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를 못 먹으면 교동사람 아닛시다"

등록 2003.05.05 20:00수정 2003.05.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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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손으로 만지면 손에서 노리끼리한 냄새가 난다. 그러니 처음에 대하는 사람은 질색을 한다.
고수를 손으로 만지면 손에서 노리끼리한 냄새가 난다. 그러니 처음에 대하는 사람은 질색을 한다.박철
올해로서 교동에 들어와 산지가 만 6년 지나, 7년째로 접어들었다. 만 6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건만, 아직도 섬 생활이 어설프기 짝이 없다. 사람이 어디서 살든지 자기가 사는 곳에 동화(同和)되어 삶의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정서, 말투, 음식문화, 전통, 관습 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상당한 기간 몸에 익숙할 정도의 축적기(蓄積期)가 필요하다. 말투만 해도 그렇다. 교동 사람의 정체성(正體性)은 황해도 연백에 가깝다.

기원네 하우스에 들어가 찍었다. 누가 교동사람 아니랄까봐 젊은 사람들이 고수를 너무 좋아한다.
기원네 하우스에 들어가 찍었다. 누가 교동사람 아니랄까봐 젊은 사람들이 고수를 너무 좋아한다.박철
강화와는 말투나 고저장단이 사뭇 다르다. 지금은 강화군에 편입되어 강화 사투리가 교동 말처럼 통용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투리가 못 알아들을 만큼 심한 것은 아니다. 이따금 교동 사람들의 말투를 흉내내어 보지만 잘 안된다. 공책을 갖고 다니면서 적는다.

처음 교동에 와서 어느 장로님 집에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갔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는데, 어디를 가든지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가는 것은 역시 김치다. 김치를 입에 넣고 어금니로 씹는 순간, 엄청난 노린내가 입안 전체에 느껴졌다. 다른 반찬도 아니고, 김치에서 이해할 수 없는 냄새가 감지된 것이다.

더 이상 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점잖은 체면에 상에 뱉을 수도 없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냥 삼키고 말았다. 사람들이 내 일그러진 얼굴표정을 보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고수김치 처음 맛보시지요. 교동사람 되려면 고수부터 먹을 수 있어야지요.”

사람들이 내가 고수를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는 가급적 고수가 든 김치나 음식을 내놓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교동에서 살면서 매번 고수를 피해 갈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내가 고수를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고수의 독특한 맛에 적응이 되어 갔다. 처음 느꼈던 거북함도 많이 사라졌다.


'고수'에 대하여

▲ 고수가 꽃인 핀 모습.

호유실·빈대풀이라고도 한다. 주로 절에서 많이 재배한다. 높이 30∼60cm이다. 풀 전체에 털이 없고, 줄기는 곧고 가늘며 속이 비어 있고 가지가 약간 갈라진다. 잎에서 빈대 냄새가 나고, 뿌리에 달린 잎은 잎자루가 길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짧아지며 밑부분이 모두 잎집이 된다. 밑부분의 잎은 깃꼴겹잎으로 1~3회 갈라지는데, 갈라진 조각은 넓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좁고 길어진다.

꽃은 6∼7월에 가지 끝에서 산형꽃차례로 달리며, 각 꽃차례는 3∼6개의 작은 우산 모양 꽃자루로 갈라져서 10개 정도의 흰 꽃이 달린다. 꽃잎 5개, 수술 5개이며, 씨방은 꽃받침 아래 위치한다. 열매는 둥글고 10개의 능선이 있다.


지중해 동부 연안 원산의 귀화식물로 유럽에서는 소스를 만드는 데 향료로 쓴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호유자라 하여 건위제·고혈압·거담제로 쓴다. 줄기와 잎을 고수강회·고수김치·고수쌈 등으로 먹는다.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고수가 강화나 교동 사람들뿐만 아니라, 황해도에서도 즐겨먹는 채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수에 돼지고기를 싸먹기도 하고, 김치를 할 때는 반드시 고수를 넣는다. 고수가 들어간 김치는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처음 고수의 독특한 향은 덜 한 대신, 김치가 구수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일종의 향신료 같은 역할을 한다. 일테면 국밥을 먹을 때 후추를 치거나, 추어탕에 산초가루를 넣어 먹는 것과 비슷하다.

교동 사람들은 대부분 고수를 잘 먹는다. 집집마다 고수를 심는다. 그러나 고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십중팔구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나도 고수 맛을 백퍼센트 즐길 만큼 익숙한 것은 아니다. 맨 처음 느꼈던 거북함이 많이 완화되어 그런대로 먹을 만큼 된 것이다. 이 정도가 되기까지 만 6년이 걸렸다. 내가 고수를 넣은 김치를 먹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말한다.

“목사님도 이제 교동 사람 다 됫시다. 고수를 먹을 줄 알아야 교동사람 잇시다.”

어디 고수만이랴? 교동에 들어와 7년째 살면서, 여기 사람들과 깊은 정을 나누고, 그들의 아픔이 무엇이고, 그들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내가 온 몸으로 터득하고 나아가 내가 촛농처럼 녹아져 진정한 교동 사람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시방, 나는 교동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막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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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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