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관한 동생과의 논쟁

생각을 조종하는 것들

등록 2003.05.28 10:00수정 2003.05.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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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고 해 봐야 몇 명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 '박정희'는 오랫동안 대통령의 대명사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 부터 그가 대통령인 것은 아니었지만 말을 배우고 글을 읽던 그 시절부터 꽤 오랫동안, 아니 '꽤'라는 말만으로는 그 의미를 전달하기에 부적절할 만큼 오랜 동안, 5대부터 9대까지 대통령직을 독차지하며 박정희씨는 18년 동안 집권했다.


선량한 공무원이었던 나의 아버지는 대통령 박정희에 대해 우리와는 다르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진심으로부터 우러난 존경이었는지, 아니면 세뇌되어 강요된 존경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모르긴 해도 후자였을 것 같은데 아니 실제로는 전자였을지도 모르겠고, 하여간 나는 후자로 믿고 싶다. 아버지가 가진 정치색(色)이나 소신은 수십 년 동안 해 온 공무원 생활의 영향이 컸겠지만, 또 그만한 세월 동안 집에서 구독했던 신문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정치적인,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이라며 생각을 전달하기도 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과는 격론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자신이 처한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서 개인의 의견은 달라진다. 하지만 대체로 자신의 의견이라고 말하는 것이 실은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의 소견에 따라, 자신이 보고 듣는 방송에 따라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즉, 어느 신문을 보느냐, 어떤 방송을 듣느냐에 따라 자신의 색깔이 진보, 보수, 중도 중의 하나로 분류가 되기도 한다. 아니, 순서가 바뀌어 자신이 기본적으로 취하고 있는 진보, 보수, 중도 성향에 맞춰 구미에 맞는 신문, 방송을 선택하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띠고, 나이 든 이들은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성향을 띤다고 한다. 물론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월의 나이테가 성향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매체를 선택하여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냐가 개인의 판단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최근의 핫이슈였던 전여옥씨 문제에 대해서도 나와 다섯 살 아래인 여동생은 큰 차이를 보인다. 나이로 보자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동 세대이지만 생각이 다른 탓에 우리는 때로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나이는 내가 많지만 여러 이슈들에 대해 나는 비교적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약사인 동생은 직장에서 구독하는 보수 일간지만 열심히 읽고 그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말하는 보수주의자다. 최근 들어서 동생의 나라 걱정은 더욱 커졌다. 동생만의 우려는 물론 아니지만 자기가 구독하는 신문만 읽다보니 더욱 근심이 커진 것 같다.


그런 동생에게 진보적인 A신문이나 인터넷 신문 B를 읽어보고 시각의 균형을 잡아보라고 말을 해 보지만 이미 보수의 옷을 단단히 껴입은 동생은 잘 안 듣는다.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자매간에, 혹은 형부와 처제간에 정치, 경제 얘기가 나오면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영문을 모르는 우리 애들은 엄마, 아빠가 괜히 이모랑 싸우는 줄 안다.

"응, 싸우는 게 아니고 이모랑 생각이 달라서 그런 거야.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다 보니 큰 소리가 나는 거라고. 이모는 엄마보다 젊지만 보수적이라서 엄마랑 생각이 많이 달라. 자기의 생각이나 소신은 잘 안 바뀌는 법이란다. 더구나 이렇게 어른이 되면…."


그런 동생이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유창선씨의 글을 다른 데서 읽었다며 뒤늦게 이메일로 보내왔다. 나는 전여옥씨의 의견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터라 그녀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을 동생에게 쏟아 부었다.

"야, 그게 어디 대통령에게 할 말이니? 안 보는 데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지만 뻔히 보는 데서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는 거냐고. 아니, 전여옥은 대한민국 국민 아니야? 미국 사람들이 와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도 아니고 일본 사람들이 뽑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직격탄을 쏘며 함부로 말을 해도 되냐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미숙하여 국민들의 불만이 있다지만 지금은 좀 지켜보며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 아니니? 차라리 대통령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니….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봐. 사랑해서 평생을 해로하겠다고 결심한 아내가 결혼한 지 석 달 밖에 안 되었는데, 열렬히 좋아했던 그 남편이 흠이 있고 무능하다는 것을 알았어. 지금 신혼이거든. 그럴 때 '당신 같은 사람은 결혼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남편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할 수 있니? 앞으로 남은 세월을 잘 살아보려고 작정한 신부라면 말이야.

나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아슬아슬한 입'이나 '한 성질'은 맘에 안 들어. 리더로서는 좀 불리한 자질이지. 하지만 우리가 뽑은 대통령인데 아니 내가 안 뽑았어도 그들이, 대한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라면 그를 인정해주고 세워주어야 하는 거 아니니? 미국 사람들이 와서 그를 세워주겠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워줘야지."

이런 요지의 말을 목청껏 외쳤더니 '세종로 1번지로 언니를 보내야겠다'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

틱낫한이 그의 저서 < 화 anger >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지금 눈 돌리면 화나는 것 투성이인 세상에 살고 있다. 서로를 찔러대는 삭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아프게 '찌르는' 행위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그저 찌르려고만 한다면 말이다. 모두가 말로써 상처를 주는 이 거친 세상에서 틱낫한이 얘기한대로 화가 날 때는 말을 삼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침묵이 귀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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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여옥씨의 과거와 노 대통령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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