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가 니 피보다 더 달고 맛있는갑다"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70> 미나리

등록 2003.04.21 16:52수정 2003.04.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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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악 수확을 하고 있는 미나리꽝

마악 수확을 하고 있는 미나리꽝 ⓒ 이종찬

"미나리가 자꾸만 나를 부르네."
"그래. 미나리는 쌈장에 찍어먹으면 더 맛있다?"
"그럼 쌈장에 한번 찍어줘 봐."
"자아~ 어때?"
"훨씬 더 맛있어."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그러니까 비음산으로 올라가는 길목 양편에는 두어 마지기 남짓한 미나리꽝이 있다. 그 미나리꽝은 창원이 공업도시로 탈바꿈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어린 날, 내가 비음산으로 나무를 하러가다가 꽁꽁 얼어붙은 그 미나리꽝에서 그 동네 사는 아이들이 손수 만든 스케이트를 타고 놀던 모습을 여러 번 보았으니까.

지난 일요일, 둘째딸 빛나를 데리고 비음산 자락에 올망졸망 붙어있는 다랑이논과 과수원 근처로 산보를 갔다. 근데 그 미나리꽝에서 6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머리에 노란 수건을 쓰고 그 싱싱한 미나리를 베고 있었다. 낫질이 익숙한 할머니들의 손에서 가지런하게 베어지는 밑둥이 허연 그 미나리를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더구나 미나리를 베고 있는 할머니의 며느리 같은 30대 중반의 아낙네가 마악 베어낸 그 미나리를 물꼬 같이 졸졸졸 흐르는 맑은 도랑물에 한가닥 한가닥 깨끗하게 씻고 있는 것을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그 미나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아주머니! 그 미나리 팔아요?"
"말만 하이소. 얼마든지 드릴 끼니까."
"한 끼 먹으려면 얼마나 사야 돼요?"
"천 원어치 정도 사모(사면) 네 식구가 충분히 묵고도 남을 낍니더."
"그럼 천원 어치만 주세요."
"집에 가서 한번 더 씻고 드이소."

a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미나리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미나리 ⓒ 이종찬

그랬다. 미나리처럼 싱싱한 미소를 품은 그 아낙네가 건네주는 미나리는 생각보다 훨씬 양이 많았다. 큰 비닐봉지가 터지도록 가득 담아주는 그 미나리에서는 상큼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그날 나는 미나리 천 원 어치를 사면서 돈 천 원의 위력이 그렇게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롭게 깨쳤다.


"아빠! 나도 나중에 미나리쌈이랑 밥 먹을래."
"그래. 빛나는 뭐든지 잘 먹으니까 그렇게 건강하지."
"근데 미나리는 먹어도 살 안 찌지?"
"그럼. 미나리를 많이 먹으면 얼굴이 얼마나 이뻐지는데."

그날 저녁, 내가 싱크대에서 그 살찐 미나리를 씻기 시작하자 미나리 향기를 맡은 빛나가 어느새 쪼르르 달려와 미나리 한가닥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가 금세 미나리가 자꾸만 나를 부른다, 며 또다시 쪼르르 달려나와 미나리 한가닥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연신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언니는 미나리 먹을 줄 모른대."
"그래. 그러면 아빠랑 빛나랑 다 먹자."
"아싸!"

그래.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우리 마을 시냇가 옆에도 꽤 넓은 미나리꽝이 있었다. 그 미나리꽝은 우리 동네 터줏대감인 오씨네 소유였다. 하지만 봄이 오면 우리 마을 어머니들께서는 누구나 그 미나리꽝에 나가서 미나리를 벴다. 왜냐하면 곧 이어 시작될 모내기철을 대비한 일종의 품앗이였던 셈이었다.

미나리를 베는 날, 마을 어머니들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찢어진 스타킹을 정갱이까지 끌어올린 채 낫을 들고 미나리꽝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그 미나리꽝에는 거머리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 실제로 스타킹을 신고 미나리꽝에 들어가면, 스타킹이 미끄러운 탓인지는 몰라도 거머리가 잘 들러붙지 못했다.

"에헤! 이 아까운 피로 거머리 녀석이 다 빨아묵고 있네."
"왕거머리란 요놈도 앵금통처럼 참으로 지독하기도 하제. 하필이면 핏기 하나 없이 바싹 마른 니 종아리에 드러붙을 끼 뭐꼬."
"죄끔 남은 내 피가 니 피보다 더 달고 맛있는갑다."

그 미나리꽝에는 두 종류의 거머리가 살고 있었다. 하나는 까만색을 띤 얇고 긴 거머리였고, 다른 하나는 누르스럼한 빛을 띤 제법 굵고 통통한 거머리였다. 근데 누르스름한 빛을 띤 그 거머리가 문제였다. 그 거머리는 스타킹을 두겹이나 신어도 마을 어머니들의 종아리에 악착같이 들러붙어 피를 빨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거머리를 왕거머리라고 불렀다.

왕거머리는 한번 종아리에 들러붙었다 하면 손으로 잡아당겨도 몸뚱이만 쭉쭉 늘어지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피도 엄청나게 많이 빨아 먹었다. 어떤 왕거머리는 얼마나 피를 많이 빨아먹었던지 그 긴 몸뚱이가 통통하게 오므라들어 슬쩍 손만 갖다대도 저절로 떨어지기도 했다.

"똥구녕을 디비뿌라(뒤집어라)."
"왕거머리는 똥구녕을 디비기만 해가꼬 안된다. 뜨거운 자갈 위에 올리가꼬 말라(말려) 지기야(죽여야) 끝장난다카이."
"이 봐라! 일마 이거는 울매나 피로 많이 빨아묵었는지 피 칠갑이다."

a 금방 베어낸 미나리를 도랑물에 씻고 있는 아낙네들

금방 베어낸 미나리를 도랑물에 씻고 있는 아낙네들 ⓒ 이종찬

그랬다. 우리들은 얇은 대꼬챙이를 배가 통통한 그 왕거머리들의 빨판에 끼워넣었다. 그리고 왕거머리의 속내가 뒤집어질 때까지 대꼬챙이를 계속 밀어넣었다. 그러면 이내 왕거머리의 속내가 뒤집어지면서 벌건 핏덩이가 묻어 나왔다. 그런 다음 그 왕거머리를 뜨거운 조약돌 위에다 올려놓고 진종일 햇살에 말렸다.

점심나절이 다가오면 들에 나갔던 마을 아버지들은 집으로 가지 않고 미나리꽝 근처에 짚단을 깔고 앉아 그 싱싱한 미나리를 안주 삼아 허연 막걸리를 마셨다. 마을 어머니들도 종아리에 피를 흘리면서 짚단을 깔고 앉아 그 파아란 미나리 위에 밥과 된장을 듬뿍 듬뿍 올렸다. 그리고 양 볼이 터지도록 입에 집어넣기에 바빴다.

"빛나야! 꼭꼭 씹어 먹어라. 잘못 먹으면 체한다."
"근데 아빠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거만 먹어."
"철따라 나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거란다."

그날, 나는 빛나와 함께 그 싱싱한 미나리쌈을 그때 그 마을 어머니들처럼 양 볼이 터지도록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그때 그 마을 아버지들처럼 허연 막걸리를 한잔 쭈욱 들이켰다. 그래. 창원공단 조성으로 사라져버린 내 고향의 흔적들은 그렇게 싱싱한 미나리쌈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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