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서도 한국전쟁 '집단 학살지'

9일 구성면 속칭 돌고개에서 유골 나와

등록 2003.05.09 20:33수정 2003.05.1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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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승욱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주, 대전, 부산, 대구 등지의 형무소에서 수형자들에 대한 집단 학살이 이뤄졌다는 증언과 함께 유해 발굴로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경북 김천의 구 김천형무소(현 김천시 평화동)에서도 재소자들이 학살된 후 인근 야산에 매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인학살 투쟁본부 관계자가 학살 현장을 발굴하고 있다.
민간인학살 투쟁본부 관계자가 학살 현장을 발굴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승욱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통합특별법 쟁취 투쟁본부(이하 민간인학살 투쟁본부)는 9일 오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인근 속칭 돌고개 계곡에서 사람의 정강이 뼈와 두개골 일부, 그리고 치아 등 유골 100여점 이상을 발굴했다.

김천시 구성면 속칭 돌고개, 유골 100여점 이상 발굴

민간인학살 투쟁본부는 같은 날 오전 9시경부터 유골이 발견된 지점을 가로, 세로 2m 폭으로 곡괭이와 삽 등을 이용해 발굴하자, 지하 80cm 지점부터 유골과 유류품 등이 발굴된 것.

또 이날 발굴에는 권총과 칼빈 소총의 탄피 5점, 허리띠 버클 1점, 신발 밑창 1점, 흰 단추 1점 등도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날 유골과 유류품이 발견된 속칭 돌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기결, 미결수들이 수감됐던 구 김천형무소와는 10여km 떨어진 지점이다.

이날 학살지 발굴에서는 유골 외에도 칼빈 소총의 것으로 보이는 탄피도 다수 발견됐다.
이날 학살지 발굴에서는 유골 외에도 칼빈 소총의 것으로 보이는 탄피도 다수 발견됐다.오마이뉴스 이승욱
민간인학살 투쟁본부에 따르면 이날 유골이 발견된 지점 외에 돌고개 계곡 일대 4군데에서도 피학살자들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들은 습기가 많은데다 지하수가 흐르고 있어 토양상태가 좋지 않아 발굴을 포기했다.


직접 발굴을 진행한 한 관계자는 "이 지역 일대의 흙이 습기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지역이라 빠른 시간에 유골이 훼손됐고, 발굴된 유골 역시 훼손 정도가 심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유골 발굴은 돌고개 인근 상좌원 주민들에 의해 학살 지점이 확인되면서 가능했다. 각종 자료들에 의해 학살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은 있어 왔지만, 정확한 유골지점이 증언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인근 주민들 중에는 당시 헌병대에 이끌려 매장용 구덩이를 파는데 동원되는가 하면 학살 당시 상황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목격자들의 증언은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50년 7월에 헌병대 장교가 '왜? 주민들을 동원하지 않느냐'며 구성면 지서장의 따귀를 때렸다. 공포 분위기에서 장기를 두다 말고 돌고개로 이끌려 왔다. 당시 헌병들이 '당신들도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말을 하면서 위협을 했다. 그런 가운데 마을 주민들과 함께 땅을 파고 구덩이를 만들었다."

"얼마 후 군인들이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을 끌고 왔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구덩이 가로 죄수들을 죽 둘러 세워 놓더니 총을 쏘았다. 사람들이 꼬꾸라지면서 구덩이로 쓰러졌고, 헌병들의 지시에 의해 그 위로 흙을 퍼 시신을 묻었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살아 있었는지 덮여 있던 흙을 치우면서 구덩이에서 나오려고 했다. 흙으로 메운 구덩이가 꿈틀꿈틀 했다."

"헌병들이 끌고 가 구덩이 팠다...
죄수복 입은 사람들 총으로 쏴 죽였다"


당시 학살 현장을 직접 목격한 송죽리 주민 이아무개(86)옹 등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한 대충의 이야기들이다. 당시 군인들은 목격자들에게 '가족들에게 알리면 죽일 것'이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은 돌고개 부근에서만 60여명의 죄수들이 학살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난 89년 김천문화원에서 발행된 <김천시지>에도 학살당시의 상황이 잘 나타나고 있다. <김천시지>에 따르면 당시 김천과 성주, 구미 지역에서 예비검속으로 불법 체포, 구금된 인원이 보도연맹원은 1000여명은 넘고 실제로 이중 300여명은 김천지역에서 살해됐다고 밝히고 있다.

"김천은 이들을 경찰서에 집단 수용했다가 협소해 교도소로 이송한 후 공산군의 남하가 급속도로 진행돼 대전에 이르렀을 때 군당국에서 이들 연맹원 전원을 즉결처분하기로 전국에 작전명령을 내렸다.

