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민들레교회 이야기

내게 참자유의 의미를 가르쳐 주신 북산(北山) 최완택 목사님

등록 2003.04.24 06:23수정 2003.04.2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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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민들레 홀씨가 바람이 불면 날아갈듯 하다
2003년 민들레 홀씨가 바람이 불면 날아갈듯 하다박철

속상해 아무도 작은이의 소리에 관심도 없고
귀도 기울이지 않아 아침이슬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청초한 새날을 꿈꾸려니 쉽게 넘나들 수 없는 자유를 위해
속 알맹이 터뜨려 한 마리 나비의 비상을 노래하려니
마음이 아프잖아 언제부터 작은 것은 모조리 성가신
것으로 생각할 줄이야 방긋한 미소 생명의 기운 물씬한
대지의 정직함도 소용없는 일로 간주하다니
너무 속상해 언제 노고지리의 노랫소리가
온갖 풀벌레의 사랑의 화음이 모든 이의
가슴으로 스며들지는 몰라몰라 몰라 난 몰라
아무런 고민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거대한 불신의 벽
철조망같이 서슬 퍼런 냉기를 뛰어넘어
한 마리의 비상하는 나비가 되어 모든 이의 가슴에
따스한 온기로 남아 뿌리를 내릴 수 만 있다면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누가 내 아픔을 이해해 주고
함께 사랑의 노랠 부를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정말 좋겠는데.
(박철 詩. 민들레 마음)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님께서는 손수 필경을 하신 ‘민들레교회 이야기’를 격주로 보내주십니다. ‘민들레교회이야기’는 올해 540회째 발행되고 있습니다. 나는 목회 초년병 시절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민들레 교회 이야기’를 벗 삼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들레 교회 이야기’의 정신은, 역시 민들레에 있습니다. 민들레는 들꽃입니다. 민들레는 작은 꽃이 여러 개가 모여 한 송이 꽃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데서고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꽃은 그 전체가 하나의 꽃이 아니라, 200여개의 낱 꽃이 모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낱 꽃은 꽃받침, 꽃잎, 암술, 수술 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꽃입니다. 민들레의 뿌리는 하나로 된 굵고 곧은 부분의 원뿌리와 수염 같은 겉 뿌리로 되어 있으며 땅속 깊이 뿌리는 내려서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습니다.

2003년 민들레가 마른 풀 섶 사이로 오롯이 피어올랐다
2003년 민들레가 마른 풀 섶 사이로 오롯이 피어올랐다박철

그리고 민들레꽃은 아침 해를 맞으면 피기 시작하여 낮 동안 계속 피었다가 저녁이 되면 오므라드는 감광성현상이 있습니다. 민들레는 겨울 땅 속에서 뿌리상태로 추위를 이기고 봄이 되면 새잎과 꽃대를 내고 꽃을 피웁니다.

우리나라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는 흰 민들레, 좀 민들레, 서양 민들레, 산 민들레 등이 있으며 대부분 평지의 산과 들에서 야생으로 자랍니다. 요즘 나른하고 입맛이 없을 때, 민들레를 뿌리 채 캐서 뜨거운 물에 살짝 대쳐 초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입안에 쓴맛이 돌며 개운하고 식욕이 다시 생깁니다.


한방에서는 꽃 피기 전의 식물체를 포공영(蒲公英)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열로 인한 종창, 유방염, 황달 등에 효과가 있으며, 열로 인해 소변을 못 보는 증세에도 사용합니다. 민간에서는 젖을 빨리 분비하게 하는 약재로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민들레의 가장 큰 특징은 왕성한 생명력과 자생력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 마당을 작년에 아스팔트로 포장을 했는데, 그걸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울 정도입니다. 또 민들레 꽃 하나하나에 홀씨를 가지고 있어 바람이 불면 민들레 홀씨가 천지사방으로 날아갑니다. 씨가 떨어진 곳에는 또 민들레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웁니다. 민들레는 건조하고 메마른 박토(薄土) 위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예전에 ‘민중’에 대한 담론이 유행하던 시절 잡초와 민들레를 민중의 상징으로 해석한 사회학자도 있습니다.


