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선생님은 단 한 분"

군산 우리배움터 한글학교

등록 2003.05.12 08:55수정 2003.05.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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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배울 시기를 놓친 시민들을 위한 소중한 보금자리 ‘우리배움터 한글학교’(이하 우리배움터)를 찾았다. 올해로 개교 11주년을 맞이한 우리배움터는 민중당 사무실로 쓰였던 곳에 지금도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선거사무실로 썼던 이곳을 시민들을 위한 의미있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데 뜻을 같이 하고 한글학교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배움터 한글학교 개교 10주년 행사
우리배움터 한글학교 개교 10주년 행사김병희
5월 18일이 개교기념일인 우리배움터는 지난해에 10주년 행사를 가졌다. 학생수가 많을때는 200명 가까이 됐다는데 지금은 45분 정도가 한글을 배우고 있었다.

정미선 간사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도 있지만 복지관이나 문화센터등에서 한글학교를 많이 만들어 배우는 장소가 늘어났다고 전했다. 정 간사는 한글학교가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이나 지속성이 없이 단 시일내에 끝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글을 배우러 오시는 분들은 50~60대 연령층이 많은데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기가 쉽다는 거다. 실제로 7~8년 다니셨던 분중에서도 잠시 쉬는 동안 한글을 잊어버려 다시 찾는 분들도 계신다고 했다.

우리배움터에는 정미선 간사를 비롯한 세명의 교사들이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배움터가 문을 연 시점부터 함께 했다는 임진영 교장은 개인사업과 이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수업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지는데 오후반 수업을 이 자원봉사자들이 교대로 진행하고 있단다.

우리배움터가 10년이상 유지되기까지 이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때는 초등학교 교사로 계시던 분이 일주일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수업을 해 주셨고 일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 도와 주시기도 했단다. 교감과 교사대표를 맡고 있는 오록 선생님을 비롯한 박명우, 이주현 선생님이 현재 활동중이며 이주현 선생님은 군산대 학생으로 입대전부터 자원봉사를 하다가 제대후에 다시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6개월 동안 기초수업을 받고 1년이상 되면 떠뜸떠듬 읽게 된다는데 연세가 드신 분들이라 사투리를 표준말로 옮기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수업은 초등학생 교재로 진행되며 학생들은 한글과 간단한 기초산수를 배우게 된다고 했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 수업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저희가 많은걸 가르쳐 드리는것도 아닌데요 뭐.. 오히려 더 많이 챙겨주시고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학생들과의 생활이 마냥 즐거워 보이는 정미선 간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이 학교 교장선생님에다 아들은 한의대 교수를 하는 그 사모님은 당신이 한글을 모르는게 행여 남편과 아들에게 폐가 될까 싶어 늘 조심히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늦게나마 우리배움터를 찾게 되었다는데 어느해 스승의날 정미선 간사에게 편지를 써 놓고 도망치듯 가버리셨다는거다.

“정 선생님은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기억에 남는 선생님도 계시겠지만 저에게 선생님은 정 선생님 단 한분 뿐이랍니다.”


한글학교에서 배운 실력으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그 분의 편지는 구구절절 고맙다는 내용이었단다. 정 간사는 10년동안 이 곳을 지키면서 그때처럼 보람있었던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분은 지금 학교에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행사가 있을때마다 참석하신다고 했다.

우리배움터 10년 지킴이 정미선 간사
우리배움터 10년 지킴이 정미선 간사김병희
우리배움터도 전에는 일반 학교처럼 소풍도 가고 체육대회도 하고 행사가 많았다고 했다. 월 만원씩 내는 회비와 후원회비로 운영이 되는터라 행사도 갈수록 줄어들어 일년에 한번 개교기념일이 있는 5월중에 소풍을 떠난단다.

행여 남들 눈에 띌새라 가까운 곳을 꺼리는 탓에 소풍은 관광버스를 타고 좀 먼곳으로 다녀온다고 했다. 정 간사는 올해는 충남 만수산 휴양림에 아주 재밌게 다녀왔다고 자랑했다.

1년에 4차례 모집광고를 내고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우리배움터를 찾는 사람들은 상담과정에서 글 모르는 설움때문에 10명에 7명꼴로 눈물바람이라고 했다.

우리배움터를 찾은 분들의 이야기다. 한 분은 공장을 다니면서 글도 모르고 하니 열심히 일만 했다고 한다. 성실함이 눈에 띄어 회사측에서 반장을 시켜 주었는데 덜컥 겁이 나서 공장을 그만 둬 버렸다는 거다. 또한 교회에서 구역장을 시켜 곤란했던 이야기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 질 법도 하다. 그랬던 이들에게 우리배움터라는 소중한 공간을 통해 글을 배우게 된다는 기대는 또 얼마나 컸을까...

“말하지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는 문맹자들이 아직도 우리곁에 많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께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고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이 말은 10여년 동안 우리배움터를 지키고 있는 목적이자 지킴이들이 이 터를 지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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