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싹 '찔구'김규환
찔구
참꽃 진달래가 개꽃 산철쭉과 철쭉보다 더 이쁜 것은 따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달래꽃 잎 그 쌉싸름한 맛에 취하고 나면 일은 더 많아지는데 입이 심심해진다. 그렇다고 대안을 찾으러 멀리 나갈 필요도 없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어린 싹 '찔레'를 우린 그냥 '찔구'라 했다. 나잇살 먹은 사람은 웬만한 고장 출신이어도 찔구는 안다. 찔구 모르면 시골출신 아니라는 얘기다.
오뉴월 하얀 찔레꽃 피고 늦가을 찔레 열매 익어 겨우내 단단히 붙어 있으면 앙상하고 을씨년스런 짙은 회색 분위기를 붉은 빛 열매가 흰 눈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시각적 반전을 이뤄 사람 기분을 좋게 하는 게 찔레 열매다. 겨울엔 까치밥이다. 나뭇짐 지고 내려오다 헉헉거리며 잠시 쉬노라면 찔레 열매가 있어 몇 개 따 먹어보지만 씨로 가득차 있고 떨떠름한 맛에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이놈의 찔레꽃 가시는 꾸지뽕나무, 청가시덩쿨, 청미래넝쿨, 엄나무, 두릅나무 가시와 함께 무시 못할 존재여서 땔감으로도 끼워주지 않았다. 그냥 가시덤불일 뿐이다.
그런 가시나무가 긴요하게 쓰일 때가 있는데 진달래를 따먹고 나면 마땅히 먹을 게 없는지라 내 발길은 동네 밭가나 야산(野山) 가시덤불로 향한다. 마침 들녘 빛깔은 달라졌다. 푸릇푸릇한 게 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 잎이 다 피지 않았으니 완연한 여름이라고 보기에 이른 때 낭창낭창 늘어진 줄기에 새순이 돋으면서 싹눈마다 파랗고 긴 새 가지를 늘어뜨릴 태세를 갖춘다. 이게 바로 찔구다.
툭 꺾어 잎사귀 따고 여린 것은 토끼처럼 송곳니로 야금야금 씹어 끊어 먹고, 조금 딱딱하게 센 것은 아랫부분 껍질을 벗겨 먹으면 덤덤하지도 않은 것이 쌉쌀하지도 않아 간이 적당하며 풀 향기가 혀에 고루 퍼져 상큼하고 달콤한 맛을 선사하고 뒷맛도 깔끔하다.
찔구는 줄기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땅 속 뿌리에서도 붉은 싹이 치고 더 두텁게 올라와 동심을 유혹한다. 줄기에서 뻗어 나오면 한 뼘 길이인데 반해 바닥 근처 뿌리에서 나오는 것은 20cm를 넘는 경우가 많아 몇 개 꺾어 집에까지 가져와 먹는데 색깔이 붉을수록 쓴맛이 강해 기분을 잡치는 수가 있다. 여린 싹이 제 한 몸 보존하기 위해 쓴맛을 품어 나온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