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 한 통들고 떠나는 근현대사 여행

[오마이 추천 주말가족여행-3 ] 동작동 국립현충원

등록 2003.05.29 12:00수정 2003.05.3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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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3년 4월 30일 현재 54,460위가 안장되어 있는 국립현충원에는 오늘도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03년 4월 30일 현재 54,460위가 안장되어 있는 국립현충원에는 오늘도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권기봉

2002년 발간된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전국역사교사모임) 시리즈는 '~교과서'라는 재미없는 제목을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약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이것은 그 동안 국사교과서가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던 것에서 기인한 현상으로 보인다. 물론 한정적인 지면의 영향으로 그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소개하려고 한다. 책 선전이냐고? 물론 아니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생수 한 통 달랑 들고 떠나는 여행이다. 행선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자녀들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서자.


a 1955년 6월 9일 당시 국군묘지 건설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국군묘지는 이후 국립묘지, 국립현충원으로 승격된다.

1955년 6월 9일 당시 국군묘지 건설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국군묘지는 이후 국립묘지, 국립현충원으로 승격된다. ⓒ 국립현충원

국립현충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보다

지난 1954년 3월 1일 육군 공병대에 의해 착공된 동작동 국군묘지는 일단의 무명용사 유해를 최초 안장함으로써 비로소 대한민국과 직간접 연관이 있는 인물에 대한 묘지 역할을 시작하게 됐다.

1956년 1월 16일의 일이다. 1957년 4월 2일에는 신분이 확인된 최초의 인물이 안장된 데 이어 1965년 3월 30일 대통령령 제2092호에 의해 국립묘지로 승격됐다. 이후 다시 1996년 국립현충원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a 1967년 9월 30일 준공된 현충탑으로 높이는 31m에 이른다. 전 대통령 박정희가 쓴 이른바 <현충시>가 적혀 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1967년 9월 30일 준공된 현충탑으로 높이는 31m에 이른다. 전 대통령 박정희가 쓴 이른바 <현충시>가 적혀 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 권기봉

국립현충원에 가면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직접 목격할 수 있다. 먼저 정문을 들어서면 충성분수대가 보인다. 묘역이 생각보다 복잡한 만큼 충성분수대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안내소에서 지도 한 장을 얻은 후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좋다.

a 국립현충원에는 참배를 위해 찾는 이들도 있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가족 소풍으로 나들이 나온 이들도 적잖다. 자녀 교육을 위해 한번쯤 찾아볼 일이다.

국립현충원에는 참배를 위해 찾는 이들도 있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가족 소풍으로 나들이 나온 이들도 적잖다. 자녀 교육을 위해 한번쯤 찾아볼 일이다. ⓒ 권기봉

육군과 해군, 공군, 해병대, 예비군을 뜻하는 6명의 군인들이 떠받치고 있는 이 분수대를 지나 오른쪽으로 조성되어 있는 것이 경찰 묘역이다. 이곳에는 전사하거나 순직한 경찰관 812위(位, 2003년 4월 30일 현재, 이하 같은 기준 적용)가 모셔져 있다.


경찰 묘역 꼭대기쯤에 보이는 탑이 경찰충혼탑인데, 이 탑을 오른쪽으로 끼고 조금만 가면 다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유공자 제2묘역이다. 이 묘역에는 청산리 전투의 이범석 묘와 한글학자 주시경,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등이 안장되어 있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국가유공자 위는 모두 63위다.

a 육군일병 황근성의 묘. 그러나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일진대 생전에 누렸던 지위에 따라 비의 크기나 묘지의 형태가 다르다.

육군일병 황근성의 묘. 그러나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일진대 생전에 누렸던 지위에 따라 비의 크기나 묘지의 형태가 다르다. ⓒ 권기봉

유공자 제2묘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걷다보면 왼쪽으로 정자가 하나 보이는데 그 뒤편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역이다. 임정 요인 모두가 안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총장(현 장관)급 이상 직위를 가졌던 인물 17명이 안장되어 있는데,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과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국무령 양기탁 등이 그들이다.


a 전대통령 박정희(왼쪽)와 육영수의 묘. 친일 시인 모윤숙 등이 헌시를 썼다.

