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씨, 씨름하다 바지 찢어지다

섬마을 시골교회 봄 소풍 이야기

등록 2003.04.29 05:58수정 2003.04.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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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예배 마지막 축도. 아이구 예배가 왜 이리 길지.
소풍예배 마지막 축도. 아이구 예배가 왜 이리 길지.박철
오늘은 우리교회 봄 소풍 가는 날입니다. 어제까지도 날씨가 꾸물꾸물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고 좋습니다. 우리교회는 노인들이 많이 계시는데 할머니들이 교회 소풍간다고 예쁘게 분단장을 하셨습니다.


소풍 장소는 바다건너 북한 연백이 환히 보이는 망향단(望鄕壇)입니다. 우리 동네 명소인 망향단은 고향이 이북이신 분들이 6.25 전쟁 때 피난 오셨다 다시 가지 못하고 실향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야트막한 산마루에 터를 닦아 놓았습니다.

할머니들 표정이 심각하다.
할머니들 표정이 심각하다.박철
7년전 아내와 내가 교동에 이사 와서 처음 망향단에 올랐을 때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못자리 설치작업으로 매우 바빴습니다. 이제 조금 시간이 한가한 편입니다. 올해 비가 여러 날 오고, 흐린 날이 많아서 모 싹이 잘 자라지 않고 드문드문 구멍 난 것처럼 말라서 모내기 앞두고 모두 걱정이 많습니다.

“자, 오늘 하루는 걱정근심 붙들어 매고 하루 동안 웃고 즐기면서 하느님과 자연 앞에 동심으로 돌아가서 재롱잔치 합시다. 박수!”
“와-!”

열중셧. 차렷. 거참 똑바로 서요. 줄하나도 똑바로 못 맞추겠신꺄?
열중셧. 차렷. 거참 똑바로 서요. 줄하나도 똑바로 못 맞추겠신꺄?박철
꼬마 녀석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합니다. 예배드리는 모습이 가관입니다. 온통 애들 관심은 먹는데 가 있습니다. 그러니 목사가 설교를 길게 했다간 ‘주책’(?) 이라는 소릴 들을 것 같아 평소보다 간단하게 하고 마쳤습니다.

잠깐 쉬는 시간에 장로님 두 분이 보물찾기 쪽지를 숨깁니다. 보물찾기 쪽지를 숨기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나무 등걸사이, 풀 섶 사이, 돌맹이 틈, 나뭇가지 사이 등등. 어느 틈엔가 애들하고 어른하고 널다란 잔디밭에서 미니 축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애들은 필사적으로 덤비고 어른들은 조금만 뛰어도 헉헉거립니다. 또 한쪽에서는 기차놀이가 벌어졌습니다.


남자 어른들과 어린이들의 미니 축구. 어른들이 애들을 하나도 안 봐주네.
남자 어른들과 어린이들의 미니 축구. 어른들이 애들을 하나도 안 봐주네.박철
장로님 두 분이 보물찾기 쪽지를 숨기는 동안 점심밥 먹을 시간이 되어 옹기종기 모여앉아 김밥을 먹습니다. 내가 소풍예배 광고하면서 김밥 말고 맨밥하고 나물 볶아서 많이 싸오라고 했는데 거반 다 김밥을 싸왔습니다.

이한정 집사님 네는 생선매운탕을 끓여 먹으려고 장을 봐왔는데, 휴대용 부탁 가스렌지가 고장 나서 불이 안 붙습니다. 쑥떡하고 순대가 히트를 쳤습니다. 아기손 나물볶음, 질경이 나물 무침도 맛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학천 장로님이 별안간 소리를 지릅니다.


