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감호에 '마지막 희망' 무너져

[인터뷰] 7일째 단식농성중인 청송감호소 피감호자 조석영씨

등록 2003.05.29 14:16수정 2003.06.0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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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2감호소  중앙 감시탑에 무장한 교도대원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다.
청송 2감호소 중앙 감시탑에 무장한 교도대원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승욱
"보호감호가 이런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땐 무척 슬펐어요. 마지막 징역살이 하면서 나 스스로는 재범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부모 형제 가족 위해 살고 싶었고, 내가 지은 죄를 갚기 위해서 살겠다는 마음 먹었어요. 전과 몇 범이 되더라도 가족들은 그나마 날 감싸주지 않겠어요.(울먹) 하지만 보호감호 4년 동안, 사회에 돌아갈 수 있는 가정이라는 마지막 울타리까지도 무너졌어요."

올해 나이 마흔 여섯, 보호감호 4년째인 조석영씨. 자신의 죄과에 대한 참회를 수없이 되뇌었을 그였겠지만, 아직도 '가족'을 생각하면 눈물이 마르지 않는 듯 두 눈에 금새 눈물이 고였다.

청송감호소 피감호자들의 '눈물'과 단식

석영씨는 세간에 온갖 흉악한 범죄자들의 '소굴'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청송보호감호소(이하 청송감호소. 경북 청송군 진보면 소재)의 '피보호감호자' 신분이다.

공사판에서 사소한 시비로 생긴 폭력사건과 단순절도 등으로 젊은 시절 몇 차례 교도소를 드나든 그는 지난 96년 절도죄로 징역 3년을 마친 후 이곳에서 4년째 '청송 생활'을 하고 있다.

징역 3년을 모범수로 보낸 그는 청송감호소에서 다시 보호감호 7년을 마친 후 2006년에야 비로소 사회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가출소 기회는 있지만 통례상 적어도 4~5년의 감호생활은 각오해야 한다.

석영씨는 지난 해 '사회보호법 폐지' '피감호자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네 차례나 반복됐던 청송2감호소 피감호자들의 단식 농성에 동참했었다. 그리고 해를 넘긴 지난 5월 23일부터 시작된 단식투쟁에서도 대열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기자는 청송감호소에 정식면회를 신청, 28일 오후 2시부터 30분간 석영씨를 만났다. 당시 그는 5일째 단식농성중이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연신 자신의 오른손을 귀에 갖다 댔다.

- 귀가 잘 안들리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그런가?
"지난 해부터 귀가 잘 안들려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는 신경과다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 단식농성 5일째인데…. 건강은 어떤가?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지난해 단식을 해본 경험도 있고 이번이 네번째라,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편이다."

청송감호소측은 23일부터 시작된 단식농성에 당초에는 전체 피감호자 700여명 중 500여명 정도가 참가했다가 최근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하지만 감호소측은 단식 농성 참가자들의 정확한 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하지만 석영씨가 말하는 감호자들의 농성 분위기는 감호소측의 입장과는 상반돼 보였다. 오히려 더욱 강경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석영씨는 전했다.

"감호소측은 540명 정도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들로 봤을 때는 650명 선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아주 강경한 분위기이죠. 저는 오히려 온건한 쪽에 속합니다. 얼마 전 법무부 보호국장과 교정국장도 다녀갔지만 그 후 확실한 답변을 아무도 주지 않았어요. 공식적인 처리 과정을 감호자를 대상으로 밝히기는 뭣 하겠지만 어떤 언급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어 분노가 치밀어오를 대로 올라 있는 상태죠."

