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할머니에게 누가 희망을 줄것인가?

등록 2003.05.19 08:39수정 2003.05.1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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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용

김금연(70세) 할머니는 무릎 관절의 통증으로 걷는 것조차 힘들다. 그러나 월 20만원의 생계비 마련을 위해 매일 노인정으로 향한다. 할머니에게 식당 일은 아들과 한 달을 먹고 살 일터이다.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생계가 망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정에서 밥을 하면서도 생각은 집에 가있다.

집에는 몇 년 전 말다툼 중에 다쳐서 청각장애를 입은 둘째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아들은 청각장애인이 된 것을 비관해서 17층 임대아파트에서 종종 자살을 기도하기 때문이다.

말다툼으로 청각 장애인이 된 40대 아들

김 할머니의 둘째아들 노장두(42세)씨는 2000년 9월 새벽 귀가 중 봉천동에서 취중에 시비가 붙어 구타를 당하고, 그로 인해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당시 노씨는 인테리어 기술자로 일당 1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기에 넉넉하지 않지만 김 할머니가 생계를 꾸리지 않아도 되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이 사고로 인해 노씨는 전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가해자는 인신 구속을 면하기 위해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합의를 했다. 만일 합의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모든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 후 지루한 법정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피해자 노씨의 가족들은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소송에 매달릴 형편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70 노모가 문제해결을 위해 직접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노모의 마음고생은 물론이고 그나마 건강하던 몸도 무릎 관절의 통증이 심해져 걷는 것조차 불편할 정도가 되었다.

청각장애인이 된 충격으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a 사고로 1급 청각장애인이 된 아들 노장두씨

사고로 1급 청각장애인이 된 아들 노장두씨 ⓒ 이철용

문제는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 심하다.

1급 청각장애인이 된 아들은 결혼은 생각도 못하고, 매일 술로 밤을 지샌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하루를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청각장애 뿐만 아니라 걸을 때도 어지러워 종종 넘어지기까지 한다. 얼마 전에는 길에서 넘어져 이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기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우울증 증상으로 인한 투신자살을 기도하기 때문에 할머니의 마음은 너무 불안하다.


요즘 아들의 증세가 더 심해져 아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울기도 한다. 날씨가 어두워지면 더욱 불안해하고,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수면제를 주면 모아 두었다가 자살을 기도한다.

가진 것 없던 김 할머니는 몇 년간 소송을 진행하며 4천여만 원의 비용을 썼다. 할머니에게 남은 것 빚이었다. 다행히 지난해 7월 법원은 가해자들에게 약 1억7천만 원의 피해보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며 법원의 판결집행을 피하고 있다. 번번이 강제집행을 시도했으나 제대로 집행된 적이 한번도 없다.

수 십 차례 헛수고인 강제집행, 경매과정 가해자들이 응찰하기도

a 판결문 앞에서 허탈한 모습을 한 김할머니

판결문 앞에서 허탈한 모습을 한 김할머니 ⓒ 이철용

수 십 차례 집달관과 집행을 하려고 가해자의 집을 찾아갔지만 번번이 헛걸음이다. 집달관들은 가해자의 집이 잠겨있거나 아무도 없다는 소리를 듣고 강제 집행을 할 수 없다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집행비용도 모두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한 번 집행을 하기 위한 경비는 이것저것 합하면 20여만 원이 된다. 집행을 수십 번했지만 차압 딱지를 붙인 적은 한 번 밖에 없다.

그것도 경매과정에서 최저 입찰가로 가해자들이 경매물을 모두 매입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졌다. 피해자들은 이러한 가해자들의 처사에 분노하고 있다. 한번은 언제 강제집행을 할 것이냐고 직접 가해자들이 전화를 해왔다. 같은 전화가 법원에도 왔다고 한다. 그런데 강제집행을 나가보니 며칠 전 이사를 했단다. 사전에 강제 집행 일을 확인하고 이사를 간 것이다. 이렇듯 집행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잦은 이사를 했다. 한번은 봉천동에 있는 가해자 어머니 집을 찾았다가 봉변을 당했다. 무단 가택침입으로 신고를 해서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법원, "이사 주소 확인할 수 없다. 스스로 찾아라"

a 자살 기도로 인해 부서진 창살

자살 기도로 인해 부서진 창살 ⓒ 이철용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법원에서는 가해자들이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직접 찾아서 알려주면 강제집행을 한다고 한다. 요즘처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제한이 많은데 평범한 개인이 어떻게 비밀리에 이사간 사람들을 찾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김 할머니는 법원 판결만 받으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그래서 힘든 형편에 빚을 내서 소송을 진행했다. 어느 누구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70세 노모가 직접 변호사 사무실과 법원을 오가며 힘든 소송을 진행해서 판결을 받았는데도 이제는 집행을 스스로 해야 한다니 산너머 산이다.

지난 어버이날도 김 할머니의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오히려 한숨과 탄식 소리만 들린다. 가족의 생일이 되어도 이미 김 할머니의 가정에서는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임이 분명하고 대통령이나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법조인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도 신망하는 법은 김 할머니에게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오늘도 하염없이 봉천동 고개를 오르내리며 종적을 감춘 가해자를 찾기 위해 고통스런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누가 이 할머니에게 희망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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