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자락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화려했던 날들보다 화려한 끝자락

등록 2003.04.29 16:35수정 2003.04.2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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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청미래덩굴

청미래덩굴 ⓒ 김민수

삶이란 시작이 있고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무언가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끝을 향하여 하루하루 가까이 간다는 의미요, 동시에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함께 정들었던 시간들이 있기에 떠난다는 것, 또는 만남의 끝자락에 서있는 시간은 섭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만남의 끝자락에서 아무리 간절하게 절규를 해도 이별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긴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던 친구들과 후배들이 갑작스럽게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통고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소식을 들으면 덜컥 나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갑작스럽게 닥칠지 모른다는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아픈 이별을 대하게 되면 마음이 바빠집니다. 느릿느릿 살아가는 것, 천천히 살아가는 것이 삶의 멋이요, 묘미라고 하면서도 솔직히 '아직은 안 되는데'하는 생각에 급해지기 마련입니다.

계절의 변화가 여름으로 가고, 이미 꽃이 피고 지고 새로운 열매가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열렸던 청미래덩굴은 아직도 붉은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오래는 아니지만 꽃으로, 열매로 피어나 보았던 세상에 대한 그리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a 민들레

민들레 ⓒ 김민수

민들레의 노란 꽃도 예쁘지만 씨앗을 두어 개 남겨놓고 별 모양을 하고 있는 꽃대가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 저렇게 미련 없이 보내고,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는 거야!'하는 욕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옵니다.


살면서 정들었던 사람을 보내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마는 사람들은 유독 죽음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슬퍼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잊고 살아가는데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기일이면 또다시 슬퍼하고, 그러기를 몇 년 반복하면 형식적인 절차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이 부질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그 길을 향해서 갈 때에 마치 민들레 씨앗이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날아가고,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봄이 되면 또다시 노란 민들레를 피어내는 것처럼 덤덤하게 맞이할 수는 없는 것 인지요?


a 할미꽃

할미꽃 ⓒ 김민수

꽃들의 피고 짐을 보면서도 슬프지만은 않은 것은 아직은 아니지만 그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올 것을 미리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는 꽃이 아쉬우면서도 덤덤하게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이러한 것을 '믿음'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히브리서11장 1절).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꽃씨가 날아가 새로운 생명으로 움터 올 것을 확신하기에, 보이지는 않지만 미리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꽃을 화들짝 피어 가장 화려했던 날보다도 끝자락의 하루하루가 더 화려하게 보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시작될 생명을 미리 보여줌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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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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