승부욕이 강한 두 사람. 사탕이 도대체 어디 간거야?
승부욕이 강한 두 사람. 사탕이 도대체 어디 간거야?박철
“자, 지금부터 보물찾기를 하겠습니다. 빨리 가서 보물을 찾으세요!”
“와!”(박수)

함성과 함께 어른이고 애들이고 겅중겅중 말같이 뛰어갑니다. 다리가 아프다고 할머니 몇 분이 앉아 계십니다. 내가 7년 전 왔을 때는 다 뛰어다니시던 분들이 그동안 많이 늙으셨습니다. 보물찾기가 끝나자 이도성씨와 서순종 장로님의 팔씨름이 벌어졌습니다.

이도성씨는 우리 동네 팔씨름 일인자입니다. 서순종 장로님이 맥을 못 추고 연거푸 졌습니다. 서 장로님이 팔씨름으론 상대가 안 되자 씨름으로 승부를 가리자고 이도성씨한테 제의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이었습니다.

도성씨가 서장로님과 씨름하다 바지 찢어졌데요. 얼레 꼴레!
도성씨가 서장로님과 씨름하다 바지 찢어졌데요. 얼레 꼴레!박철
한참동안 용을 쓰는데 이도성씨 체육복 바지 엉덩이가 ‘부욱-’ 하고 찢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배꼽을 잡으며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이도성씨가 빨리 끝내야겠다고 판단을 했는지 기합을 넣으며 안다리 후리기 공격을 했습니다.

“으라랏 차!”
“어이쿠!”

서 장로님이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내가 이도성씨 팔을 치켜들고 이겼다고 선언하자 이도성씨가 기분이 좋아 보기 좋게 ‘씨익’ 웃습니다.

훌라후프의 천재 안다영. 기네스북 신기록에 도전하다.
훌라후프의 천재 안다영. 기네스북 신기록에 도전하다.박철
2부 순서로 레크레이션 시간입니다. 제일 먼저 마라톤 경기입니다. 청백으로 편을 갈라 누가 옷이나 소지품을 길게 늘어놓는가 하는 경기입니다. 그리고 심판이 중단을 시킨 다음 또 누가 제일 먼저 벗어놓은걸 입고 차렷 자세로 정렬을 잘 하는가 입니다. 길이도 비슷비슷 했는데 오봉섭 권사가 셔츠 지퍼를 안올려서 복장불량으로 청팀이 이겼습니다.

그 밖에 훌라후프 돌리기, 닭싸움, 밀가루 속 사탕 먹기 등 초등학교 소풍을 연상하게 하는 게임이었는데, 모든 사람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물찾기 시상과 행운권 추첨을 했습니다. 상품이 푸짐합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상품을 타서 모두 기분이 좋습니다. 어른들 보다 애들이 수지맞았습니다.

박목사 오권사와 닭싸움하다 나가 떨어지다.
박목사 오권사와 닭싸움하다 나가 떨어지다.박철
주변정리를 하고 마지막 폐회예배를 드립니다. 내가 시편 23편을 읽고 제일 나이 많이 드신 강한옥 권사님(79. 여)이 대표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신문을 보나 테레비를 보나 정나미가 떨어지는 일들만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즐겁게 놀면서 기쁘기는 하지만, 한편 바로 바다건너 내 동포 내 형제 내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보물찾기 시상식. 213번이요. 와, 물비누다!
보물찾기 시상식. 213번이요. 와, 물비누다!박철

하나님 아버지. 우리나라가 남북이 서로 손을 마주잡게 하시고, 다른 나라 눈치 보지 말고 다른 나라 도움 받지 말고, 우리 문제를 우리끼리 해결해서 하루 속히 통일된 나라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이 나라 대통령과 모든 위정자, 모든 정치인들이 이 나라의 복잡한 모든 문제를 잘 처리해서 좋은 나라 평화로운 나라 만들게 하시옵소서.....”


소학교도 안 나오신 강 권사님의 기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서 먹고 마시고 웃고 즐기다 망향단을 내려왔습니다. 바쁜 농촌의 일상이 또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농촌 사람들은 이 시대, 농자천하지대본의 큰 뜻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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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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