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 오솔길', 행복을 느껴보세요

[추천 가족여행 2] 9개의 능이 있는, 아름다운 동구릉

등록 2003.05.22 14:38수정 2003.05.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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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자각

정자각 ⓒ 이종원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넓은 능을 또 찾아볼 수 있을까요? 자그만치 59만평입니다. 동쪽의 9개 능이 있어 동구릉이라 불렀겠지요.

저는 이곳에서 울창한 소나무 사이를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무가 초록을 뿜어내려는 숨소리가 그저 좋습니다.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 그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답니다. 저는 입구부터 목릉까지 놓여 있는 이 오솔길을 좋아합니다. 작은 길이 예쁘게 휘어 있고,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실은 동구릉은 4계절 모두 좋답니다. 봄에는 신록이 있어 좋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 한번 늘어지게 자면 몸이 상쾌해서 좋습니다. 또 늦가을에는 온 세상이 붉게 물이 듭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은 그야말로 신나는 놀이터지요. 무지막지하게 큰 눈사람을 만들어 아이들과 뛰어 놀았답니다. 오죽했으면 동구릉에 반해 이 근처로 이사까지 왔겠습니까?

몇 년 전 북경의 명13릉을 가본 적이 있답니다. 능의 크기도 거대하고 부장품도 무척 화려했답니다. 그러나 전 동구릉이 더 좋습니다. 아기자기한 맛이 땅에 배어 있기 때문이지요. 크다고 좋다면 손목시계 버리고 괘종시계 차는 것이 좋겠네요. 정말 동구릉은 작지만 아름다움이 숨어 있습니다.

a 처마에 걸린 잡상들..서유기에 나오는 동물을 상징한 것이랍니다.

처마에 걸린 잡상들..서유기에 나오는 동물을 상징한 것이랍니다. ⓒ 이종원

동구릉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절묘한 곳이랍니다. 왕이 묻혔으니 당대 내로라하는 풍수학자들이 능을 잡았겠지요. 특히 영조의 '원릉'이나 헌종의 '경릉'에 올라가서 주변 산세를 둘러보세요. 이곳이 완벽한 풍수지리의 교과서임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저 멀리 검단산도 희미하게 보이고, 왕숙천도 변함없이 흘러갑니다. 오죽했으면 명나라 사신도 천작지구(天作地區) 즉, '하늘이 만든 땅덩이'라고 극찬하지 않았겠습니까?

태종이 능지를 정하고 근심을 버렸다고 하여 '망우리(忘憂里)'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지금도 망우리 고개를 넘으면 '근심을 버리자'라고 결심을 해봅니다. 잊는 즐거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일깨워 줍니다.

역시 가장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능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지요. 이 곳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입니다. 저 앞에 아파트촌에 눈이 거슬리지만 정말 아늑한 곳에 자리잡았습니다. 이씨 왕조가 500년 동안 줄줄이 후손을 거느렸는지 알 수 있겠네요.


a 정자각 문에서 밖을 바라보면 신록이 펼쳐집니다.

정자각 문에서 밖을 바라보면 신록이 펼쳐집니다. ⓒ 이종원

참, 능도 시대정신을 반영하더군요. 선조 능인 목릉은 석공들이 일본에 잡혀가서 석물의 수법이 형편없어요. 아마추어 석공이 만들었을 겁니다. 그것도 시대의 아픔이라고 생각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a 홍살문과 참도

홍살문과 참도 ⓒ 이종원

맨 앞에 보이는 붉은 문이 홍살문이지요. 신성함을 알리는 표시랍니다. 홍살문 우측에 네모난 곳이 바로 바로 '배위(拜位)'랍니다. 배위는 왕이 제사를 지내러 왔을 때 이곳에서 조상께 절을 하고 들어가는 곳이지요.


