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대들은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

등록 2003.05.12 15:27수정 2003.05.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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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을 남산포 가는 길. 길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가을 남산포 가는 길. 길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 박철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내 마음에 속내를 다 들어 내놓고
신에게 가장 솔직해 지는 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것은
사람이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길이다.
한번도 가지 않은 낯선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신이 보낸 사람이 틀림없다.
(박철 詩. 길)



나는 올해로 운전면허증을 딴 지가 9년이 되었다. 9년 동안 수많은 길을 다녔다. 교동 섬에서 7년째 살지만 이따금 차를 몰고 서울이나 인천 지방도시를 가게 된다. 도심 한복판엘 들어갈 때도 있고, 탁 트인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하고 한적한 시골 비포장 길을 털털거리며 가기도 한다.

운전경력이 과히 짧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도무지 길에 대해선 여전히 까막눈이다. 조수석에 아내를 꼭 동반한다. 늘 다니는 길도 찾지 못해서 헤맨다. 아내의 도움을 더러 받기도 하지만, 아내도 나랑 비슷한 처지여서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어디 낯선 곳이라도 갈라치면 교통지도를 펴놓고 열심히 사전 숙지를 한다. 머리에 모든 정보를 입력해 두지만, 건망증의 달인답게 금세 저장해 둔 정보가 사라지고 만다. 서울에서 15년을 살았지만 지금도 명동이나 종로를 어떻게 가야하는지, 가는 길을 잘 모른다. 길눈이 어두워도 보통 어두운 게 아니다. 아내 말로는 똑바로는 잘 가는데 옆으로는 잘 못간다고 한다. 그 말이 맞는 말이다.

지금부터 10년 전, 다른 동료 목회자들과 유럽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7명의 목회자중 내가 여섯 번째로 젊었다. 배낭을 메고 11개 나라를 돌았는데,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길을 잃어버리거나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감리교본부에 있는 손 목사를 애인처럼 꼭 따라 다녔다.

한번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엘 가게 되었다. 들어가기 전에 두 시간 후에 박물관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자 행동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우리 일행의 안내자격인 선배 목사가 시간약속에 엄격(?)할뿐더러, 그날그날 여행 시간표가 짜여져 있기 때문에 약속시간을 칼 같이 지켜야 했다.


a 가을 남산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 길로 지나갔으리라.

가을 남산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 길로 지나갔으리라. ⓒ 박철

나는 루브르 박물관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한 시간은 박물관 진귀한 물건들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 보냈고, 한 시간은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데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영어가 서툴러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아도 사람들의 대답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때 어느 일본 여자를 만나는데 그 여자가 출구까지 바래다주었다. 내가 그 여인에게 손바닥에 ‘出口, EXIT’라고 써서 보여주었더니 5분 만에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는 것이 아닌가. 고맙다는 말을 10번도 더 했다. 또 만날 수 있어야 신세를 갚을 텐데.


어느 때는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나에게, 차창을 열고 길을 물어보는 운전자가 있다. 참 재밌다. “잘 모른다” 고 대답하며 나도 웃는다. 고급 코미디가 아닌가?

요 며칠 전,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호주의 퀸즈랜드대학 (The University of Queensland)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같은 대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송○○라는 분의 전화였다. 나의 ‘길’ 이라는 시를 읽고 너무 감명을 받고 감정이 북받쳐 울면서 전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고맙기도 하고 한편 부끄러웠다. 송 박사라는 분도 분명 ‘길’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길의 의미는 서로가 다른 것이겠지만.

이 어지러운 세상에 바른 길을 좇아 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길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강화에서 제주도로 가는 길이라면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처음에는 헤매지만 조금 지나면 제 길을 찾게 된다. 길은 다 통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성공과 행복, 삶의 의미와 진실을 목적삼고 찾아가는 길이라면, 결코 쉽게 찾을 수 없다. 오랜 인류의 역사는 방황과 미로의 수많은 흔적을 기록하였으며, 희귀하게 좋은 길잡이가 나타난 일도 있으나, 오도의 안내자들이 인류의 역사와 그 당대의 시대정신을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였고, 오늘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길은 언제나 부단히 물어질 것이다. 길을 묻는 자는 잘 물어야 한다. 길이 잘못 안내되면 그의 평생의 삶이 헛수고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도자로서 길의 안내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자신 없는 위선적 언어와 행동을 삼가야한다.

나는 시방 길을 가고 있는 구도자(求道者)의 한 사람이다. 도상(途上)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남에게 길을 안내해주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사람이다. 나부터 착실하게 생명과 진리에 이르게 하는 그 길을 찾고자 노력할 뿐이다. 오늘도 갈급한 심정으로 길을 나선다.

지금 그대들은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 부디 바른 길(正道)을 가시기 바란다.

a 저 아저씨, 자전거를 타고 어딜 가시나? 숲이어서 적막하구나

저 아저씨, 자전거를 타고 어딜 가시나? 숲이어서 적막하구나 ⓒ 박철

길이 어느 날 갑자기 벽이 되었습니다. 깜깜한 절벽, 끝없는 추락만 기대합니다. 길은 스스로 길이 되어 있곤 하였지만, 수없이 그 길을 다니면서도 그 길의 의미를 깊이 인식하지 못한 건 나의 불찰입니다. 갑작스러운 단절은 황망합니다. 이제 모든 길은 출입을 금하고 단호한 의지가 산처럼 높습니다. 쓸쓸히 돌아 서면 발밑까지 밀려온 해일이 하얗게 눕습니다. 사실은 길은 어디에도 나 있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통해야 겨우 걸음을 옮길 수 있던 이유입니다. 나는 세상 앞에 서서 흔적뿐이던 길을 이제도 그리워합니다. 아아, 나는 언제 당신에 다 이를 것입니까.(김영천 詩.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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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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