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정선 숙암으로 소풍을 가서 애가 없을 때였다박철
아내가 어제 동네 총각 결혼식을 다녀오면서 차 안에서 내내 회 타령을 합니다. 나의 아내는 키도 작고 체구도 작고 평소에 식탐이 없는 여자입니다. 나이가 올해 마흔 여덟입니다. 적은 나이도 아니지요.
지금부터 16년 전, 우리가 강원도 정선에서 살던 때였습니다. 그때 나는 정선 아라리의 한줄기인 ‘덕송리’라는 동네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우리 내외에겐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마당에 나가 서면 어스름한 새벽, 아직도 별빛이 그대로 남아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날을 비쳐주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앞강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내 가슴 깊숙히 전달되어, 나는 하느님께 내 인생의 전부를 바쳐도 조금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설이 지난 지 며칠 안 되어 아내는 갑자기 회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민물고기 회가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름철에는 가끔 민물고기를 잡아 회를 쳐 초장에 찍어 먹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아내는 한 저름 먹으면 끝이었습니다. 그러던 여자가 영하 10도의 날씨가 계속되는 한겨울에 민물고기 회가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 여자가, 시골에서 고생하고 살더니 미쳤나?” 그런 한심한 생각도 했습니다. 나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 동네에서 물고기를 제일 잘 잡는다는 아저씨를 찾아가서 겨울철에 어떻게 하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냐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연숙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도사님예! 어째 정신이 잘못된 거 아닌기요. 아니 한겨울에 얼음이 꽝꽝 얼었는디 어데서 고길 잡는다 말이오.”
“얼음을 깨고 보쌈을 놓으면 어떨까요?”
“미친 짓이오. 어데 얼음물에 보쌈을 놓는다고 고기가 들겠소?”
연숙이 아버지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는 투로 나를 나무랐습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보쌈 차비를 했습니다. 스텐이나 양은대접 안에 밥덩이와 된장을 으깨어 붙이고 못쓰게 된 헝겊으로 아구를 두르고 고무줄로 묶고, 아구에는 동전보다 조금 큰 구멍을 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