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82

등록 2003.05.07 17:49수정 2003.05.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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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혹시 예씨 집안 총각 아니시오?"

유리는 자신을 알아보는 그 호민의 말에 놀라 그 자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어렸을 적 몇 번 본적이 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맞아! 분명 예씨집안에서 본 고구려 왕의 아들이야! 저런 쯧쯧…."

집안에서 워낙 쉬쉬하던 일이라 유리로서는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저여로서는 한번도 유리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집안에서 내놓은 사람이었기에 유리가 주몽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지만 이 호민은 저여와 접촉하며 들은 얘기가 있었기에 알 수가 있었다.

"무슨 헛수작이야! 당장 우릴 따라가자!"

옥지와 구추가 방안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뒤지고 있는 가운데 도조가 으름장을 놓았다. 유리는 이들을 말린 다음 칼을 빼어 들고 다시 물어보았다.

"다시 한번 말해 보시오. 내가 누구라고 했소? 혀는 왜 차시오?"


호민은 유리의 기세에 눌러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오. 물건은 창고에 있으니 모두다 가져가시오. 목숨만은 제발…."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나… 나도 들은 얘기라오. 마가가 그랬는데 '고구려왕의 아들이 이곳에 있는데 볼모로 잡아두려 했지만 근본도 모르는 무뢰한이라 그냥 놔두는 게 좋겠다'라고 했소. 마가가 그렇게 말한 것뿐이니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가자!"

유리는 칼을 도로 집어넣으며 그의 패거리들에게 일렀다. 도조가 어찌하겠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형님, 저 자가 형님에게 잔꾀를 부리는 것 같은데 그냥 가신단 말입니까? 물건들은 어찌 한단 말입니까?"

"나도 짚이는 데가 있어서 그래! 이만 가자!"

어릴 적부터 유리의 어머니 예주는 고구려왕 주몽의 얘기를 해주곤 했다.

"고구려왕은 너와 같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단다. 하지만 이를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자신이 바라는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 과감히 이곳을 떠났지. 너도 고구려왕을 본받아 남들이 뭐라고 하던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리는 그 말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 어릴 적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화사한 옷을 입은 부인이 찾아와 유리를 안으며 '손자'라고 했다가 어머니가 입을 가리키며 주의를 주자 말문을 닫은 일이 있었다. 훨씬 뒤에 이 부인에 대해 물어보니 유리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그분은 부여의 왕비마마와 다름없으며 고구려왕의 어머니이기도 하단다."

유리는 이런 사실들을 상기시키며 급히 집으로 뛰어가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 제 아버지가 누군지 확실히 말씀해 주십시오!"

난데없이 뛰어들어 아버지가 누구냐는 질문을 하는 아들을 보고선 예주는 어리둥절해 했다.

"대체 왜 이러느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제 아버지가 고구려의 왕이라는 사실이 확실하옵니까?"

유리가 아주 어릴 때에 이런 말을 했다면 예주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지만 지금의 예주는 아무런 느낌조차 없었고 유리가 처량해 보이기까지 할 뿐이었다.

"내 아비가 누군지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지금 네 모습을 보거라. 시정 무뢰배로 소문나 있는 너의 아비가 누구든지 간에 그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 것 아니냐!"

유리는 어머니의 말에 심히 부끄러워졌다. 예주는 차분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유리에게 말했다.

"이렇게 된 것도 내 탓이 크다. 난 그간 주위의 이목을 두려워했고 남편이 찾아주길 바라며 이곳 부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큰 실수임을 깨닫고 있단다. 난 내일부터 고구려로 가 있을 테니 넌 아버지의 흔적을 쫓아 그 표식을 찾아 가지고 애미를 찾아오너라. 모든 건 내 스스로가 깨우쳐야 한다."

말을 마친 예주는 유리에게서 등을 돌려 누워버렸다. 유리는 그런 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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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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