이는 소개령이 내리기 2일전인 7월 28일 새벽부터 연맹원을 인수한 헌병당국이 연맹원의 진위도 가리지 않고 전원트럭에 분승시켜 삼엄한 경호하에 직지사 근처, 구성면 송죽동 근처, 상주가도로 천막을 씌운채 호소행 산골짜기에서 스스로 구덩이를 파게 한 후 도열시켜 총살했다. 송죽동에서만 트럭 5대로 호송했는데 수는 300명으로 추산되고 이 지방 전체 희생자는 천명 정도로 추측된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이들 가운데는 좌익경력이 없으면서 친구나 측근의 권유로 보도연맹 입맹원서에 단순히 서명해 준 탓으로 끌려가서 희생된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근구 편저, <김천시지> 1989년 10월 15일 김천문화원 발행)


한국전쟁 직후 김천지역 3군데에서 학살 추정

하지만 민간인학살 투쟁본부는 당시 피학살자들이 죄수복을 입은 채로 학살된 점 등을 미뤄 당시 예비검속으로 보도연맹원으로 분류됐던 이들 외에도 일반사범인 기결수들에 대한 학살도 일부분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증언과 유골 직접 발굴로 확인된 김천지역 학살지는 이날 유골이 발견된 구성면 송죽리 돌고개 외에도 보도연맹원들이 사살된 구성면 과곡리 대뱅이재와 김천 직지사 근처 계곡 등으로 파악되며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골 발굴된 9일 오후 들어 중단됐고, 민간인학살 투쟁본부는 유골 훼손 문제 등으로 추가발굴을 미룰 계획이다.

한편, 김천 돌고개에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지가 발견됨에 따라 전국적인 민간인학살지에 대한 발굴과 재평가 사업에 대한 정부의 특별법 제정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학살 다룰 통합특별법 제정 시급

현재까지 추정되고 있는 전국의 학살지는 대략 100여군데. 피학살자도 적게는 40만에서 많게는 100만까지 민간인들의 희생이 있었을 것으로 관련 단체들은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 4.3항쟁 등 일부 지역과 사안별로 특별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아직 전국 단위의 통합법 제정은 요원하다.

지난 2001년 김원웅 의원 등이 통합특별법을 발의해 놓고 있지만 아직 법제정에 대해서는 제자리 걸음이다. 현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과 40여개 피학살자 유족회 등은 서울 한나라당사 앞에서 70여일째 노숙 투쟁을 벌이며 법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김천지역 학살지 중 한 곳으로 9일 유골 등이 발굴된 김천 구성면 돌고개 계곡 입구
김천지역 학살지 중 한 곳으로 9일 유골 등이 발굴된 김천 구성면 돌고개 계곡 입구오마이뉴스 이승욱
최근 들어 유족회 대표 등이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검토 후 지원 약속'을 받긴 했지만 문제는 국회가 더욱 가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

범국민위원회 이창수 기획실장은 "올 6월까지 법제정이 지연된다면 앞으로 사실상 3년간은 입법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면서 "올 회기를 지나고 나면 내년 총선이후에는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기획실장은 또 "학살지역이 워낙 크고, 특히 한국전쟁의 시대상황상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당시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와 유족들의 한을 풀고 새로운 인권의 관점에서 우리사회가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범국민위원회는 오는 22일 국회 앞에서 통합특별법 제정 쟁취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여는가 하면 ▲ 29일 이애주 서울대 교수의 해원 춤 공연 ▲ 5월말 학살 지역 지방의원 워크숍 개최 ▲6월 중순 제2차 유족증언대회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며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천형무소 수형자 이송기록 조작 가능성 높아"
"민간인 학살, 이데올로기 문제로 접근 안타까워"
[인터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이창수 실장

- 김천지역 학살규모는 얼마로 보는가?
"당시 김천형무소 재소자 1000여명이 인근 계곡마다 학살된 후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7월 10일부터 27일 사이에 학살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보도연맹에 연루된 300여명도 김천시 구성면 가곡리 대뱅이재에서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학살지점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 당시 김천형무소 수형자에 대한 관련 자료는 없나.
"<김천소년형무소사>(김천소년교도소, 2002년 발행)라는 기록에 보면 김천형무소 재소자가 50년 7월 10일 대구형무소로 이감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대구형무소 자료에 이송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소문으로만 나돌던 이곳에서 유골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관련 자료들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 현재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통합특별법) 제정문제는 어떤 상황인가.
"지난 2001년 김원웅 의원들의 이름으로 발의를 한 상황이다. 또 각 지역 유족회 등에 의해 개별 사안별로 청원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심의를 해야 하는데 아직 않고 있다."

- 통합특별법 제정의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학살 규모가 워낙 크고, 자칫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시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와 유족들의 한을 풀고 새로운 인권의 관점에서 우리사회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또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는 명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단지 이데올로기 문제로 불온시 하는 것이 안타깝다."

- 통합특별법이 왜 필요한가.
"진상규명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또 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이 돼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민간에서 하기는 어렵다. 인력, 재원 또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실체가 밝혀져야 하는데 이것은 국가차원에서 해야 할일이다. 이를 위해 특별법 제정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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