전대통령 박정희(왼쪽)와 육영수의 묘. 친일 시인 모윤숙 등이 헌시를 썼다. ⓒ 권기봉

한편, 그 아래 조성되어 있는 것은 애국지사 묘역으로 모두 207위가 모셔져 있다. 이 곳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애국지사들을 만날 수 있다. 서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과 종로경찰서와 서울역에 폭탄을 던졌던 김상옥 의사와 강우규 의사 등이 안장되어 있으며 독립협회로 유명한 서재필 박사도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애국지사 묘역에 유일한 외국인이 한 명 안장되어 있다는 것인데 영국계 캐나다인인 프랭크 W.스코필드 박사. 3·1운동 당시 탑골공원에서 만세 시위를 하는 등 '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의 유언에 따라 1970년 4월 16일 이곳에 안장되었다.

a 국립현충원은 총 부지 면적이 1,430,000㎡ (432,500평)에, 묘역 면적만 350,000㎡ (106,000평)에 이른다. 필히 마실 물을 준비할 일이다.

국립현충원은 총 부지 면적이 1,430,000㎡ (432,500평)에, 묘역 면적만 350,000㎡ (106,000평)에 이른다. 필히 마실 물을 준비할 일이다. ⓒ 권기봉

이번엔 전 대통령 이승만의 묘소로 가자. 4·19로 하야한 이승만은 19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이에 같은 해 7월 27일 가족장으로 영결식을 치른 이후 이곳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처 프란체스카 역시 지난 1992년 3월 19일 서거(死去)한 이후 3월 23일 이곳에 합장되었다.

a 1923년 1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의사의 묘.

1923년 1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의사의 묘. ⓒ 권기봉

한편 구릉에 있는 유공자 제1묘역과 장군 제1묘역을 지나면 전 대통령 박정희의 묘소가 보인다. 국립현충원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웅장하게 조성된 이 묘지는 1979년 11월 3일 마련되었으며, 처 육영수의 묘소도 1974년 8월 19일 이곳에 쓰여졌다.

a 임정 요인 중 총장(현 장관)급 이상 직위를 가졌던 인물 17명이 안장되어 있는데,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과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국무령 양기탁 등이 그들이다.

임정 요인 중 총장(현 장관)급 이상 직위를 가졌던 인물 17명이 안장되어 있는데,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과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국무령 양기탁 등이 그들이다. ⓒ 권기봉

과연 어떤 역사를 볼 것인가

육탄10용사비와 유격부대전적비 등 적지 않은 탑들과 비석들이 있는 국립현충원을 돌아보고 있노라면, 국가의 안위를 위해 목숨 바쳤던 영령들이 떠오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a 과연 국립현충원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온 이들과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자. 당신은 과연 어떤 역사를 보고 갈 것인가.

과연 국립현충원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온 이들과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자. 당신은 과연 어떤 역사를 보고 갈 것인가. ⓒ 권기봉

그런데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하나일진대 생전에 누렸던 지위에 따라 그 크기나 모양은 제각각이다. 비석이나 봉분, 그리고 마치 봉건왕조의 그것처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전직 대통령들의 묘지, 역사적 평가가 부정적인 인물의 묘지, 독립투사의 위패와 한 능선에 있는 친일 인물의 헌시(獻詩) 등.

과연 국립현충원이란 공간 자체가 시민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함께 온 이들과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자. 당신은 과연 어떤 역사를 보고 갈 것인가.

<국립현충원>, 이렇게 간다.

▲ 지도의 붉은 핀 부분이 국립현충원 정문.
ⓒ권기봉

국립현충원을 찾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하철 4호선 동작역에서 내려 2번이나 4번 출구로 나가 길만 건너면 바로 찾을 수 있다.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승용차를 이용, 국립현충원의 무료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다.

365일 개방하며, 요즈음에는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 동안 출입이 가능하다. 단 승용차 출입은 오전 8시부터 가능하다.

한편 국립현충원 내에는 유품전시관과 사진전시관 등이 있으며, 문의는 (02) 826-6233으로 하면 된다. 인터넷 사이트 주소는 http://www.mnd.go.kr:8088/html/main.html 이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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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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