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광주 뭉쳐 지역주의 깨자"

양 지역 기자협회 대구서 5.18 세미나

등록 2003.05.08 12:52수정 2003.05.09 21:57
0
원고료로 응원
a 7일 오후 대구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제26회 기자포럼

7일 오후 대구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제26회 기자포럼 ⓒ 김광재

"2월 28일에 있을 데모를 모의하고 친구집 골방에서 잠을 청하던 어린 소년들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공포를 떨치기 위해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가련다 떠나련다∼'로 시작하는 노래였습니다. 조병옥 박사를 기리는 가사로 바꿔 부른 이른바 '노가바'의 원조격이 되는 노래였습니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지 않아 다시 일어나 애국가를 부릅니다.

저는 여기서 80년 5월 27일 도청의 새벽을 떠올립니다. 집압군 궤도차량의 소음이 가까워 오는 어둠 속에서 싸늘한 소총을 안고 도청의 마지막 새벽을 지키던 어린 시민군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소년의 어깨에 드리웠을 역사의 무게를 가늠해 봅니다.

1960년,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고 민주적 조직적 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2월 28일 새벽을 든눈으로 맞이하던 대구의 소년들에게 지워진 역사의 무게도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냉전-분단-독재'와 '민족-통일-민주'가 부딪히는 격랑속에서 나타난 보편적 가치의 실현과정이었습니다."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의 대구와 광주의 의미'를 주제로 7일 오후 대구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제26회 기자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김태일 교수의 발표 일부분이다.

지역주의는 정치엘리트들의 기득권 위한 것

a

ⓒ 김광재

김 교수는 이어 "'TK정서'나 '호남소외론'이 서울에 가 있는 지역 출신 인사들과 기득권 세력의 문제이지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전제하고 "탈 지역주의 정치문화를 만들어갈 정치세력 형성에 대구와 광주의 개혁세력들이 힘을 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언론재단·한국기자협회 주최하고 광주전남기자협회와 대구경북기자협회가 주관했다. 이상기 한국기자협회장은 "5.18을 주제로 대구에서 포럼을 열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인사한 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자고 제안, 참석자들과 함께 노래했다.


사회는 광주방송 신건호 차장이 맡았으며, 토론자로는 강기룡 복현정치학회 부회장, 권오국 생명·평화·조화를 공부하는 모임 대구지역 대표, 신일섭 호남대 교수, 이건상 전남일보 사회부 차장, 이윤기 5·18광주민중항쟁 대구·경북동지회 사무국장 등 5명이 나섰다.

신일섭 교수는 "대구에서 이런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다"면서도 "100년 이래 국가 존망의 최대 위기라고 하는 이때에 아직도 지역주의 극복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기까지 하다"고 술회했다.


80년 광주는 한국민주화 운동의 절정

강기룡 부회장은 80년 광주는 한국민주화 운동의 절정이라고 규정한 뒤, "60∼70년대 박정희 체제에 대한 저항의 선봉에는 대구가 서 있었고 대통령의 고향이라 더욱 철저한 탄압을 받아 그 이후 민주화 세력의 힘이 꺾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87년 6월항쟁 때는 대구도 광주도 모두 열심히 투쟁했다"며 "대구는 퇴행적 수구적 도시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으나 대구의 역사에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노력과 정신적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권오국 대표는 "남명 조식 선생의 지리산행은 영호남 의병의 뿌리가 됐고, 전라도로 피해간 최수운이 뿌린 동학 남접의 씨앗은 19세기 전국민적 궐기로 이어졌다"며 "영호남의 역사는 분열적 과정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권대표는 또 "지역패권주의의 원인은 지역내 자치적 역량이 기초되지 않은 가운데서 그 지역 출신이 집권하면 일거에 지역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잘못된 기대에 있다"고 전제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자치역량 강화, 제도적 장치마련, 지역간 공동사업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윤기 사무국장은 "80년 5월 언론의 왜곡된 보도로 인한 오해와 불신이 아직도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언론이 해야할 역할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주문했다.

언론이 해야할 일 아직 많이 남아

이건상 차장은 지난98년과 99년의 양 지역 기협 교류와 비교해 볼 때 이 문제에 관한 이해의 폭이 많이 넓어진 점을 짚은 뒤, "TK정서와 호남소외론은 자기지역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요직에 앉으면 마치 자신이 정권을 잡은 것처럼 느끼는 '지배허위의식'이란 측면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양 지역 모두 내부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는 이 시점에 광주와 대구 지역이 다양한 층위에서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를 맡은 신건호 차장은 5·18 행방불명자가 아직 70명이나 있는데 국가기념일이 되고 유공자가 되는 것으로 5·18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라며 "만약 암매장한 장소가 있다면 그 곳을 찾아내는 일이 여러분들이 할 일"이라는 말로 이날 포럼을 매듭지었다.

대구, 광주,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제문 요약]

대구는 1960년 2·28대구민주운동을 통해, 광주는 5·18광주민주항쟁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실현에 기여하였다. 2·28은 4월혁명의 횃불이었고 5·18은 민주주의의 십자가였다. 대구와 광주는 지방에서 시작하여 전국적 변화를 이끌어 내고 보편적 가치의 실현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대구와 광주는 모든 자원이 중앙과 서울로 집결되는 '소용돌이 정치' 속에서 지역주의의 거점이 되어 정치적으로 서로를 경계하고 배제하게 되었다. 이것은 중앙과 서울에서 권력 투쟁에 참가하는 정치엘리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 지역에 지역주의를 동원한 결과이다.

이렇게 형성된 지역주의 때문에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고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대구와 광주 자신이다. 각 지역 내에는 지역주의 때문에 집행부도, 의회도, 사회세력도 하나의 세력에 의해 대표되는 정치적 동종교배(同種交配)가 이루어지고 있다. 견제와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당연히 정치적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정치를 위하여, 그리고 각 지역 자체의 발전을 위하여 대구와 광주는 지역주의의 미망에서 깨어나야 한다. 중앙집권과 서울집중의 틀 속에서 지역주의를 동원하는 정치엘리트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대구와 광주는 서울 중심적 사고를 타파하고 각자의 지역혁신을 통해 발전을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낡은 지역주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수행할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 대구와 광주의 개혁세력들은 탈지역주의 정치문화를 만들어갈 정치세력 형성레 힘을 합해야 한다. 지역주의의 극복은 각 지역 내부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역 바깥에서의 지역주의 비판은 지역적 보수성을 강화할 뿐이기 때문이다. 각 지역 내부로부터 낡은 정치를 청산할 세력들이 모여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 가야하며 특히 대구와 광주로부터 그러한 노력이 앞장서 나와야 할 것이다

/ 김태일 영남대 교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4. 4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