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83

등록 2003.05.09 18:13수정 2003.05.0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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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북옥저를 정벌하고 어머니인 유화부인의 죽음을 계기로 동부여와의 관계를 개선한 후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천자를 칭하기로 결정했다. 연호는 다물(多勿), 즉 옛 조선(고조선)의 영토를 되찾는 다는 의미에서 제정된 연호였다. 그러나 막상 이로 인해 태후가 된 월군녀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주몽이 여전히 태자책봉을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월군녀는 자신의 측근들을 모아놓고 다시 이 문제를 주몽에게 거론해 보도록 당부했다.

그러나 주몽의 입장은 냉담했다. 그로서는 비류와 온조가 자기 핏줄이 아니라서 딱히 마음에 안든 다기보다는 월군녀의 전횡이 더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주몽이 생각해 볼 때 월군녀가 소노부의 전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이나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몰래 자행해온 음모를 생각해본다면 비류나 온조를 태자로 책봉할 경우 고구려의 장래는 어둡다고 여겼다. 설사 태자로 책봉된 비류나 온조가 월군녀에게 반기를 든다고 해도 그 다음 차례는 내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었고 주몽의 측근인 재사, 오이 등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폐하, 동부여에서 누군가 찾아왔사온데......"

복잡한 국정을 잠시 잊고 낮잠을 자고 있던 주몽에게 오이가 급히 달려왔다. 주몽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여유 있게 오이를 맞이하려 했지만 오이는 그럴 틈도 주지 않았다.

"지금 예주부인께서 저희 집에 와 계십니다."

"뭐라!"

주몽은 급히 옷을 챙겨 입고서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오이가 뒤를 쫓아가며 계속 전했다.


"지금 이쪽으로 모셔오고 있사오니 그냥 계셔도......"

"아니오! 내가 직접 마중 나가겠소!"


예주와 헤어진 지 거의 20년이 되었건만 주몽은 그를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예주가 오는 그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한가히 낮잠만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부끄럽게 느껴졌고 결국은 자신이 찾지 않고 예주가 스스로 찾아오게끔 만든 자신이 한층 더 부끄러웠다. 자신이 비록 천자라고 하지만 예주가 면전에서 그간 있었던 일을 한풀이하듯 늘어놓고 자신을 욕하더라도 달게 받아들일 각오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예주가 자신에게 찾아왔다는 것뿐이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주몽의 앞에 역시 말을 타고 천천히 오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멀리 들어왔다. 주위에 마리와 협부도 있었지만 주몽의 눈에는 오직 예주의 모습만 들어올 뿐이었다. 비록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주몽에게는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예주가 보일 뿐이었다. 주변에서 얘기하는 천자의 위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예주! 예주!"

주몽은 단숨에 달려가 예주를 꼭 끌어안은 뒤 말 위에서 내렸다. 주몽은 할 말이 많았지만 막상 예주를 눈앞에서 보니 탄식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예주가 이런 주몽을 보고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미안하오. 미안하오. 허허허"

주몽은 한껏 기분이 좋아져 큰 소리로 웃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 흘러 넘쳤다.

"폐하, 어서 궁으로 들어가시지요."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같이 눈시울을 붉히던 사람들이 주몽에게 이렇게 권하자 주몽은 마지못해 예주를 놓고 말에 올랐다.

"무심한 나를 용서하시오. 미안하다오."

미안하다는 말이 계속되자 예주가 좋은 말로 주몽을 위로했다.

"미안하다니요. 진작에 찾아뵙지 못한 저야말로 미안하지요. 혹시 내가 짐이라도 될까 두려웠습니다."

"아니요! 무슨 말씀이시오."

주몽과 예주는 짧은 담소 속에서 금세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궁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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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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