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이를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정신지체아동 담임교사였던 면일초등학교 백선양 선생님

등록 2003.05.15 14:43수정 2003.05.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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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면일초등학교 백선양 선생님

면일초등학교 백선양 선생님 ⓒ 이철용

스승의 날, 요즘 학교에선 사제간의 정이 우러나는 풍경들은 찾아볼 수 없다. 존경과 감사의 날이어야 할 스승의 날이 일부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그 의미마저 퇴색하는 것이 안타깝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스승의 날과 관련한 행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어떤 학교는 궁색한 변명을 붙여서 휴교까지 했다. 스승의 날을 맞는 교사들은 씁쓸하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학교는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일꾼들을 여전히 배출하고 있다. 그 곳에는 여전히 학생과 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현장은 많이 달라졌다. 많은 교사들이 학교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바라본다. 스승의 날을 맞으며 교사들에게서 빼앗은 존경을 돌려드렸으면 한다.

"평생 잊지 못할 용연이 선생님"

정신지체 장애아동 용연이의 어머니 이정심(43)씨에게는 잊지 못할 선생님이 있다. 면목동의 면일초등학교 백선양 선생님(27). 올해도 이씨는 스승의 날을 맞아 2년째 용연이의 손을 잡고 백 선생님을 찾아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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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백선양 교사는 용연이를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하고 말한다. 백 교사와 용연이의 만남은 2000년 3월로 올라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부임지로 발령을 받은 면목동 면일초등학교.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부임해 4학년 학급 담임을 맡게 되었다.

교사 초년생으로 담임을 맡아 부담스러웠는데, 학급에 들어가보니 정신지체 장애아동인 용연이가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백 교사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용연이와 함께 온 학부모 이정심씨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

정신지체 아동의 부모들이 가장 힘든 시기가 신학기라고 한다. "과연 새로운 담임교사가 우리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겠는가?"하는 걱정 속에 학교를 찾아왔는데 경험이 전혀 없는 초임교사라니… 허탈해 하던 용연이 엄마는 "용연이와 같은 아이를 맡아보시는 것도 앞으로 교직생활에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수업 첫째날은 개학식과 인사만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둘째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용연이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박수를 치며 돌아다녔다. 전혀 경험이 없던 백 교사는 난감하기만 했다. 5세 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진 용연이는 야단을 쳐서 해결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교사가 먼저 장애아동 존중하면 급우들도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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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용

백 교사의 부모님도 30여 년 교단을 지켜온 현직 교사이다. 용연이 문제를 혼자 힘으로 해결할 길이 없던 백교사는 어머니께 상담을 했고 오랜 교육 경험이 있었던 어머니는 "선생님이 아이를 먼저 존중해주고 위해주면 다른 아이들도 같이 존중해 주고 보살펴 줄 것이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백교사는 용연이를 무시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애정을 갖고 대하기 시작했다.


백 교사는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여 매사에 아이들에게 "우리는 한마음 반"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쨌든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 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다같이 행복한 사회가 된다. 우리 교실에서도 용연이를 동생처럼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에 모든 아이들이 용연이를 서로 챙겨주고 도우려고 했다. 용연이도 처음에는 급우들과 어울리지 못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난도 치며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백 교사는 매일 '오늘의 모범 어린이' 한 명을 전체 토의를 거쳐 선정했다. 매번 치열한 찬반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하루는 용연이가 추천되었다. 추천 이유는 "용연이는 노래를 잘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 모두가 동의해 용연이가 '오늘의 모범 어린이'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것이 용연이에 대한 백 교사의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때론 용연이 때문에 수업이 지연되기도 했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학급 친구들과 부모들이 대부분 이해를 했다는 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오늘의 모범 어린이'

a 정신지체아동 용연이

정신지체아동 용연이 ⓒ 이철용

용연이가 6학년이 된 지금, 4학년 때 친구들이 용연이를 보면 반갑게 대해준다. 용연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그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되도록 함께 어울리려 한다고 백 교사는 말한다. 백 교사 자신도 예전에는 장애인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는데 용연이를 만나면서부터 장애인을 이해하고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백 교사는 "통합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통합교육은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통합교육은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백 교사. "우리반 아이들은 평생 살아가면서 약한 이웃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용연이를 통해서 배웠다"며 "그 아이들은 최소한 장애인이 있다고 멀리하거니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백 교사와 만난 1년 동안 용연이는 많이 달라졌다. 학기 초의 모습과 학기 말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려졌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사랑을 받은 1년간이 용연이를 변하게 했다. 장난기도 많아졌고 친구들의 이름도 바꿔부르며 놀리기까지 한다.

백 교사는 "통합교육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까닭에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교사들은 장애아동을 제대로 지도하는데 애를 먹고 있어요"하고 말한다. 그래서 교육과 연수 등을 통해 장애아동에 대한 교육프로그램들이 많이 제공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용연이 평생 잊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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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용

백 교사는 "용연이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장애아동의 경우 준비물이 갖춰지지 않으면 수업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용연이 어머니의 경우 다른 어느 부모보다 철저하게 수업 준비물을 챙겨주며 협력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래서 용연이 때문에 속상한 적은 없었고, 즐거움을 주는 아이로 용연이를 기억한다고 백교사는 말한다.

교실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를 배우는 중요한 공간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 뛰어놀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실은 약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준비하는 '학원'이 되고 있다.

스승의 날인 오늘, 약자를 위한 배려와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실천하는 백 교사의 '편견을 허무는 함께하는 교실'은 함께 하는 사회를 위한 출발선이 될 것이다.

이제 모든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어떤 선생님이 우리 아이의 담임일까?"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활기찬 새학기를 열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백 교사에 대한 용연이 어머니의 존경심이 모든 학부모의 존경심이 되어 교사들에게 돌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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