청송 1감호소  5척담장 건너로 피감호자들이 생활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인다.
청송 1감호소 5척담장 건너로 피감호자들이 생활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인다.오마이뉴스 이승욱
"피감호자들의 분노, 오를 대로 오른 상태"

얼마 전 안동교도소 재소자 사망사건 등으로 말썽을 빚자 지난 19일 강금실 장관이 안동교도소 방문과 함께 그 동안 논란을 빚어왔던 청송감호소 방문도 진행했다. 하지만 정작 지난해 네 차례의 단식농성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높았던 청송2감호소는 방문하지 않고 1감호소 피감호자 일부만의 면담이 성사돼 2감호자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석영씨는 "법무부 쪽에서 언론을 통해 (사회보호법의) 개선 의사가 있다고 말만을 퍼뜨리고 있지만 정작 피부에 와닿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폐지 말고는 대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정 중심으로 언론에 흘리는 것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보호감호 4년째를 맞고 있는 그가 말하는 보호감호제의 문제는 무엇일까. 그의 체험은 보호감호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징역형 3년을 살 때는 착실하게 살려는 결심도 했어요.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도 많이 했었죠. 감호소에 와서도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어요. 물론 감호소 생활이 일반 교도소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실망감도 있긴 했죠. 하지만 나름대로 빨리 사회에 나가서 열심히 살아 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텨 왔어요. 1감호소 있었던 2년 8개월 동안 대통령 독후감쓰기 표창, 한문우수상 표창 등등 표창만 해도 부지기수로 받았어요. 그렇게 열심히 생활하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아니었던 거죠."

하지만 석영씨를 비롯해 대부분의 보호감호자들이 처음부터 사회보호법의 맹점과 자신들이 왜 사실상 '징역살이'와 진배없는 '청송살이'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는 1감호소에서 2년 8개월의 감호기간을 끝내고 2감호소로 건너올 때쯤 뭔가 잘못 됐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다른 공부를 제치고 '사회보호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석영씨가 내린 마지막 결론은 '사회보호법'은 결코 사회를 보호할 수도, 범법자들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보호법, 결코 사회를 보호할 수도 범법자를 줄일 수도 없다"

"오히려 1감호소보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1감호소에서는 공부를 하려고 준비도 하고 했는데 정작 2감호소로 왔을 때는 공부도 못하고 시험도 못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러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회보호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보호법은 새롭게 사회에 나가 살려는 범법자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구금시설 중에서 청송감호소는 가장 환경이 열악해요. 작업환경을 봐도 그렇죠. 일반 수형자들이 징역을 살고 있는 교도소에서도 근로 활동이 10가지가 넘어요. 하지만 청소감호소에는 단 두가지 뿐이예요. 그것도 종이가방 만들기. 위생비닐장갑 포장하고 수 셈하기 작업이 고작이죠. 이런 곳에서 무슨 재취업을 준비하고 사회적응을 배운다는 말인가요."


'광덕교' - 청송감호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서시천을 건녀야만 한다. 유일한 육로는 이 광덕교로만 통해져 있다. 그래서 청송감호소, 교도소는 천혜의 요지에 설치됐다고 주변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광덕교' - 청송감호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서시천을 건녀야만 한다. 유일한 육로는 이 광덕교로만 통해져 있다. 그래서 청송감호소, 교도소는 천혜의 요지에 설치됐다고 주변사람들은 입을 모았다.오마이뉴스 이승욱
사회보호법의 '이중처벌'도 논란이 분분하다. 일단 보수적인 법조계의 인식은 감호시설과 교도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형벌에 의한 처벌이 아닌 누범과 상습범들의 교육과 갱생을 위한 보안처분제도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피감호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이 교도소 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형벌은 형벌대로 받고 다시 감호소에서 형벌에 준하는 징역살이를 한다는 것이다.

"감호제도는 시설과 경비는 교도소와는 전혀 다른 점이 없어요. 무수한 CCTV와 이중잠금 장치, 일반교도소와 전혀 다를 게 없죠. 그런데 작업환경은 더 열악해요. 사회적응과 교화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가장 인간의 사회성이 파괴되는 공간이 되는 거죠."

