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대책위 "대구시 약속 지켜라"

지하철참사 추모공원 토론회, 합동영결식 무산

등록 2003.04.24 14:14수정 2003.04.25 21:11
0
원고료로 응원
a 23일 대구지하찰 참사 의생자 대책위의 기자회견

23일 대구지하찰 참사 의생자 대책위의 기자회견 ⓒ 김광재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대책위(이하 대책위)는 23일 대구시에 지난 18일 추모공원과 장례절차에 대해 합의한 내용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25일까지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대구시가 희생자 가족과 수많은 약속과 합의를 하지만 모두가 거짓과 모략이었다"며 시의 일방적 합의 파기를 비난했다.

이에 앞서 김기옥 대구부시장은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합동장례 절차를 문제삼아 지난 18일 대책위와 합의한 내용을 뒤집었다. 김 부시장은 "그 동안 희생자 대책위에 끌려다니는 모습에서 벗어나 참사수습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며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려운 추모공원 조성에 합의해 줘 유가족들이 이를 믿고 기대를 갖게 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추모공원은 지난달 10일 대책위가 합동묘역을 마련해 안장키로 의견을 모으면서 공식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책위는 추모비, 안전교육장, 묘역을 포함하는 추모공원을 대구시 중구 수창공원예정지에 조성할 것을 요구했다.

대책위와 김 부시장은 지난달 31일 수창공원예정지에 추모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대구시가 △관련법령 질의 및 개정을 건의 △도시계획관리계획 변경 추진 △예산확보 △인근 주민 설득 등을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했었다.

이 합의 사실이 알려지자 수창공원예정지에 공원조성 자체를 반대해 온 중구청, 중구의회가 반대하고 나섰고 인근 주민들은 반대시위를 벌였다. 도심공원에 묘지를 조성하는데 대해 찬반 논란이 일자 대책위측은 공개토론회를 제의하고 결과에 따라서는 수창공원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지난 18일 대구시와 희생자 대책위는 △지난달 31일 추모공원을 수창공원예정지로 한정한 것은 대구시의 '행정실수'라고 양해하고 △TV토론을 열어 추모공원 장소와 수창공원으로 할 경우 묘역 포함여부 등을 논의하고 △토론회 후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또 24일 합동장례를 거행하되 시신은 추모묘역이 조성될 때까지 ①납골당 가안치 ②냉동고 보관 ③시립묘지 가매장 등 세가지 중 선택하기로 합의 했다.

대구시는 그러나 유족측이 ②안으로 결정하자 22일 기자회견에서 관습상 시신을 매·화장하지 않는 장례는 있을 수 없다며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매장 또는 화장의 장례절차를 마친 유가족부터 보상협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추모공원 TV토론회 등은 무산됐다.


대책위는 "일괄신원획인 및 합동장례거행을 대구시, 수사본부, 국과수, 대책위등이 모두 합의했으나 대구시가 일방적으로 보상금 선지급을 미끼로 유족간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며 대구시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공개 토론으로 풀어야 할 문제
대구시 시간만 끌다 합의사항도 뒤집어

지하철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전교욱의 장으로서 추모공원을 조성하자는 데는 처음부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추모공원을 어디에 조성하느냐, 묘역을 포함하느냐의 문제가 쟁점이다. 이 문제는 책임자 처벌 문제와 같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즉, 힘으로 논리로 싸워서 일방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가지 대안을 놓고 가장 좋은지 여론을 따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시는 추모공원과 관련해 한달 이상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끌었고, 수차례 약속을 번복했다. 대책위와 합의를 해 놓고도 수창공원을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법적문제, 시민적 합의, 재정문제 등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오히려 갈등을 부추겼다.

이 문제는 대구시가 처음부터 공청회, 토론회를 열어 정보를 공개하고 시의 입장과 유족의 입장 또 중구청등 관계자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논의했어야 했다. 총리가 이 문제에 대해 시민합의가 이뤄지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중앙의 도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구시는 '도심에 웬 묘지냐' 는 소모적인 논쟁을 지켜보기만 했고 시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외면하기 시작했다. 도심공원에 묘지를 조성한다는 것이 시민 정서 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자 대책위측은 묘역은 다른 곳에 조성하는 등의 타협안을 준비하고 토론회를 요구했다.

문제의 핵심은 도심에 묘지가 들어서느냐가 아니라, 지난 2001년 공원조성계획만 세운 채 진척되지 않고 있는 수창공원 조성을 이번 기회에 추진할 수 있는가로 진작에 넘어왔어야 했다. 도심 1만2천평의 땅에 계획대로 공원이 조성될수 있는지 여부는 시민 전체에게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토론회, 시민여론조사 등을 합의한 대구시는 또 이를 뒤집었다. 정통장례관습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묘역이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에 유족들이 이장을 꺼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도 별 설득력이 없다. 대구시의 속뜻은 장례 치르고 보상금 합의한 뒤에는 대책위도 위축될 것이고, 추모공원 논의도 시간을 갖고 대구시 주도로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 같다.

김기옥 부시장이 23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쉬운 말로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까지 대구시가 유족들의 거센 요구 때문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지만, 생각해 보니 도저히 안되겠다. 그런 약속을 한 것은 미안하지만, 이제부터는 내 말대로 하라.' 250만 대도시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로 보기 어렵다.

추모공원과 함께 대구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양성자 가속기 사업이다. 대구시는 "지난 15일 5개 유치 희망지역 가운데 2개 지역으로 압축될 계획이었으나 국무회의가 이를 무시하고 핵폐기물 시설과 연계추진을 결정한 것은 법적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며 법원에 '양성자가속기사업 기준 변경금지 가처분신청'을 하기로 했다.

대구시는 정부가 약속을 깨려 한다고 법원으로 달려간다. 부시장이 시장의 위임을 받아 서명까지 한 약속을 대구시가 뒤집을 때 유족들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