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희망'과 네티즌의 '걱정'

[정치 톺아보기 <20>] 노무현의 방미 '변신' 읽기

등록 2003.05.17 18:18수정 2003.05.1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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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5월14일 한나라당을 방문해 박희태 대표와 환담한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5월14일 한나라당을 방문해 박희태 대표와 환담한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엽기수석'의 꿈은 이뤄지는가.

지난 5월14일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행' 꼬리를 떼고 대표로 취임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를 축하하기 위해 당사를 찾아가 당직자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화제는 단연 방미중인 노무현 대통령의 '변신'과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설로 모아졌다.

박희태 대표 "좋은 성과를 많이 거두고 오시길 바란다. 국민들의 관심이 크다. 안보 문제와 경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크다."

유인태 수석 "갔다오면 지지층이 확 바뀌지 않을까 싶다.(웃음)"

박희태 대표 "우리가 바라는 것이 그거다. 대통령이 지지층을 바꿀 수 있는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바뀐다니 다행이다."

김영일 사무총장 "민주당의 신주류, 구주류 입장도 바뀌는 것인가?"

유인태 수석 "한나라당 지지층이 대통령 지지층으로 확 바뀔 것 같다."


박희태 대표 "오기 전부터 많이 변한 것 같다. 미국에서 말하는 것이 옛날에 생각했던 노 대통령이 아닌 것 같다."

유인태 수석 "지난 번 만찬 때도 '야당의원 시절하고 대통령은 바뀌어야 되지 않겠나' 지적하신 적 있다."


박희태 대표 "스스로 노력도 한 것 같고 변한 것 같다. 미국도 진작 갔어야 초반의 시행착오도 겪지 않았을 것 같다. '정치수석'께서 역할을 많이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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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은 실현된 '엽기수석'의 꿈

"갔다오면 지지층이 확 바뀌지 않을까 싶다"던 영원한 자유인 '엽기수석'의 꿈은 노 대통령이 돌아오기도 전에 반쯤은 실현된 느낌이다.

이를테면 '전통적'으로 노무현 지지층이 즐겨 찾는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노무현의 '대북 강경 발언' 관련 기사에 실린 독자의견 중에서 가장 추천수가 많은 "盧통장님, 꽤 일찍 기대를 접게 만드누만요"(17일 오후 5시 현재 조회수:3159, 추천:466, 반대:74)라는 글은 노 대통령의 '변신'을 이렇게 비판했다.

"DJ 할아버지가 수구꼴통들과 미국넘들의 온갖 협박을 헤치면서도 그나마 이루어놓은 남북신뢰, 민족 스스로의 해결 의지를 한큐에 날려버리누만요. 어느 누가 북한 정권에 동의한다고 했습니까? DJ는 동의해서 정상회담 했나요? 민족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맞는가요?

당신에게 북한은 역시 적이었군요. 북한의 개혁과 개방, 민족화해와 생각만 해도 가슴 뜨거워지는 통일이 상대 정권에 대한 적대감을 그렇게 표출하면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당신이 TV토론에 나와 후보가 아닌 대통령이라 말을 아낀다면서 신당이나 북핵 등 이러저러한 문제에 함구할 때 그런 얘기 미국땅 가서 터뜨릴려고 그랬었나보군요.

아, 꽤 일찍 기대를 접게 만드누만요. 당신이 당선되던 날, 광화문에서 크게 소리치며 만세를 불렀던 내가 부끄러워집니다."


노무현의 '이유있는 변신'에 대한 <조선>의 찬사

a 5월16일 미 서부지역 경제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5월16일 미 서부지역 경제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반면에 반(反)노무현 성향이 많은 <조선일보>의 인터넷신문인 <조선닷컴>에서는 노무현의 '변신'에 대한 옹호와 찬사가 넘친다. 이를테면 김수성(essean)씨는 "무엇이 굴욕적인가"라는 글에서 '노통의 지지세력과 얼빠진 일부 지식인들'을 질타하면서 '노무현의 뒷다리를 잡지 말라'고 충고한다.

