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18

선무곡의 위기 (3)

등록 2003.04.28 13:04수정 2003.04.2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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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화담의 가문에는 어려서부터 학문 일도를 닦은 결과 위로는 천문, 아래로는 지리에 통달한 사람이 있었다. 만박수재(萬博秀才) 홍계관(洪繼寬)이란 사람이었다.

어느 날 만백수재는 자기의 명(命)을 짚어보니,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횡사(橫死)한다는 점괘가 나왔다.


살아날 길을 찾다보니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천자가 앉는 용상(龍床) 아래 숨어 있으면 횡사를 면한다고 되어 있었다.

세속의 명리를 멀리하여 그때까지도 과시에 응시하지 않았기에 백면서생이던 그로서는 용상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여 방법을 생각하던 중 죽을 날이 되기 삼 년 전부터 오가는 사람들의 신수를 봐주기를 시작하였다.

워낙 신묘하였기에 그의 명성은 황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결국 천자는 그를 황궁으로 불러 나라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길흉화복을 점치는 관직에 제수하였다.

그런데 당시는 태평성대가 계속되던 시기인지라 사실 점치고 말고 할 것도 없을 때였다. 따라서 그의 뛰어난 실력은 진흙에 빠진 진주처럼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점점 더 죽음을 맞이할 날이 다가오자 홍계관은 고심 끝에 천자에게 무릎 걸음으로 다가가 점괘를 이야기하였다.


이를 재미있다 여긴 천자는 그 날 용상 아래 숨도록 윤허(允許)하였다.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그때 마침 쥐 한 마리가 대전 앞마당을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천자만 볼 수 있을 뿐 용상 아래에 있는 홍계관은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천자는 홍계관의 실력을 보려고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마당에 쥐가 지나가는데 몇 마리인지 점을 쳐보아라."
이에 점을 쳐본 홍계관은 이렇게 아뢰었다.
"신이 점을 쳐본 결과 모두 세 마리이옵니다."

천하제일 점쟁이인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천자는 대노하면서 형관(刑官)을 시켜 홍계관의 목을 베라고 하였다.

형장으로 끌려간 그는 다시 점을 쳐보니 한 식경(食頃)만 기다리면 살 길이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평소 안면이 있던 형관에게 조금만 형 집행을 늦추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인정에 이끌린 형관이 이를 허락하여 잠시 기다리는 사이 천자는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어 측근으로 하여금 그 쥐를 잡아 배를 갈라보라 하였다.

놀랍게도 뱃 속에는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홍계관의 신묘한 점괘대로 쥐는 세 마리였던 것이다. 이에 놀란 천자는 곧바로 신하를 형장으로 보내어 참형을 중지하도록 하였다.

이에 신하가 급히 달려가 보니 형을 집행하려는 순간이었다.

즉각 크게 소리치며 중지하라고 하였으나 형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손을 흔들어 중지하라고 하였지만 형관은 이를 사형집행을 빨리 하라는 것으로 알고 참(斬)하고 말았다.

신하가 되돌아와 자초지종을 보고하니 천자는 아차하면서도 홍계관의 신묘한 점괘에 또 다시 놀라고 말았다.

형장으로 끌려가지 않고 용상 아래에 있었다면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시 말해 홍계관은 자신의 죽음마저 정확히 맞출 정도로 대단하였던 것이다.

"우와!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네요."
"허허! 대단하셨지. 그래서 오늘 새벽 노부가 그곳에서 자네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네."

"……!"
"자, 이제 자네에게 묻겠네. 본곡을 도와주겠는가?"
"물론입니다. 소생이 선무곡을 안 도우면 누가 돕겠습니까? 헌데 어떻게 도와야 하지요? 현재로서는 소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화담의 말에 이회옥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도 모르네. 안타깝게도 선조께서 남기신 유록(遺錄)을 넣어둔 서궤에 쥐들이 들끓어 자네를 만나보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실되고 말았네. 하여 자네가 어떻게 우릴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노부도 모르네."

화담의 말에 이회옥은 다소 황당하였다.

"그, 그럼 어떻게 하죠?"
"글쎄…? 되어 가는 꼴을 보아야겠지."

