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15

천하제일지 화담 홍지함 (5)

등록 2003.04.24 13:56수정 2003.04.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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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그대로 제왕비에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네."
"비밀이요?"

이회옥의 눈빛은 일순 빛을 발하였다. 비밀이라는 말만 붙으면 누구나 다 궁금해하듯 그도 그랬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 품에 제왕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렇네. 아까 장군께서 어떻게 금강불괴를 이루셨는지를 말해 준다고 그랬지?"
"예!"

"바로 제왕비가 있었기 때문이네. 거기엔 금강불괴가 되는 비법이 담겨 있다고 하네. 그래서 그것을 찾으려는 거지."
"그, 그래요?"

이 순간 이회옥의 음성은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장군이 돌아가신 후 오래 동안 제왕비는 강호에 나타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네. 그런데 얼마 전에 그것이 발견되었네."
"예에…?"

이회옥은 품속에 제왕비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들키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뭘 그렇게 놀라나?"
"예?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흠! 그런가? 어쨌거나 그것은 한두 자루가 아니라 여러 자루였네. 지금껏 발견된 것만 해도 이십여 자루나 되지."
"예에? 이, 이십여 자루요?"


"그렇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가짜였네. 우리는 그것의 출처를 은밀히 조사한 바 있네. 그 결과 그것들 모두가 무림천자성의 차기 성주가 될 철기린에게서 하사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가짜요? 철기린이요?"

"그렇네. 본가의 시조는 이정기 장군 휘하의 막장(幕將)이셨네. 그분께서는 임종하시기 전에 반드시 제왕비를 지닌 자를 찾아 목숨을 거두라 하셨네. 놈 때문에 장군의 크나 큰 뜻이 일보 직전에서 좌절되었기 때문이지. 하여 지금껏 제왕비를 추적하였네"

이야기는 점점 점입가경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이회옥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무림천자성의 성주 일가는 구(九) 씨이네. 그리고 거기서 가짜 제왕비가 나왔지. 하여 본가에서는 무림천자성 성주의 조상이 바로 구판걸일 것이라고 판단하였네."
"으으음!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어쨌거나 가짜 제왕비를 만들려면 제왕비의 본 모습을 보지 않고는 곤란하지. 그것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은 본가 밖에 없네. 그런데 우리가 가짜를 만들지 않았으니 가짜를 만든 놈들이 진품을 지녔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지."
"그, 그렇군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었네. 그것은 바로 진짜 같은 모조품을 만들 능력이 있는 자를 찾아보는 것이지. 그래서 본가에서는 솜씨 좋은 장공들을 모두 찾아보았네."
"그래서요?"

"그같이 정교한 모조품을 만들 능력은 단연코 천하제일 장공이라 일컬어지던 묘수신장(妙手神匠) 유태지(劉太智)뿐이었네."
"묘수신장 유태지요?"

"그렇네. 이 세상에 오직 그만이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
"그럼 그를 찾아 물어보면 되겠군요."

"그렇지. 하여 그의 거처를 찾아갔었네. 그런데…"
"그런데 뭐죠?"

이회옥은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차디찬 시신이 되어 있었네."
"으으음!"

"이미 죽어 버렸으니 안타깝게도 누구에게 가짜 제왕비를 만들어 줬는지를 알 수 없었지. 하지만…"
"하지만 뭐죠?"

이회옥은 또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단서는 있었네."
"중요한 단서요? 그게 뭐죠?"

"굳어버린 쇳물이네."
"굳어버린 쇳물이요? 그게 무슨 단서가 되지요?"

"아암! 되고말고… 조사결과 그것은 현철과 빈철, 그리고 만년한철이 일정 비율로 배합된 것이었네."
"그런데요? 그게 무슨 단서가 되죠?"

"후후! 그것은 바로 가짜 제왕비와 같은 성분의 철이었네. 따라서 묘수신장이 누군가를 위해 제왕비를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네."

"하지만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모르기는 마찬가지잖아요."
"허허허! 다들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하지만 그것은 누가 의뢰하였는지를 극명하게 증언해준 증인이나 마찬가지였네."

