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다리 건너 국경초소, 8월의 뙤약볕 아래 고즈넉했다.박도
강 건너 산하는 분명 내 나라요, 그곳으로 가는 다리가 있어도 건너지 못하고, 중국인들이 얄팍한 장삿속으로 만들어놓은 전망대에 돈을 내고 올라갔다.
거기서 내 조국 산하를 바라보는 나그네의 마음은 마냥 아프기만 했다. 내가 설핏 본 탓인지는 몰라도 국경지대지만 요란한 경비도 없고, 북한 지역은 인적이 보이지 않는 매우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강 건너 마을에 사는 수많은 동포들이 몇 년째 끼니조차 허덕인다니 마음이 더욱 아렸다. 중국 도문과 북한 남양을 잇는 다리와 철교는 두만강을 가로질렀고, 그 다리 아래로 강물만 민족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저 쉬엄쉬엄 흘러갔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애창하는 대중가요〈눈물 젖은 두만강〉의 바로 그 눈물의 강이다. 지난날 일제 탄압에 못 이겨 조국을 등진 백성들의 애환이 담긴 단장의 강이다.
두만강과 북한 산천을 바라보는 전망대 일대에는 잡상인들이 들끓었다. 조선족, 한족 장사꾼들은 우리 일행에게 떼거리로 달려들면서 한국 돈도, 달러도, 다 좋다고 나그네의 소매 깃을 잡았다.
우리의 분단을 이웃 나라들은 즐기는 양, 그것을 이용해서 관광지로 만들어 외화벌이를 하고 있었다. 이런 희비극이 언제 멎을 터인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썰매를 탔던 시인 김규동은 통일의 그 날이 오면,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 놓아 울고 난 뒤에, 흰머리 날리며 그 썰매를 타고 싶다고 했다.
백발을 날리는 아흔의 시인이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에서 개구쟁이 소년처럼 썰매를 타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는 그분의 간절하고도 소박한 꿈이 당신 생전에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두만강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