1995년 융건능에서. 북산이 명상에 잠겨 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일까?
1995년 융건능에서. 북산이 명상에 잠겨 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일까?박철

나의 존경하는 선배 북산(北山) 최완택 목사님이 기존의 제도권 교회를 뛰쳐나와 손수 ‘민들레교회’를 창립하여 지난 25년동안 초지일관 민들레 정신으로 살아오셨습니다. 겉 외양은 우스개 소리로 소장수같이 우락부락하지만 그의 마음은 샘물같이 맑고 자상합니다.

또 당신 스스로 민들레 홀씨가 되어 천지사방 날아다니길 좋아하십니다. 우리나라 어느 산이고 산의 품에 안겨 하느님을 만나고, 또 수많은 도반(道伴)들을 불러내서 당신이 만나고 경험한 세계를 골고루 나누어 주십니다. 최 목사님은 산에 오르실 때 ‘느릿느릿’ 굼뜨신 것 같지만, 산행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일일이 챙겨주시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람 많이 모이는데 가는 걸 제일 싫어하시고, 어디 한 군데 의탁하여 자신의 치적을 쌓는다든지 유명세를 탄다든지 하는 걸 몸서리 칠 정도로 싫어하십니다.

북산 최완택 목사님은 지난 25년동안 540회 걸쳐 손수 당신의 육필로 ‘민들레교회 이야기’를 쓰셨습니다. 그걸 페이지로 환산하면 거의 1만5천 페이지가 됩니다. 한 페이지 당 20분 정도 걸렸다고 계산하면 대략 30십만 분의 시간이 걸렸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계산이 복잡해서 아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30십만 분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5천 시간이 나오고, 5천 시간을 날짜로 계산하면 대략 209일이 됩니다. 한 시간도 쉬지 않고 209일을 꼬박 쓰신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글자 한 자 한 자에 담겨 있는 목사님의 정성을 어찌 필설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글씨가 한 자 한 자 매우 정연되었었는데, 지금은 조금은 날려 쓴 듯하지만, 그래도 글자 한 자 한 자에 정성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만큼 최 목사님도 늙어 가시는 모양입니다. 여직 그 흔한 손전화도 없으시고, 자동차 운전도 할 줄 모르십니다. 문명의 이기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계십니다. 목사님의 독특한 생활철학은 후배들이 감히 범접(犯接)할 수 없습니다.

1995년 외우 장병용목사와 북산이 망연히 불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1995년 외우 장병용목사와 북산이 망연히 불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박철

내가 올해 목사가 된지 14년이 되었습니다. 내가 목사안수를 받았을 때 최 목사님은 내 머리에 손을 얹어주셨습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북산(北山) 최완택 목사님을 사석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10년이 넘는 대 선배 목사님이시지만 그 분은 언제나 우리들의 형님이십니다. 목소리가 마이크에 대고 하는 것처럼 왕왕하고, 특유의 달변과 웃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 같은 매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최 목사님을 따릅니다. 그것이 참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혹, 최 목사님께서 못난 후배의 글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고 나중이라도 야단을 치시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최 목사님을 존경하고, 그 분에게 깍듯한 예를 갖추어 대함에는 추호의 거짓이 없습니다. 그 점을 목사님도 이해해 주실 줄 믿습니다.

