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에 오시니 반가워요"

항일유적답사기 (11) - 연길

등록 2003.05.02 17:09수정 2003.05.0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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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연길 역사 전경, 환영 현수막이 밤새 피로를 싹 가시게 했다

연길 역사 전경, 환영 현수막이 밤새 피로를 싹 가시게 했다 ⓒ 박도

만주의 새벽

5일(목), 오싹한 찬 기운에 눈을 뜨자 새벽 4시였다. 차창 밖 만주 벌판은 여태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복도에 나가 서성거리고 싶었지만, 객실의 승객을 깨울 것 같아서 전등도 켜지 않은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열차는 어느 벌판을 가로지르고 있는지 쉬엄쉬엄 달렸다. 철로가 단선인 탓으로 열차는 그리 빠른 속력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지 얼마쯤 지나자 차창 밖이 스멀스멀 밝아왔다.

마침 아랫단에서 김씨의 인기척이 들렸다. 건너편 황씨도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그제야 침대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어놓고 아랫단으로 내려와 곧장 복도로 나갔다.

차창 밖으로 동터 오는 새벽빛에 만주 산하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일대는 우리나라와 가까운 국경 지역 탓인지 주위 산과 들, 그리고 시냇물조차 모두가 낯익어 보였다.

열차는 만주 들판이 아닌, 마치 우리나라 강원도나 전라도 어느 산촌을 달리는 것만 같았다. 이른 아침의 만주 산하는 더 없이 아름다웠다. 들에는 온통 벼논이요, 콩밭이요, 옥수수 밭이었다. 이곳에도 드문드문 해바라기 밭들이 초록의 들판을 샛노랗게 수놓고 있었다.

개울 둑 여기저기에는 소들이 탐스럽게 자란 이슬 먹은 풀들을 맛있게 뜯어먹었고, 부지런한 농부는 삽으로 벼논의 물꼬를 다듬었다.


철로 언저리 마을에서는 아침밥을 준비하는 양,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 올랐다. 여태 재래식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짓는 모양이었다.

온 마을이 밥 짓는 연기로 마치 안개에 낀 듯 무척 정감이 가는 풍경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1960-70년대 농촌 모습이었다.


5시 10분, 오랜만에 정차한 역은 안도(安圖)였다. 이 일대는 연변조선족자치주라서 간판들이 한글 한자로 나란히 표기됐다. 만주의 어느 지역인들 우리 조상들의 독립운동 유적지가 아니랴만, 이곳 역시 독립운동지로 이름난 곳이다.

역사 옆 공터에는 제복차림의 남녀 철도 노동자 예닐곱 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체조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5·16 쿠데타 직후의 모습이었다.

여기서는 하루 일과가 체조로부터 시작되는가 보다. 이국에서 본 풍물이라 그런지 정겨웠고, 지난날 ‘재건체조(5?16 쿠데타 후, 각 학교와 직장에서 매일 아침에 실시되었던 체조)'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산비탈 구석구석에는 허름한 토담집이 이따금 눈에 띄었다. 우리 조상들이 두만강을 몰래 넘은 후, 저런 산비탈에다 움집을 짓고 살았다고 했다. 이 일대가 우리 조상들이 피땀을 흘린 산하인 탓인지 더욱 정감이 갔다.


연길에 오시니 반가워요

밤새 만주 벌판을 달린 열차는 6시 30분 연길역에 도착했다. “연길에 오시니 반가워요.” 역 앞에 나붙은 플래카드가 밤 열차에 지친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했다.

사람은 참 간사한가 보다. 한 마디 말, 한 줄의 글귀에 기분이 싹 달라졌다. 이곳 역시 연변조선족자치주인지라 거리에 나붙은 모든 안내문 간판이 한글과 한자로 나란히 표기됐다. 거리도 다른 중국 어느 도시보다 한결 깨끗했다. 마치 우리나라 어느 지방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연길역 광장에는 피켓을 든 여행사 직원들과 택시 기사들이 개찰구를 빠져 나온 승객들을 붙들고 호객 하느라 법석이었다.

“백두산 갑니다. 백두산 가요. 두만강 갑니다. 두만강 가요….”

역 광장에 늘어선 가게에는 서울과 직통 전화가 된다는 팻말이 붙어 있어서 출국 후 처음 가족에게 안부를 전했다.

a 기찻길 옆 오막살이......  우리 동포의 초가집들이 철로 가에 띄엄띄엄 보였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우리 동포의 초가집들이 철로 가에 띄엄띄엄 보였다. ⓒ 박도

이곳 가게에서는 한국 돈, 중국 돈, 달러 등 아무 지폐나 다 받았다. 출찰구를 나온 뒤부터 끈질기게 달라붙는 조선족 기사의 차를 타고 예약된 연변대학 빈관으로 갔다.

가는 도중 기사가 어찌나 곰살갑게 구는 지 그만 두만강 답사 예약까지 했다.

대학에서 일반 여행객을 받는 점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김 선생은 최근 중국에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도입된 이후, 각 기관들이 수익성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친 바, 대학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연변대학 빈관은 일반 빈관보다 시설도 좋고 깨끗하며 값도 훨씬 쌌다. 빈관에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고 샤워를 했더니 가뿐했다. 밤 열차를 탔던 피로가 한꺼번에 가신 듯했다.

어디에서인지 귀에 익은 동요가 스피커를 타고 요란하게 들렸다. 마치 한국의 어느 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그 소리가 궁금해서 확인을 했더니 빈관 옆 건물이 연변대학 부속 유치원으로 거기서 들려온 동요였다.

죄다 내가 어린 시절에 배운 동요들이거나 요즘도 한국에서 널리 부르는 곡들이었다.

“새 나라에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앞으로 앞으로… …”

대학 구내에서는 위성으로 한국의 KBS-TV도 시청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자 한국은 온통 물난리였다.

새삼 세상이 참 좁아졌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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