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아, 나도 풍선 하나만 다오!”

앵두와 콘돔 풍선(?)을 추억하며

등록 2003.05.30 21:14수정 2003.05.3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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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덕송리 동네 우물에서 수용이 삼남매. 오른 쪽이 수용이다.

덕송리 동네 우물에서 수용이 삼남매. 오른 쪽이 수용이다. ⓒ 느릿느릿 박철

시나브로 앵두의 계절이 되었는가? 여인네의 붉은 입술은 앵두 같은 입술이라고 했던가? 새빨간 앵두가 탐스럽게 열렸다. 앵두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재밌는 얘깃거리가 있다. 우리 내외가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할 때였다. 정선 아라리의 발원지 여량에서 십리길 조양강이 흐르는 ‘덕송리’라는 동네에서 살 때였다.


아내와 나는 유년시절을 빼놓고는 거의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시골에서의 생활이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하나부터 열 까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내외가 가장 신세를 많이 진 사람이 교회 뒷집 연숙이네였다. 연숙이 아빠는 나보다 나이가 몇 살 위였다.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그만두고 무작정 시골로 들어와 농사를 시작했다.

주위에 반대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교대까지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농사를 짓겠다니,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주위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연숙이 아빠는 무일푼으로 시골에 들어와 억척스럽게 땅을 일구며 살았다. 그 흔한 경운기도 없이 소로 밭 갈고 모든 일을 맨 손으로 했다. 철인 같은 사람이었다.

연숙이 엄마는 마음이 바다 같이 넓고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분이었다. 교회는 나오지 않았지만 친 동기간처럼 내 아내를 보살펴주고 김칫거리에서부터 모든 먹을거리를 일일이 챙겨주었다. 연숙이 아빠는 소로 밭을 가는데 보통 7~8차례 갈았다. 강원도 산골이라 밭에 돌이 많은데 연숙이네는 매일 돌을 골라내고 자주 밭을 갈아서 밭에 돌 하나 없이 허벅지고 좋았다.

a 수용이네 집 앞에서. 수용이가 지금쯤 장가갔을까? 무척 보고 싶다.

수용이네 집 앞에서. 수용이가 지금쯤 장가갔을까? 무척 보고 싶다. ⓒ 느릿느릿 박철

밖에 나갔다 돌아 올 때는 맨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큰 돌멩이를 어깨에 메고 오든지, 아니면 나뭇가지를 들고 오든지 했다. 집 마당에 개울에 고기 잡으러 나갔다 어깨에 메고 온 돌덩어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오줌이 마려워도 꾹 참고 집에 와서 뒷간에다 누었다. 그 만큼 절약정신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쌀을 아끼느라 하루 한 끼는 꼭 국수를 삶아 먹었다.

아이들까지도 그랬다. 단돈 백 원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그 집 막내아들 수용이가 있었는데, 이 녀석이 꼭 아빠를 빼닮았다. 밖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아빠를 닮아서 절대로 빈손으로 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하다못해 마른 나뭇가지 하나라도 들고 들어왔다. 부모님이 시킨 것도 아닌데, 아빠가 하는 걸 옆에서 보고 배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는 계절이었다. 수용이가 우리 집엘 놀러왔다. 놀러오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거의 교회 주택하고 붙어 있을 정도로 가깝게 살았기 때문에 그 집 애들이 노상 교회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우리 내외가 집에서 하릴 없이 멀거니 있었는데, 수용이 녀석이 큰 풍선을 입에 물고 한다는 말이

“사모님, 우리 집에 풍선 되게 많아요. 풍선이 질겨서 터지지도 않고, 엄청 커요!”


양손에도 풍선을 여러 개 불어서 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수용이 녀석이 읍내 문방구에 가서 풍선을 사온 모양이다. 짠돌이가 돈 좀 썼구나’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녀석이 입에 물고 있는 풍선이 다른 풍선하고는 조금 달라보였다.


“야, 수용아! 풍선 좀 이리 갖고 와봐, 전도사님이 한번 불어 볼게.”
“안돼요.”


a 차렷. 똑바로 섯.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애들이었다.

차렷. 똑바로 섯.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애들이었다. ⓒ 느릿느릿 박철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그 풍선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박장대소하고 웃었다. 수용이가 입에 물고 있던 풍선은 '콘돔'이었다. 그것도 콘돔 속에 앵두를 잔뜩 넣은 이름 하여 ‘앵두 콘돔 풍선’이었다. 연숙이네는 뒤뜰 안에 큰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해마다 앵두가 많이 열렸다.

“수용아, 풍선 하나만 줄래!”

하고 졸라도 이 녀석은 수십 개의 콘돔 풍선이 있는데도, 하나도 주지 않고 나만 보면 도망치듯 달아났다. 수용이는 ‘앵두 콘돔 풍선’을 입에 물고 동네방네 다 다녔다. 아줌마들은 키득키득 웃고, 아저씨들은 짓궂은 농을 했다. 보건소에서 가족계획하라고 갖다 준 콘돔을, 아무도 안주고 한 달 내내 앵두 콘돔 풍선을 입에 물고 다녔다. 아마 필요한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 내외가 강원도 정선에서 4년 동안 살았는데 그 녀석을 볼 적마다

“수용아! 풍선 하나만 주라!”하고 놀렸다. 수용이 녀석이 얼마나 짠돌인지 한 개도 주지 않았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수용이는 지금 쯤 장가가서 애들 낳고 살고 있을 것이다. 연숙이네가 참 그립고 보고 싶다. 연숙이는 아빠가 나온 교대를 나와서 초등학교 교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늘 앵두를 먹으면서, 20 년전 강원도 정선 덕송리, 말만 들어도 가슴이 저린 그 시절이 절절하게 생각난다.
“수용아, 나도 풍선 하나만 다오!”
“안돼요.”
“아 녀석. 하나만 주지. 되게 짜네.”


a 앵두꽃. 벌이 놀러왔나 보다. 심심하지 않겠다.

앵두꽃. 벌이 놀러왔나 보다. 심심하지 않겠다. ⓒ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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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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