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외우 장병용목사와 북산이 망연히 불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박철
내가 올해 목사가 된지 14년이 되었습니다. 내가 목사안수를 받았을 때 최 목사님은 내 머리에 손을 얹어주셨습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북산(北山) 최완택 목사님을 사석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10년이 넘는 대 선배 목사님이시지만 그 분은 언제나 우리들의 형님이십니다. 목소리가 마이크에 대고 하는 것처럼 왕왕하고, 특유의 달변과 웃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 같은 매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최 목사님을 따릅니다. 그것이 참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혹, 최 목사님께서 못난 후배의 글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고 나중이라도 야단을 치시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최 목사님을 존경하고, 그 분에게 깍듯한 예를 갖추어 대함에는 추호의 거짓이 없습니다. 그 점을 목사님도 이해해 주실 줄 믿습니다.
‘민들레 교회 이야기’에 대한 나의 잊지 못한 추억이 있습니다. 한 10년 전 쯤, 내가 경기도 화성군 남양에서 목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민들레 교회에서 최 목사님이 인도하는 화요성서연구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 참석해서 성경공부를 하고 최 목사님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헤어진 후 서울 신도림에서 수원 가는 마지막 지하철을 탔는데, 막 졸음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수원까지 가려면, 한참을 가야 하니 잠시 눈을 부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는데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에 잠이 깨어 이제 수원 종점에 다 왔나보다 해서 눈을 떳더니, 수원역이 아니라 청량리 역이었습니다. 수원 가는 열차를 탄 것이 아니라 청량리 행 열차를 탔던 것입니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넘었고 몸은 고단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습니다. 주머니를 살펴보니 5천원이 있었습니다. 물론 택시를 잡아타고 잠실 처갓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늦은 밤, 배가 출출해서 청량리 간이식당에서 우동을 한 그릇 사먹고 청량리 역 광장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그 때가 6월 초여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도 되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자 긴장도 풀리고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밤하늘을 쳐다보니 거의 보름달에 가까울 정도로 둥근 달이 떠올랐습니다. 공연히 가슴이 뭉클해지고 나도 모르게 내 속으로부터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나는 한참동안 보름달을 쳐다보며 울었습니다.
청량리역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몸을 파는 아가씨들이 남자들을 유혹하는 모습, 술 취한 취객들의 노랫소리, 열대여섯 명 쯤 되는 노숙자들이 잠이 안 오는지 서성거리는 모습, 나도 그 속에 내 몸을 맡기기로 하고 더 이상 졸음을 견딜 수 없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웠습니다.
▲2003년 민들레교회 이야기. 지금까지 격주로 540회가 발행되었다박철
6월의 한밤중 조금 추운 듯 했습니다. 아무 것도 덮을게 없었습니다. 그때 내 주머니에 ‘민들레 교회 이야기’들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걸 한 장 한 장 다 펴서 덮고, 얼굴을 가리고 잠을 잤습니다. 한 없이 평온한 자유가 밀려왔습니다.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님은 나에게 자유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지금 어줍잖은 목회랍시고 어디에도 기웃거리지 않고, 이만큼 나를 지켜내고, 민들레 마음을 품고 살아온 모든 것은 다 최완택 목사님 덕분입니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통해 그간 540 통의 ‘민들레교회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내 몸 안에 ‘자유혼’(自由魂)이 배어 있습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보이지 않는 가장 큰 흔적입니다.
오늘 나는 산책을 하면서 수많은 민들레로부터 인사를 받았습니다. 최완택 목사님이 뿌려놓은 민들레 홀씨가 가는데 마다 뿌리를 내려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자유의 의미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 | 2003.3.16 민들레교회 이야기 중 | | | | 사순절 순례의 길은 물론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우리 앞서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고행의 길이 아니라 당연히 자유의 길입니다. 사순절 길을 가는 기독교인은 벗어야 할 것들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자유인이 되어 자유의 하늘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께 이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발걸음도 가볍게 거침없이 걸어갑니다. 행리(行李)를 가볍게 하고 신들메를 단단히 매고 걸어갑니다. 사랑과 자유를 몸으로 살며 걸어갑니다. 주님의 우정을 몸으로 살며 걸어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걸어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힘을 얻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동안 얻어가진 모든 짐들을 그대로 진채 허덕이며 기다시피 걷기도 하고, 아예 떠나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길을 간다고 하면서 모든 짐들을 그대로 진채 허덕이는 사람들과 아예 떠나지도 못한 사람들은, 자유행보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거울을 삼기는커녕 오히려 비난하고 속상해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무거운 짐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자기 욕심과 허영으로 빚은 것도 있지만, 관습(버릇), 전통, 교리, 웃기는 기득권 따위도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예수 잘 믿고 있다는 오만함’은 거의 대책이 없기도 합니다. 자기 행동거지는 그야말로 제 멋대로 이면서도 남을 비난하고 못마땅해 하는 짓은 선수 따로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얼른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코 버릴 수 없고, 끝끝내 이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최완택 목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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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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