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텃밭에 다가온 시련

등록 2003.05.26 10:48수정 2003.05.2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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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을 동반한 장대비가 종일 내렸습니다.
강풍을 동반한 장대비가 종일 내렸습니다.김민수
아직 장마철도 아닌데 강풍을 동반한 비가 하루 종일 내렸습니다. 지난밤 바람이 얼마나 극성맞았는지 새벽에 뜰에 나가보니 담쟁이넝쿨 잎과 감나무 이파리가 벽 한쪽에 우르르 몰려있었습니다.


나의 텃밭도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 같아서 얼른 들어가 보고 싶지만 아직도 비는 진행형이고, 잔뜩 물기를 머금은 것을 잘못 만지면 부러져 버리기 때문에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뜰에서 비 온 뒤 쑥쑥 올라온 잡초들을 뽑아냅니다.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잔디는 듬성듬성한데 바라지도 않는 잡초들은 쑥쑥 잘도 올라오니 얄밉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런 것만 같습니다.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가길 원하면서도 어느새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소박한 것을 품고 살아가길 원하면서도 어느 덧 돌아보면 소박하기는커녕 온갖 필요 없는 사치품들로 가득한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탄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잡초를 솎아내는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다가는 온통 잡초로 무성할 테니까요.

바람에 시달리다 못해 쓰러진 고추나무
바람에 시달리다 못해 쓰러진 고추나무김민수
비가 그친 후 밭에 들어가 보니 그들이 밤새 얼마나 비바람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지주를 해주고 튼튼히 묶어주었던 고추나무도 시달리다 못해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잔가지를 쳐주면서 다시 북을 주고 지주에 튼튼히 묶어줍니다.


고추나무의 생명력은 참으로 강합니다. 몇 해전 경험이지만 고추농사를 지을 때 고추가 주렁주렁 달린 고추나무였는데 실수로 밟아 거의 부러지다시피 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세우고는 천으로 칭칭 감아주었는데 다시 건강하게 살아났습니다. 마치 사람의 부러진 뼈가 다시 붙은 것처럼 말입니다.

애써 피웠던 꽃들도 다 잃었지만 고추는 또다시 꽃을 피우고 마침내는 풋고추에서부터 빨간 고추까지 무성하게 내겠지요.

가지잎이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아마....꺾인 가지잎은 뜨거운 햇살에 말라버릴 것입니다.
가지잎이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아마....꺾인 가지잎은 뜨거운 햇살에 말라버릴 것입니다.김민수
가지나무는 더 비참한 시련을 당했습니다. 큰 이파리 덕분에 제주의 바람에 더 많이 시달리며 왜소하게 자라나 안타깝게 하더니만 큰 잎사귀들 모두 부러졌습니다. 회생할 수도 없을 정도로…그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며 가지를 위한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모진 바람에 사랑하는 잎을 잃었지만
또 다시 새 잎을 낼 수 있는 희망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시련을 딛고 일어나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소서.
고난의 상징인 보라 빛의 꽃과 열매를 보면서
그것을 우리 아이들이 몸에 모시면서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모든 생명 하나 하나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옵소서.

수확을 앞둔 마을도 다 누웠지만 그래도 걱정이 안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수확을 앞둔 마을도 다 누웠지만 그래도 걱정이 안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김민수
무성하던 마늘도 지친 듯 휴식을 취하는 듯 누워버렸습니다.
그래도 마늘은 요즘이 수확철이고 수확하기 전에 비가 내려주어야 땅이 고슬고슬해서 잘 뽑힙니다. 그러니 위로가 됩니다. 마늘은 뿌리를 먹으니 뿌리가 거의 여문 요즘에는 대가 꺾였다고 큰 문제가 없습니다.

마늘의 외형은 저렇게 초라하게 부러지고, 부러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수확할 때가 되면 저절로 잎과 줄기는 말라비틀어집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마늘의 본질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뿌리를 든든하게 합니다. 외형에만 치중하는 현대인들에게 마늘은 많은 것을 시사하지 않는지요?

아주 연약한 새순만 남은 콩....연약함 속에 들어있는 강인함으로 보게 합니다.
아주 연약한 새순만 남은 콩....연약함 속에 들어있는 강인함으로 보게 합니다.김민수
먼저 나왔던 큰 잎새를 모두 잃고 연한 새순만이 남아 지난 밤 비바람과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한 것은 떨어져 나가고, 연약한 것이 살아 남았다는 것을 보면서 '적자생존'이라는 가설을 다시 한번 의심하게 됩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깨물어 주도록 사랑스러운 이유는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연약하기 때문이요, 사랑하는 애인도 그토록 사랑스러운 이유가 내가 그를 품어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연약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요?

나의 텃밭에는 지난 밤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텃밭은 시련을 딛고 일어설 것이 분명합니다. 그 정도의 시련은 넉넉히 딛고 일어서야 여름에 닥쳐올 태풍도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름에 닥쳐올 태풍을 위해 단련시키느라 지난 밤 나의 텃밭에 시련이 왔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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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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