"……?"
"세상에서 가장 철을 잘 다루는 곳이 어디인가? 그리고 철광석을 독점하는 곳은 또 어디인가? 다른 철들은 모르겠으나 현철과 빈철이 나는 철광은 무림천자성이 완전 장악하고 있네."

"그럼….!"
"그렇네. 자네의 생각대로 무림천자성이지."

"으으음! 무림천자성에서 왜 그런 일을…?"
"그거야 알 수 없지. 어쨌거나 본가에서는 무림천자성의 누군가가 제왕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네."

"으으음! 그게 누구죠?"
"성주 일가일 것이라고 추측하네. 왜냐하면 철광석의 외부 유출은 성주 일가의 허락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
"으으음!"

이회옥은 나직한 신음을 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제왕비를 준 사람이 바로 철기린이기에 화담의 추측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선무곡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네."
"선무곡 이야기요?"

"그렇네. 고구려 유민과 신라방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그럼요!"

"선무곡 사람들은 고구려 유민들과 신라방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문파이네. 여기에 자리잡은 것은 선무곡이 조선 인삼의 최대 산지인 개성과 토질이 아주 흡사한 곳이기 때문이네."
"아하! 그래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미루어 선무곡 사람들이 한족(韓族)들일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무곡의 인삼이 중원의 다른 인삼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처음 알게 되었다. 하여 감탄사를 터뜨린 것이다.

"노부가 오늘 새벽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아는가?"
"……?"

"선조의 유명을 받들어 자네를 기다렸기 때문이네."
"예에…? 어떻게 저를…?"

"허허! 노부의 선조 가운데에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많이 하셨던 분이 계셨네. 그 결과 앞날을 짚어보실 줄 알았지."
"그래도 어떻게…? 소생이 거길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지요?"

"허허! 구분에게 있어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네."
"세상에…"

이회옥은 기함할 듯 놀랬다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불경에 의하면 득도한 부처, 즉 여래(如來)는 여섯 가지 훌륭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이를 일컬어 육신통(六神通) 혹은 불가육통(佛家六通)이라고 한다.

그것은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이며 열거한 순서대로 단계를 밟아가며 발전한다고 한다.

이것들은 선정을 통해 얻는 훌륭한 능력이기는 하지만 수행의 목적은 아니다. 오히려 누진통을 제외한 신통은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비록 이를 얻더라도 사용하지는 말라고 가르친다.

신족통(神足通)은 하나의 몸이 여러 개가 되기도 하고, 여러 개의 몸이 하나가 되기도 하는 능력이다.

또한 자유자재로 자신의 몸을 보이게도 하고 사라지게도 할 수 있으며, 벽이나 산 속을 자유자재로 뚫고 다닐 수 있는 능력이며, 땅 속이나 물 속, 공중까지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천이통(天耳通)은 무아경의 상태에서 천상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타심통(他心通)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지만 한 가지 제한이 있어서 자신보다 법력이 높은 사람의 마음은 읽을 수 없다고 한다.

숙명통(宿命通)은 전생의 업(業)과 인과(因果)를 알 수 있는 능력이다.

천안통(天眼通)은 사람의 업과 인과를 실제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누진통(漏盡通)은 번뇌가 완전히 없어지는 능력으로 쉽게 말하면 해탈(解脫)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회옥은 불가육통을 이루 사람이라 할지라도 화담이 말하는 선조에게는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흠칫거렸다.

아무리 미래를 예지(豫知)할 수 있는 신통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언제, 어디에, 누가 나타날지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사람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화담을 유심히 살폈다. 이것을 짐작하였는지 화담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허허! 노부의 말은 거짓이 아니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허허! 부러우면 자네도 공부를 많이 하게. 그러면 저절로 알게되는 수도 있으니…"
"……!"

"어쨌거나 노부가 자네를 기다린 이유는 궁금하지 않는가?"
"예! 궁금합니다."

"허허! 지금 우리 선무곡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있네."
"누란의 위기라니요?"

"무림천자성과 북선무곡인 주석교 때문이지."
"……?"

이회옥은 점점 더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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