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신부가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표정이 진지하다.박철
“당부할 게 뭐 특별한 게 있겠시꺄? 그저 하나님 잘 믿고 부모공경 잘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이웃들에게 없는 거 나눠 먹을 줄 알고 살면 그게 젤로 사람답게 사는 모범 아니겠시까?”
나는 이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지난 5년동안 한푼이라도 아껴서 내 집을 장만하고 IMF사태로 실직해서 집에 내려와 계신 아버지께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자기들끼리 벌어 결혼까지 올린, 이 두 사람이 참으로 대견하고 장해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줄을 하나 더 보탠다면, 나는 이 두 사람의 앞날을 늘 주목하며 지켜볼 것입니다. 이들이 지난 5년 동안 정성껏 쌓아올린 사랑의 공든 탑이 더 견고해 지기를 바랍니다.
4월 막바지, 이제 막 올라온 순무 싹이 파랗게 올라왔습니다. 모처럼 하늘도 말갛고, 한참 동안 손을 흔드는 신랑 신부도 참 예쁩니다. 이제 막 봄이 지나가는 듯 합니다.
| | 방석 이야기 | | | | 나의 진짜 주인은 누구신가요? 나는 다음달에 결혼을 앞둔 처녀가 나를 예쁜 천에 수를 놓아 만들었지요. 나는 시집가는 처녀와 함께 살게 되었기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새로운 나의 보금자리인 신혼집의 모습을 상상하며 신랑신부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신부의 시아버지와 시할머니가 살고 계신 교동이라는 섬이었습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섬이라니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신부의 시할머니는 나를 처음 보더니 활짝 웃으시면서
“참 예쁘게도 지었구나? 우리 손주며느리 만큼이나 예쁘구나!”
하면서 나를 기쁘게 맞아 주었습니다.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무슨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장롱 안에 넣었습니다. 다행히 춥지는 않았는데 깜깜하기만 하고 바깥 구경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햇볕이라곤 한줌도 안 들어오니 날짜 가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름이 박모라고 하더라? 사람들이 그 분을 목사님이라고 부르대요. 키도 크고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속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박 목사가 할머니 집에 왔는데 할머니가
“목사님 선물 하나 드릴게요!”
하더니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나를 장롱에서 꺼내 냉큼 건내주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세 번째 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간 곳은 예배당이었습니다. 박 목사는 나를 예배당 의자에 놓았습니다. 바로 옆에 예쁘게 생긴 작은 창문이 있는데 창문으로 맑은 공기와 햇볕이 들어와서 참 좋습니다.
또 심심하지 않게 새들의 노래 소리도 들을 수 있고요.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볼 수도 있고 이따금 사람 구경도 할 수 있고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기가 진짜 내 집이려니 세 번째 주인이 진짜 내 주인이려니 하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가만히 계셔보세요. 사람들의 찬송소리가 들리는 군요?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 박철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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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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