"북한의 핵개발은 절대 안된다. 왜냐면 미국과 자유세계가 절대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출에서 먹고사는 우리가 미국과 자유세계를 져버리고 홀로 살수는 없지 않는가. 노통의 지지세력과 얼빠진 일부 지식인들은 마치 자기들만이 국민을 대변하고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자기 주장이 옳다면 타인의 주장도 옳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 표 찍어 주어 당선되었으면 그걸로 족하지 무엇을 더 바라는가. 뒷다리를 잡지 말라. 산 정상에 올라가면 시야가 넓게 잘 보인다. 무엇이 굴욕적인가? 세계가 비아냥거리는 빈민국가인 김정일 공산 독재정권에 이끌려 다니는 것이 굴욕적이 아닌가. 북한 동포와 정권은 구별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 우리 선조들은 어떤 외교를 강구하였는가를. 명분만 집착하여 국민과 나라가 절단 나지 않았던가. 역사는 반복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비로소 노무현 대통령이 "정도(正道)로 회귀(回歸)하고 있다"(백식)는 '진지맨'의 독자 분석도 있다.

"사람이란, 말로써 듣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해야만 모든 오해가 풀린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분명 디제이 정부와는 차별성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며, 한국에 돌아오면 어떻게 대북정책을 해야 하고, 국가 경제성장을 앞당기고, 국민에게 어떻게 봉사해야 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꼈을 것이다."

헌정사에서 유례 찾아볼 수 없는 지지층의 역전

이에 신명난 '조선일보 독자포럼'에서는 "노 대통령의 연이은 '미국 예찬' 발언"이라는 제목으로 네티즌의 논쟁을 유도하면서 실시간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17일 오후 6시30분 현재 이에 대한 반응은 "180도 선회에 머리가 어지럽다"는 응답이 59%(773명)로 다수이지만, "국익을 위한 현실적인 처신일 뿐이다"는 응답도 40%(523명)나 된다.

물론 그 중에는 '노빠'(노무현 지지층에 대한 비하 표현)와 '할바'('한나라당 알바'의 줄임말)들의 여론조작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대변인까지 '집권여당 의원들이 이 무슨 추태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여당의원들을 질타하며 '노무현 일병 구하기'에 나선 것을 보면 이를 여론조작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민주당 일각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활동을 극한 표현으로 험구하는 것은 정말 볼썽 사납다…이것이 '국정 발목잡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각성해야 한다. 사실 대통령의 궤도수정에 따른 진통은 예견되었던 터다. 바닥 지지층은 물론 그 지지층의 이탈이 두려운 일부 여당 의원들의 반발이 그것이다."

이쯤 되면 아예 여야가 바뀐 느낌이다. 취임한 지 석 달도 채 안 되어, 이처럼 순식간에 지지층의 역전(逆轉)이 일어난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헌정사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이쯤 되면 힘들게 신당 만들어 제1당 되려고 내년 총선까지 기다릴 것 없이 지금이라도 당장 '당'을 갈아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찍는 소리'도 일리가 있다.

DJ 측근 "집토끼 산토끼 다 잃을 수 있다"

a 5월15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5월15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 청와대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스타일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빠' 진영이건 '할바' 진영이건 대체로 공감하는 것은 노무현의 변신이 '이 시대 최고의 반전'(충격)이라는 점이다.

"노무현의 변신은 '유주얼서스펙트'나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대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대선전에 노무현이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난 어느 영화를 봐도 어떤 충격적인 뉴스를 접해도 지금처럼 충격받진 못할 것이다. 노무현 그는 이 시대 최고의 배우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충격적인 반전은 어떤 영화에서도 접해보질 못했다. 오~ 놀라워라~ 그는 또 어떤 반전을 노릴 것인가? 그는 또 어떤 발언으로 국민의 뒤통수를 칠 것인가? 스릴 넘치네."

이 충격적인 '반전'과 '스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당혹스러운 것은 네티즌만이 아닐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노 대통령의 방미 행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혹스럽다. 완전 햇볕정책 포기선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왜 그렇게까지 나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북한과의 신뢰성 위기로 갈 수 있다. 집토끼 산토끼 다 잃을 수 있다."