이회옥은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 저녁 이회옥은 화담과 그의 손녀인 일타홍 홍여진, 그리고 조관걸과 그의 딸인 조연희와 어울려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일타홍은 이회옥이 같은 한족(韓族)이며, 이정기 장군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태도를 바꾸었다. 싸늘하기로 따지면 북풍한설(北風寒雪)보다도 더 차갑던 그녀가 나긋나긋하면서도 부드럽게 바뀐 것이다.

게다가 조부의 손님이라는데 어찌 소홀히 대접하겠는가!

조관걸은 오래 전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반가워하면서 여식인 조연희(趙娟姬)를 소개하였다. 조선의 관념상 다 큰 여식을 외간남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법도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곳은 중원이었다. 하여 이러한 격식을 파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한 것이다.

이회옥이 자신의 처소로 되돌아 간 것은 이슥한 밤이 되어서였다. 새벽에는 귀라도 씻어야 한다 느낄 정도로 답답하였으나 돌아갈 때는 가슴이 청량해진 느낌이었다.

"후후! 여심난측(女心難測)이라더니 과연…"

팔베개를 하고 누운 이회옥은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정하게 대해주던 일타홍의 영상이 떠올라서였다. 서릿발같은 표정을 지을 때에는 몰랐는데 오늘 다시 보니 가슴이 설렐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겉으로는 남녀간의 모든 예의범절을 지켜야하는 것처럼 조신하게 굴면서도 잔이 비면 슬그머니 술을 따라주고 안주까지 집어주던 조연희의 영상도 떠올랐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고? 젠장, 그건 누가 만들어 가지고… 차라리 남녀칠세지남철(男女七歲指南鐵)이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큭큭! 암, 그렇고 말고…"

생각에는 제한도 없으면 윤리도 없는 법이다. 두 여인을 생각한 이회옥은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괜스레 몸서리를 쳤다.

사실 일타홍이 껴안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면 조연희는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았다. 하여 대화하는 내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곤란했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마주하려 하였고, 그럴 때마다 괜스레 가슴이 설렜었다.

실소를 머금는 이회옥의 뇌리로 두 여인의 영상이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오래 전에 우연히 만났던 추수옥녀 여옥혜 이후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다.


* * *


"챠아아아압! 비사연환(飛蛇聯環)!"
쐐에에에에엑!
"야아압! 돌운노룡(突雲怒龍)!"
쓔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여옥혜는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독사가 영활한 몸짓으로 방향을 바꾸듯 거궐혈을 겨냥하였던 검세를 삽시간에 왕구명의 허리어림으로 바꾸었다.

너무도 신속한 변화였기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왕구명은 그녀의 좌측 어깨를 겨냥하였던 검을 회수하였다. 동시에 황급히 좌로 일 보 이동하면서 쇄도하는 여옥혜의 검을 쳐냈다.

그러자 이런 반응을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 여옥혜는 검을 묘한 각도로 변화시켰다. 동시에 왕구명은 찰라지간이지만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강렬한 태양광이 순간적으로 검신에 반사되면서 눈이 부셨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 여옥혜의 검은 소리 없이 왕구명의 인후부를 노리며 찔러들고 있었다. 이때 정(丁)자형으로 디딘 그녀의 발은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즉각적으로 방향 및 각도를 변화시킬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야압! 반광두습(返光頭襲)!"
쐐에에에에엑!

"허억! 뇌려타곤(懶驢陀坤)!"
우당탕탕!
"아씨! 아, 아씨! 그만! 속하가 졌습니다."

왕구명은 너무도 신랄한 여옥혜의 공격에 그만 무인(武人)으로서는 최대 수치라 일컫는 뇌려타곤을 시전하고야 말았다.

안 그랬다가는 목이 잘려나가던지 아니면 인후부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릴 판이었던 것이다.

신형을 뒤로 젖인 후 발뒤꿈치를 사용하여 이동한 뒤 회전력을 이용하여 몸을 일으키는 철판교(鐵板橋)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옥혜에게는 남해 보타암에서 익힌 보타신법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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