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늦은 가을비가 내리던 어느 날.
장방의 아들은 설매가 다른 사내와 찻잔을 마주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낙심천만해 하였다.
그 사내는 바로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상해무천장주의 아들이었다. 이날 그는 만취한 채 옥향의 처소를 찾았다.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찾은 것이다.
오랜만에 자신을 찾은 사내를 반갑게 맞이한 옥향은 취한 그의 입에서 설매이라는 기명이 연달아 나오자 그만 질투의 화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날 그녀는 그의 술잔 속에 양고를 넣고 말았다. 물론 음고는 그녀의 술잔 속에 담겨 있었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린 장방의 아들은 옥향의 처소에서 밤을 지새웠다는 사실을 혹시 설매가 알면 안 된다면서 화를 냈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일이 있은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옥향은 자신의 처소에서 싸늘한 시신이 된 채 발견되었다.
순정을 짓밟혔다 한탄하다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 이날 장방의 아들은 드디어 소원을 성취하였다. 도도하기만 하던 설매가 드디어 마음을 열어준 것이다.
사실은 설매 역시 상해에서 가장 준수한 사내인 그에게 끌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를 태웠던 것은 그의 마음을 완전히 얻어내기 위한 일종의 계략이었다.
어찌되었건 장방의 아들은 설매와 꿈결과 같은 음양화합을 하던 중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을 끝으로 깊은 혼절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이후 십 년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있어야만 하였던 것이다.
사실 음양환락고는 통증만 느끼게 할 뿐 생명을 빼앗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음고가 죽던 바로 그 순간 운우지락을 나누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원래 암수 한 쌍이기에 죽을 때에도 같이 죽어야 함이 마땅하나 한쪽에는 죽는 마당에 다른 한쪽에선 지극한 쾌락이 느껴지자 양고가 미쳐버린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것이 장방 아들의 뇌로 들어갔기에 의식조차 없었던 것이다.
남만과는 달리 중원에서는 음양환락고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된 서책이 없다. 또 이같이 절묘한 상황이 있었던 적도 없었다.
따라서 내놓으라 하는 의원들조차 무엇이 원인이 된 것인지 전혀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사실 중풍을 고치기는 하였으나 장일정 역시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어 한참을 고심했었다. 그러던 중 북의가 언젠가 했던 이야기를 상기하고 생사잠을 사용한 것이다.
음양환락고 역시 일종의 독물(毒物)이다. 따라서 그것을 사용하면 혹시 효험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의원이 아닌 무천장주나 장방으로서는 장일정은 거의 신화경에 달한 의술을 지닌 그야말로 의신(醫神)으로 보였다. 그러니 그가 무천의방의 방주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 * *
"혈우파에도 보냈느냐?"
"명하신 대로 보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육손파에도 보냈겠지?"
"물론입니다."
"흐음! 그럼 광견파는?"
"거기도 보냈습니다."
"좋아, 수고가 많았다."
거만한 자세로 태사의에 걸터앉은 청년의 물음에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장년인이 공손한 자세로 답변하고 있었다.
두 무릎을 땅에 대고 오른 주먹을 가슴에 대고 있는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원의 북동쪽에 위치한 대흥안령산맥 일대를 주름잡던 맹호파 두목 탑탁호골(塔擢虎骨) 좌비직(左備直)이었다.
그의 나이 열일곱에 석탑사의 거대한 탑을 번쩍 들어올린 이후 단 한번도 누구에게 무릎 꿇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런 그가 지금 더할 수 없이 공손한 자세로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친을 비명횡사케 한 원수를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변방을 지키는 장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힘이 장사인 데다가 워낙 몸이 날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로 하여금 관가(官家)에 몸담을 수 없게 하였다. 그의 손에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간 원수가 산해관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던 태수였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황명을 받은 관인을 죽인 죄로 좌비직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그를 받아들인 곳이 바로 맹호파였다.
이곳은 좋게 말해서 대흥안령산맥을 넘나드는 상인이나 행인들에게서 받아낸 통행세로 꾸려나가는 단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대에 산재한 이십여 산적 무리들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엔 점잖게 지닌 재물 전부를 통행세 명목으로 내라고 요구한다. 물론 이에 순순히 응하는 행인은 없다. 그러면 할 수 없다면서 무력을 동원하여 지니고 있던 재물을 몽땅 터는 것이 이들의 생업이었다. 물론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누가 있어 위협도 하지 않는데 순순히 지니고 있던 재물을 내놓겠는가! 그리고, 오죽하면 은자만 있으면 처녀 불알을 사고, 쥐뿔을 살 수 있으며,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하겠는가!
사람들은 안 될 줄 알면서도 버티다가 결국 다 뺏기곤 하였다.
아무튼 탑탁호골 좌비직은 맹호파에 몸담은 이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결과 병석에 누워 골골대던 선대 두목으로부터 두목자리를 물려받았다.
맹호파는 산적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따라서 단순무식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여 누구든 두목에게 덤벼 이기기만 하면 두목이 될 수 있는 그런 집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비직이 두목이 된 이후에는 누구도 그에게 덤비지 않았다. 힘으로도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두목이 된 이후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산적들 대부분은 좌비직처럼 범죄를 저질러 쫓기는 신세이거나 양민이긴 하나 붙여먹을 농토가 없어 나선 자들이다.
그러다 보니 굶기를 밥먹듯 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최대 소원이 등 따습고 배부른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니 굳이 두목하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수년 전, 좌비직은 대흥안령산맥을 넘던 조선 상인들을 덮쳤다. 그 결과 질 좋은 홍삼을 왕창 빼앗을 수 있었다.
이일을 계기로 맹호파는 급성장하게 되었다.
빼앗은 홍삼을 약령시에 내다 팔아 적지 않은 은자를 챙겼다. 이로 인하여 맹호파는 가장 부유한 산적 조직이 될 수 있었다.
다른 파에서는 배를 곯는 일도 종종 있지만 적어도 맹호파는 그런 일은 절대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여 다른 파에 몸담고 있던 자들이 슬그머니 옮겨오기도 하였다. 부자가 된 덕분에 세력도 강해진 것이다.
정식으로 두목 자리에 오르던 날 좌비직은 마치 득도한 고승이라도 된다는 듯 결좌부좌를 틀며 일갈을 토했다.
아무리 지나가는 행인들을 털어 먹고사는 산적이라고는 하지만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때는 지났다는 것이다.
고린내 나는 구리돈 몇 푼을 뜯기 위해 출동하다보면 체력도 소모되고 허기도 진다. 이러한 경우는 차라리 나서지 않음만 못한 결과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지나는 행인 모두를 털면 다음부터는 다른 길로 우회할 것이니 밥줄이 끊기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고 산적질을 그만두고 농토를 개간하여 힘들게 농사지을 생각이 없다면 머리를 쓰라고 하였다. 털기는 털되 그럴듯한 것들만 골라 터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앞으로는 시간이 많을 터이니 부지런히 체력을 단련하라고 하였다. 덕분에 맹호파는 인근 산적들 가운데 가장 출동을 적게 하는 파가 되었다.
대신 산적들 가운데 일부는 서생이나 승려 차림을 한 채 인근을 돌아다니며 첩보를 수집케 하였다. 산을 넘으려는 자들의 수효와 지닌 재물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힘은 덜 들이면서 버는 것은 전보다 나아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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