청와대, "반미 이미지 불식 위해 다소 의도적 표현 사용"

한편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대미 발언이 '저자세 굴욕외교'이자 '햇볕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비치자 노 대통령의 귀국 도착시점에 맞춰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및 기타 쟁점 설명'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공동성명에 대해 국민과 여론은 대체로 환영하고 있으나, 몇 가지 쟁점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이 주장들은 대부분 사실을 곡해하거나 최악의 상황을 예단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대통령의 대미 발언, 남북 교류협력과 북핵 문제와의 관계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극 해명했다.

"노 대통령은 방미중 미국 일각의 반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다소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대통령이 미 상공회의소 및 상·하원지도부 간담회, 그리고 앨링턴 국립묘지 등에서 행한 유화적 발언은 통상적인 외교 관행상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균형감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국익 확보를 위한 실용주의적 외교가 중요함도 인식하고 있다. 한·미간 우호를 강조하지 않고 나쁜 관계만 지적했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정반대의 비판이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부 언급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우리의 최우선 목표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그 전제조건으로서 한·미간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안보적 측면에서나 경제적 측면에서나 미국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간곡하게 미국에 협조를 부탁한 것은 국익 확보라는 대통령의 소명에 충실하기 위한 언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경협위 회의 수용이라는 '파격'적 반응

다행스러운 것은 17일 남북한이 오는 19∼22일 평양에서 열기로 한 제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를 당초 일정대로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북한이 17일 오전 판문점 연락관 접촉에서 경협위 회의를 수용한 것은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이 핵 문제 악화시의 '추가조치' 가능성과 '핵-남북 교류·경협의 사실상 연계' 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이후 나온 북측 당국의 첫 공식 반응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공동성명에 나타난 '추가적 조치'는 북한이 '군사적 조치'로 예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 민감한 대목이다. 또 "남북 교류협력을 북핵 문제의 전개상황을 보아가면서 추진"한다는 입장도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왔다. 따라서 북한의 공식반응은 노 대통령의 '변신'만큼이나 '파격'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한·미 우호관계의 직접적 강조는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함으로써 한반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실용적 접근의 결과일 수 있다. 또 북핵 문제에 대한 '경고성 입장'은 '북핵 불용'의 원칙에서 북한의 행동과 주장에 끌려다닐 수만은 없다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 '측근'도 '대미 자주'보다는 '대북 자주'를 더 강조하는 듯한 발언으로 노 대통령의 '변신'을 옹호했다. 이는 '햇볕정책'은 계승하지만 북한에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 북한은 우리와의 관계에서 '전화 한 통화 해서 명령하듯' 해왔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관계를 계속 가져갈 수 없다. 북이 우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면 우리의 처지를 이해해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예정대로 남북경협은 하고 비료 등은 다 보낼 것이다."

'부시와 친해지기'라는 성과만큼 많은 걱정과 과제 안긴 방미

북한이 그 '메시지'를 해독한 결과라면 다행스런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회담성과를 설명하면서 한국을 떠나면서 가져온 '걱정과 희망' 중에서 희망만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걱정 혹은 희망만, 또는 걱정과 희망을 모두 가져온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특히 '자주' 대신 '동맹'을 취한 대가로 나빠질 대북 관계는 새로운 '걱정' 거리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은 "무엇보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간에 솔직한 대화를 통해 개인 차원에서의 상호 신뢰와 존경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고 강조했다. 현재 제기된 여러 현안 이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정책 조정이 필요한 사안들이 등장할 것이고, 이 점에서 정상간의 상호 신뢰는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미는 '부시와 친해지기'라는 성과만큼이나 많은 과제를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그리고 분명한 점은, 그것이 2보 전진을 위한 전략적 후퇴이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굴신(屈身)이건 간에 '너무 많은 말'을 한꺼번에 쏟아놓았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 노 대통령이 할 일은 새로운 말보다는 국민의 '걱정'일랑 붙들어매게 하고 부시가 '보증'한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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