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그리고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

[골목 여행] 나의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등록 2003.05.13 12:31수정 2003.05.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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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곳엔 언제나 골목이 있다.


집들과 집들이 마주보고 서 있는 촘촘한 일상들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조그만 길목… 어릴 적 나는 그 조그만 골목 속에서 세상을 사는 방법을 배웠다.

학교를 진학하기 전 어린 시절… 동네의 꼬마녀석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삼삼오오 떼를 지어 조그만 골목 흙바닥에 모여 앉아 하루 종일 흙 놀이를 하곤 했다.

그렇게 흙 놀이를 하고 있노라면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지나가며 누구네 집 아이에게 밥은 먹었니? 걱정도 해주고… 흙 놀이는 지지~라며 말리기도 했다. 시골 촌 동네 꼬마 아이들은 그렇게 동네사람들과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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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희

지금은 도시의 골목 속에서 쉽게 흙을 발견할 수 없지만 도시의 아이들은 이제는 콘크리트로 뒤덮인 골목 속에서도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며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내가 어릴 적도 그랬던 것 같다…

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난 형이랑 조그만 박카스 박스 통에 딱지를 잔뜩 담아 가지고 항상 가던 장소가 있었다. 시골 조그만 로터리 골목은 동네 아이들이 만나는 광장이자 시끌벅적한 장터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딱지를 따고 잃으면서 이루어 낸 그 공간은 실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겨우 지나갈 만한 조그만 골목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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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최승희

햇살이 자근자근하게 들던 어느 봄 날… 오후라도 될라치면 일찍 딱지를 잃은 아이들은 담벼락아래 모여 앉아 말 잘하는 동네형에게 근사한 중국 영화이야기를 듣거나 김일 박치기 생중계 방송을 듣곤 했는데… 그 얘기가 얼마나 리얼하게 들렸는지 밤새 그 얘기의 흥분이 가시지 않을 때도 있었다.


골목은 그렇게 나에겐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던 광장이었다. 거기엔 언제나 아이들이 있었고, 동네사람들이 사는 풍경이 있었고 어쩔 땐 듣기 민망한 욕쟁이 할머니의 간간한 출연도 있었던 재미난 삶의 연극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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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최승희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의 골목은 옛날 그 시절처럼 넉넉하지만은 않다. 사람 사는 일이 바쁘고 서울처럼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살다 보면 골목은 아이들의 광장이 아니라 쉽게 주차장으로 변해 있곤 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끝내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또는 과외를 하러 달려가야 하는 지금의 아이들은 골목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있을까?

난 내가 경험한 골목이 이제는 까마득하게 지나간 일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들은 자기가 사는 동네의 어딘가에서 골목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친한 친구들과 학원을 가는 길이나….

할머니가 끌어주는 유모차에 혹은 등에 업혀 여전히 골목길에서 삶을 배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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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최승희

아이들의 웃음은 이젠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금방 추억의 골목으로 가는 시간여행을 하게 해준다. 특별히 준비된 웃음이 아니라 그저 새로운 게 보이면 웃음으로 소통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난 하루의 청량감을 넘어 사는 방법조차 배운다.

하지만 개발논리에 따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골목세계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별로 없어 보인다. 조그만 구멍가게 앞에서 동전을 넣고 잠시 동안 즐기는 미니 오락기, 동네 만화가게에서 재미난 만화를 빌려오며 친구들과 티격태격 말싸움을 주고받는 재미…그 흔했던 다방구나 오징어 게임을 하는 애들은 이제 볼 수가 없다.

재개발의 도심 속에서 심하게 소외되어 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난하지만 그래도 함께 살았던 예전의 동네 골목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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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최승희

아이들이 뛰어 노는 골목의 세계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아이들의 웃음들이 사라진 도심 속은 또 얼마나 허탈하고 황량할 것인가?

지금 아이들은 흙 놀이를 잃어버린 대신 TV모니터를 보며 주먹과 칼을 휘두르는 게임을 하고 있다. 넓적한 돌멩이를 어깨에 지고 깡총 발을 뛰는 대신 리모콘을 두드리는 것이 더 일반적인 재미로 다가오고 있다.

동네 골목은 아이들에게 추억을 심어주기엔 이제 너무 낡아 버린 것일까? 아이들이 학원이나 게임 모니터에서 조금만 떨어져 다시 골목으로 돌아서는 속담거림을 기대하는 것은 아마 무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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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최승희

그런 생각으로 작은 도심 속의 골목길을 걸으며 많은 아이들과 얘기를 했다. 눈으로 때론 말을 걸어가며.... 아이들은 아직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즐거움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순진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골목은 또 하나의 나의 추억처럼 그렇게 새록새록 살아날 수 있을까?

난 믿는다... 봄이 오는 골목길에서 만난 아이들이 그 시절 보냈던 그 조그만 골목이란 공간 속에 얼마나 많은 추억과 사랑이 깃들어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기억해 낼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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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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