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80

등록 2003.05.03 13:20수정 2003.05.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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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사랑

부여에 있는 예주는 주몽이 자신을 다시 찾으리라는 생각을 잊은 지 오래였다. 그간 고구려에서 사신이 왔다 갔다는 소문도 들었고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의 장례식이 성대히 치러졌다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어디에도 자신을 찾았다는 말은 들리질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예주가 주몽을 원망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한 나라의 왕이라면 왕비나 후처가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예주는 하루하루에 충실할 뿐이었다.

단, 그에게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면 아들인 유리의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유리는 불량스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더니 이젠 주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무뢰한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젠 유리의 일이라면 예주조차 머리를 가로 저을 지경이었다.

어렸을 적, 예주는 일찍부터 유리에게 책과 활을 가까이 하도록 교육시켰다. 유리는 매우 총명하여 가르쳐 준 것을 빨리 습득했고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어려서부터 활을 매우 능숙하게 다루었다. 처음에는 고정된 표적만 맞추던 유리는 좀 더 어려운 것에 도전해 화살촉 대신 돌을 매단 화살을 가지고 참새를 쏘아 맞추기도 했다.

어느 날 유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을 들고 나와 참새를 쏘며 놀기 시작했다. 돌을 매단 화살촉 하나가 잘못 날아가 물동이를 이고 가던 아낙의 물동이를 맞추었고 그 아낙은 함빡 물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잘못을 했으면 솔직히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어머니에게 배운 바가 있기에 유리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아낙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서 있었다.

"이제 보니 예씨 집안의 유리로구나! 애비 없는 자식이 다 그렇지! 에이 쯧쯧......"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유리는 아낙의 말에 몹시 모욕감을 느꼈다. 그 길로 집으로 달려간 유리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 지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때가 되면 가르쳐 줄 것이니라. 지금은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

예주의 이렇게 아버지를 알려주지 않은 데에는 행여 유리의 아버지가 주몽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질 경우 어떤 위해가 가해질지도 몰랐고 유리에게 쓸데없는 자만심만 불어 넣어주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춘기에 이르러서 유리는 더욱 방황하게 되었고 친구인 옥지, 구추, 도조와 함께 어울려 다니며 불량배 행세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왕의 후처이긴 했지만 자신은 빈궁한 삶을 살아오며 대소와의 충돌로서 많은 모욕과 멸시를 견뎌온 주몽과는 달리 유리는 주위의 멸시를 참지 못했으며 생활 면에서도 귀족인 예씨집안의 풍족함 속에서 살아왔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더구나 예씨집안에서 아예 내어놓은 사람 취급을 했을 때는 친구들과 더불어 약점 있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갈취하거나 잡다한 일을 맡으며 살아갈 수 있는 불량배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때 유리는 도둑질을 하다가 잡혀간 일도 한번 있었다. 워낙 도둑질에 대해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는 부여 사회인지라 유리는 자칫하다간 큰 벌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예주가 한번만 사정을 봐달라고 매달린 탓에 예씨 집안이 법에 따라 훔친 물건의 12배를 보상해 주고 그를 꺼내어 주었다. 이 일로 인해 예주는 유리가 올바른 길로 나가길 바랬지만 오히려 기를 살려준 꼴이 되고 말았다.

"도둑질이 그렇게 중한 벌을 받을 수 있다면 도둑질이 아닌 일만 하면 될 거 아닌가."

그때부터 유리와 그의 일당들이 한 일은 남에게 떼인 곡식이나 돈을 대신 받아내어 주는 일이었다. 원래 빌린 돈을 갚지 않은 자는 국법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지만 나라에서 일일이 이에 관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자력으로 이를 해결하곤 했는데 상대가 힘으로 버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를 겨냥해 유리는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일정량을 대가로 받는 일을 하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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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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