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아우르는 화순 임대정 원림

선인들의 여유자적하는 삶을 엿볼 수 있어

등록 2003.04.15 00:06수정 2003.04.2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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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두 연못 사이로 벚꽃이 활짝 피었다.

두 연못 사이로 벚꽃이 활짝 피었다. ⓒ 최연종

화순군 남면 사평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임대정(臨對亭)이란 정자가 있다. 정자 앞에는 두 개의 아담한 연못이 있고 못 주위로 벚나무, 수양버들, 배롱나무가 정자를 감싸며 원림(園林)을 이룬다. 정자 건너편에 맑은 사평천이 흐르고 동쪽으로 봉정산이 위치해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활용한 전통적인 정원이다.

못 주위로 벚꽃이 활짝 피어 봄의 색깔이 물씬 풍긴다. 벚꽃 사이로 정자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양 못 사이로 난 둑길을 따라가다 돌계단을 오르면 방지(方池)라는 작은 못이 있는데 방지에 물이 넘치면 나무 홈통을 따라 아래 연못으로 떨어지도록 했다.


방지 뒤쪽에는 대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어 정원의 소쇄한 멋을 자아낸다. 방지 한가운데 돌에 새겨진 세심(洗心)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물욕을 버리고 청렴하게 살아온 옛 선비들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듯 하다.

a 벚꽃 사이로 임대정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벚꽃 사이로 임대정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 최연종

임대정은 사애(沙崖) 민주현(閔胄顯,1808∼1882) 선생이 원림을 만들고 여생을 지낸 곳이다. 이 곳은 옛부터 풍광이 빼어나 선조때 고반(考槃) 남언기(南彦紀)가 정자를 세우고 수륜대(垂綸臺)라 이름지었다. 그 뒤 버려지다시피 한 정원을 사애 선생이 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면서 임대정이라 고쳐 불렀다.

송나라 시인 주돈이의「종조임수대여산(終朝臨水對廬山)=아침내내 물가에서 여산을 대한다」이라는 시구에서 따와 임대정을 취한 것이다. 사애 민주현은 조선말기 학자로 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고종 때 병조참판과 좌승지를 지냈다. 홍직필, 기정진 등으로부터 두루 사사했고 기우만 등과 교류하며 학문을 논했다.

a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는 임대정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는 임대정 ⓒ 최연종

국방에 조예가 깊었는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10만의 병력을 양성할 것을 주장하며 고종에게 상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고종에게 보낸 서찰, 상소문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고향에 돌아와 1862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임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자 안에는 시문(詩文)을 기록한 20여 개의 현판이 있으며 1985년 전남도 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됐다. 임대정은 충효를 가르치는 서당으로도 활용됐고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시를 짓기도 했다.

a 아래 연못에서 연과  백일홍이 조화를 이룬다.

아래 연못에서 연과 백일홍이 조화를 이룬다. ⓒ 최연종

임대정을 이전에 수륜대라 불렀는데 이는 정자 아래의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한가로움을 즐긴다는 의미. 선조들의 여유자적하는 삶을 엿볼 수 있다. 임대정 아래에는 위 아래로 두개의 못을 만들고 못의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그 위에 백일홍을 심었다.


양 못에는 또 연꽃을 심었는데 윗 못에는 백련을, 아래 못에는 붉은 연을 심어 여름이면 붉고 흰 연꽃이 앞 다투어 피게 했다. 이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윗 못의 물은 수구(水口)를 통해 연결돼 아래 연못으로 흘러든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엔 연꽃과 백일홍이 못 주위를 감싸며 임대정을 수놓는다. 잎사귀를 연둣빛으로 물들이며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도 이 곳의 운치를 더한다. 여름에는 정자건너편에 사평천의 큰물이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준다. 뿐만 아니라 가을엔 드넓은 사평 들녘은 누렇게 익은 벼들로 황금물결을 이루며 겨울이 오면 하얗게 뒤덮인 들판이 장관을 이룬다. 사애 민주현의 시에는 임대정의 운치가 잘 나타나 있다.

a 연못 주위를 감싸고 있는 벚꽃

연못 주위를 감싸고 있는 벚꽃 ⓒ 최연종

은행나무 그늘아래 작은 정자 새로 지어
그 가운데 깊은 자취 빼어나 금하기 어려워라
회포를 논할때에 먼 벗이 이르렀고
자리를 다투어 들 노인이 찾아왔도다
여름날 맑은 바람이 나무 끝에 나오고
가을이 오니 흰 달은 못 마음에 있도다
산을 대하고 물에 임하니 지취가 무한데
머름 위에 무릎 보듬고 읊음이 무방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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