‘민들레 교회 이야기’에 대한 나의 잊지 못한 추억이 있습니다. 한 10년 전 쯤, 내가 경기도 화성군 남양에서 목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민들레 교회에서 최 목사님이 인도하는 화요성서연구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 참석해서 성경공부를 하고 최 목사님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헤어진 후 서울 신도림에서 수원 가는 마지막 지하철을 탔는데, 막 졸음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수원까지 가려면, 한참을 가야 하니 잠시 눈을 부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는데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에 잠이 깨어 이제 수원 종점에 다 왔나보다 해서 눈을 떳더니, 수원역이 아니라 청량리 역이었습니다. 수원 가는 열차를 탄 것이 아니라 청량리 행 열차를 탔던 것입니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넘었고 몸은 고단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습니다. 주머니를 살펴보니 5천원이 있었습니다. 물론 택시를 잡아타고 잠실 처갓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늦은 밤, 배가 출출해서 청량리 간이식당에서 우동을 한 그릇 사먹고 청량리 역 광장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그 때가 6월 초여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도 되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자 긴장도 풀리고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밤하늘을 쳐다보니 거의 보름달에 가까울 정도로 둥근 달이 떠올랐습니다. 공연히 가슴이 뭉클해지고 나도 모르게 내 속으로부터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나는 한참동안 보름달을 쳐다보며 울었습니다.

청량리역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몸을 파는 아가씨들이 남자들을 유혹하는 모습, 술 취한 취객들의 노랫소리, 열대여섯 명 쯤 되는 노숙자들이 잠이 안 오는지 서성거리는 모습, 나도 그 속에 내 몸을 맡기기로 하고 더 이상 졸음을 견딜 수 없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웠습니다.

2003년 민들레교회 이야기. 지금까지 격주로 540회가 발행되었다
2003년 민들레교회 이야기. 지금까지 격주로 540회가 발행되었다박철

6월의 한밤중 조금 추운 듯 했습니다. 아무 것도 덮을게 없었습니다. 그때 내 주머니에 ‘민들레 교회 이야기’들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걸 한 장 한 장 다 펴서 덮고, 얼굴을 가리고 잠을 잤습니다. 한 없이 평온한 자유가 밀려왔습니다.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님은 나에게 자유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지금 어줍잖은 목회랍시고 어디에도 기웃거리지 않고, 이만큼 나를 지켜내고, 민들레 마음을 품고 살아온 모든 것은 다 최완택 목사님 덕분입니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통해 그간 540 통의 ‘민들레교회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내 몸 안에 ‘자유혼’(自由魂)이 배어 있습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보이지 않는 가장 큰 흔적입니다.

오늘 나는 산책을 하면서 수많은 민들레로부터 인사를 받았습니다. 최완택 목사님이 뿌려놓은 민들레 홀씨가 가는데 마다 뿌리를 내려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자유의 의미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2003.3.16 민들레교회 이야기 중

사순절 순례의 길은 물론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우리 앞서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고행의 길이 아니라 당연히 자유의 길입니다. 사순절 길을 가는 기독교인은 벗어야 할 것들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자유인이 되어 자유의 하늘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께 이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발걸음도 가볍게 거침없이 걸어갑니다. 행리(行李)를 가볍게 하고 신들메를 단단히 매고 걸어갑니다. 사랑과 자유를 몸으로 살며 걸어갑니다. 주님의 우정을 몸으로 살며 걸어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걸어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힘을 얻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동안 얻어가진 모든 짐들을 그대로 진채 허덕이며 기다시피 걷기도 하고, 아예 떠나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길을 간다고 하면서 모든 짐들을 그대로 진채 허덕이는 사람들과 아예 떠나지도 못한 사람들은, 자유행보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거울을 삼기는커녕 오히려 비난하고 속상해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무거운 짐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자기 욕심과 허영으로 빚은 것도 있지만, 관습(버릇), 전통, 교리, 웃기는 기득권 따위도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예수 잘 믿고 있다는 오만함’은 거의 대책이 없기도 합니다. 자기 행동거지는 그야말로 제 멋대로 이면서도 남을 비난하고 못마땅해 하는 짓은 선수 따로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얼른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코 버릴 수 없고, 끝끝내 이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최완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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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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