피감호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위기감은 피감호 7년의 세월이다. 청송감호소 피감호자들이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징역살이를 한 경험이 있어 그 평균연령이 다른 일반 교도소 재소자보다 높다. 그리고 가출소가 있긴 하지만 최소한 4년의 피감호 기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태에서 그들이 세상에 나가게 될 경우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가족'뿐이다. 하지만 피감호 기간 동안 그들의 '가족'은 더욱 더 처절하게 망가지게 된다. 결국 재범의 우려는 더욱 높아진다.

감호기간 동안 겪은 이혼 등 '가정 파괴'...
보호감호, 마지막 희망까지 짓밟는다


"특히 가정이 파괴되고 자식들이 상처받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제가 교도소 들어갈 때 4살이던 아이가 지금은 11살이 됐어요. 일반 사람들도 감호소는 교도소라고 생각하는데 자식들이 여기가 보호소라고 생각하겠어요. 결국은 아이들도 아버지를 죄지은 사람으로 인식하죠. 일반인들은 징역을 10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할 뿐입니다."

석영씨도 지난 2월 아내와 이혼하고 헤어졌다. 지난해 단식농성을 하면서 여러 차례 집으로 각 기관과 관계자들의 전화가 오고 가자 "또 뭔가 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았을 것"이라고 석영씨는 이해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족들이 우리를 위안하고, 싫지만 그래도 보듬어주지 않겠어요 징역살이에 보호관찰 기간까지 포함한다면 그 기간 동안 사회에 돌아갈 수 있는 가정이라는 마지막 울타리까지 무너지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사회로 돌아갈 자금을 그만큼 감호소에서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범죄의 유혹에서 그들을 지켜줄 마지막 수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 녹록지 않다.

"지난해 농성하고 나니깐 올 1월부터 근로보상금이 20%가 올랐어요. 그래서 최하 1400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웃기는 얘기죠. 한 사람이 주어진 하루 배당량을 다 채웠을 때 근로보상금조로 받는대요. 정량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은 400원 정도밖에 못 받아요. 전화 받으러 가면 30분 빼고, 또 뭐라고 빼고 하면 하루 배당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1400원이라고 하는 소리도 하나의 기준이지 그것보다 더 낮은 경우가 태반이죠."

피감호자들이 교도소와 감호소를 거쳐 사회에 격리돼 있는 동안 소위 '준비자금'으로 손에 거머쥘 수 있는 돈은 고작해야 100만원선이다. 그후 사회에 돌아왔을 때 다시 정착할 가족도 없는 그들에게 범죄의 유혹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청송감호소로 들어서는 입구에 설치된 알림판
청송감호소로 들어서는 입구에 설치된 알림판오마이뉴스 이승욱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학력이 저조하다는 점에서 빈곤의 악순환이 범죄를 양산시킨다는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를 되돌아 볼 수밖에 없다.

"여긴 한글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50% 수준이라고 보면 돼요. 얼마 전에 교도소장하고 면담하는 것을 TV로 시청했는데 그것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조금만 에둘러 이야기해도 잘 알아듣지 못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부터 모두 범죄의 길로 빠져 들었을 만큼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보호감호로 가족은 무너지고 또 그 자식들이 범죄를 대를 잇고…."

석영씨는 "똑같은 범죄를 여러 차례 저지르는 것도 문제지만 감호소 생활을 거친 사람들의 가족들이 다시 그 인생을 되풀이할 우려도 너무나 크다. 이것은 모순이다"면서 "오히려 보호라는 명분으로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범죄를 막겠다는 것이 그것으로 인해 범죄가 더 생산된다는 것은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다"

청송감호소 피감호자들을 '흉악범'으로 인식하는 태도도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곳 피감호자들의 가운데는 단순절도에서 시작돼 단순절도로 '청송행'을 맞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2001년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청송감호소 피감호자들의 76%가 단순절도범이고 강도, 폭력, 그리고 강간범은 7.9%, 5.9%, 2.0%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그는 언론과 일반인들에게 피감호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버려줄 것을 당부했다.

"인권 차원에서 청송감호소 문제에 접근해주길 바래요. 그리고 언론과 일반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감호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주길 바래요. 흉폭한 인간들만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여기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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