안 좋은 여러 소문과 마차에 치어 죽은 두 소녀 때문에 발생된 무림천자성에 대한 반감이 빚어낸 결과였다.

다음 날, 청죽수사는 눈물을 흩뿌리며 다시는 곡주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물러섰다.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금의존자는 소문에 대한 가타부타 일언반구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망연자실한 사람들은 희색이 만면한 채 승리를 자부하던 청죽수사와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선무분타 분타주 역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 후보 가운데 무림천자성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 신임 곡주가 된 때문이다.

선무곡에서는 누구든 곡주가 되고 싶으면 후보 시절에나 그전에라도 한번쯤은 무림천자성에 들려야 하였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누가 더 무림천자성과 친분이 두터운지를 자랑하였다.

지금까지는 이것이 곡주가 되는 거의 필수적인 요건이었다.

선무곡 사람들은 곡주와 무림 최강의 문파인 무림천자성과의 친분이 유사시에 선무곡을 보호해 준다고 믿은 것이다.

신임 곡주는 취임을 하자마자 무림천자성에 인사를 하러 가는 것이 관례였다. 물론 성주를 알현하고 충성을 맹세함으로서 자리를 좀더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기에 선무곡의 곡주는 장문인이기는 하지만 무림천자성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사실 선무곡은 무림천자성의 쉰한 번째 지부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이번에도 무림천자성은 미리 충성을 맹세한 청죽수사를 전폭적으로 밀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엔 금의존자로 하여금 지지를 철회토록 은밀히 손을 썼다. 그런데도 일흔서생이 된 것이다.

일흔서생은 단 한번도 무림천자성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충성을 맹세한 적도 없다. 그리고 셋 가운데 분타 지위 협정서를 개정하라는 목청을 가장 돋궜던 사람이다.

후보 시절 유세할 때에는 무림천자성에 인사만 하러 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사람이었다.

분타주로서는 앞으로의 일이 갑갑했다.

현재 그에게 내려진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늘 도발적인 책동을 일삼는 북선무곡, 즉 주석교를 가장 가까이에서 감시하면서 이에 대한 선무곡 내의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곡주에게 자신의 의사만 전하면 알아서 여론을 만들어갔다. 그렇기에 더 없이 편한 자리였다.

얼마 전, 총단에서는 어떻게든 선무곡과 주석교를 대결 구도로 몰고 가라는 지시가 있었다. 식량 부족 등의 사유로 주석교가 헛된 짓을 자행하면 단번에 쓸어버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청죽수사를 밀어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려는 이유는 무림천자성의 힘을 만천하에 보여줄 명분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도발하려던 다른 문파들로 하여금 스스로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리게 할 목적이었다.

혹자는 마도무림의 쌍두인 일월마교나 화존궁과 상대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무림천자성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하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주석교의 경우는 다르다.

아주 작은 문파이기에 손톱으로 벌레를 눌러 죽이듯 그렇게 제압할 수 있다. 따라서 무림천자성으로서는 아주 작은 손해만 입고도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대결 구도로 몰고 가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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