홍살문을 벗어나면 박석길이 보이지요. 그걸 '참도(參道)'라고 한답니다. 자세히 보면 두 단으로 되어 있어요. 오른쪽 높은 길은 귀신의 길이고, 낮은 길은 왕이 걷는 길이지요. 그리고 그 뒤를 신하가 따르지요.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정자각(丁字閣)'이랍니다. '정(丁)'자 형태의 건물이지요. 이곳은 제례의식이 거행되는 곳이랍니다. 사실 정자각은 알고 보면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답니다. 중국의 황제 능 앞에는 일자형의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습니다. '정(丁)'자는 중국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위치한 좌향이기에 정자각을 세운 거라고 들었습니다. 조선이 중국과 동일시하려는 생각을 말살한 거죠. 그렇다면 중국의 압력에 의해서 만들어낸 건물이지요.

a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햇살이 따뜻합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햇살이 따뜻합니다. ⓒ 이종원

참 지난 번 갔었던 고종, 순종황제의 '홍유릉'은 황제 능이랍니다. 따라서 그곳은 정자각이 아니라 일반 궁궐 건물 모양을 하고 있는 '침전'이라고 부른답니다. 황제의 권한은 미약하지만 죽어서는 황제의 능제를 따른 것이지요.

a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 이종원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입니다. 조선왕조 중 유일하게 떼가 아니라 억새풀을 심었지요. 고향 함흥의 억새풀로 마지막 옷을 해드렸다는 전설이 있지요. 억새풀은 일렬로 릴레이를 해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a 능을 수호하는 호석들

능을 수호하는 호석들 ⓒ 이종원

석호는 능을 수호하는 수호신이랍니다. 석양은 사악한 것을 피한다는 의미와 함께 명복을 비는 뜻을 담고 있지요. 각각 4기가 밖을 향해 능을 수호하고 있답니다. 호랑이는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민화풍에 나오는 해학적인 얼굴을 하고 있네요. 석양은 수놈임을 보여줍니다.

a 혼유석 아래의 귀면상

혼유석 아래의 귀면상 ⓒ 이종원

봉분 앞엔 상처럼 생긴 것이 '혼유석(魂遊石)'이라 합니다. 즉, 임금의 혼이 노는 곳이지요. 일반인들은 봉분 앞에 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지만, 혼유석에는 제물을 차리지 않고 아래 정자각에서 상을 차리지요. 즉 죽은 임금은 혼유석 위에 앉아 저 밑의 제사를 지켜보는 겁니다. 혼유석 아래 귀면 모양의 고석이 혼유석을 바치고 있지요. 험상궂은 얼굴의 귀면은 사악한 것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새겨놓은 것입니다. 건원릉은 5개인데 세종의 영릉부터는 4개랍니다.

상석 좌우에는 망주석을 세우지요. 가느다란 세호의 모습이 힘찹니다. 망주석은 가운데 구멍이 나 있어, 이곳에 줄을 걸고 차양을 씌워 혼유석을 가리게 됩니다. 다람쥐나 이무기를 새겨 놓지요.

a 무인상과 문인상

무인상과 문인상 ⓒ 이종원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재미는 바로 이 문인석과 무인석을 보는 재미지요. 왕의 일생을 반영하듯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비장한 표정을 하고, 어떤 것은 입이 찢어져라 울고 있으며, 어떤 것은 슬피 울고 있답니다. 심지어 경릉의 무인석은 총탄을 맞아 더욱 슬픔을 느끼게 합니다.

a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놀수 있는 잔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놀수 있는 잔디가 있습니다. ⓒ 이종원

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어 아이들이 참 좋아한답니다. 넘어져도 걱정이 없고, 돌의 촉감을 느끼는 아이의 환한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답니다.

가족나들이 코스로 동구릉을 꼭 권하고 싶네요. 늦봄에 찾는 동구릉에서 신록을 만끽해보세요

여행메모

여행메모

1. 입장시간 : 9시-5시30분 .월요일은 개방하지 않습니다.

2. 입장료: 개인 5백원/주차비 2천원

3. 교통:

-망우리 고개를 넘으면 한양대 구리병원이 좌측에 보입니다. 그곳에서 좌회전해서 계속 직진하면 동구능 주차장이 나옵니다.
-강변역에서 1-1번 버스가 운행됩니다.
-1호선 청량리역(35분 소요)7호선 상봉역(20분소요)에서 동구능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 이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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