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메라와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늦게 시작했다고 주저하지 말라

등록 2003.06.01 05:51수정 2003.06.0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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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년전 아내가 시집을 때 갖고 온 카메라. 지금은 수명을 다해 쉬고 있다.

19년전 아내가 시집을 때 갖고 온 카메라. 지금은 수명을 다해 쉬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어린 시절부터 꼭 배우고 싶은 게 두 가지가 있었다. 카메라와 기타였다. 중학교 시절 한 친구에게 그 당시 ‘야시카’(Yashica)라는 카메라가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학교에서 카메라로 아르바이트를 한 셈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학교 교정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나중에 사진 1장 당 값을 정해놓고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그때는 흑백사진이었다.


그 친구가 카메라를 둘러메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데, 특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사진을 찍어 주다보니 자연스럽게 여학생들과 친하게 된다. 그걸 멀리서 지켜보면서 그 녀석이 참 부러웠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들여다 본 세상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사각 구멍에 눈을 대고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면 ‘철커덕’ 하는 기계음이 그 어떤 소리보다 아름답고 경쾌하게 들렸다.

카메라가 워낙 고가라 돈 주고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카메라가 갖고 싶었지만 아르바이트로 학교를 다니는 처지에 언감생심(傿敢生心) 카메라는 그림의 떡이었다. 카메라도 없으면서 카메라 잡지를 사 보았다. 유명한 사진작가 사진을 보며 사진세계에 빠져들었다.

a 내가 소장한 카메라와 렌즈. 어지간히 사 모았다. 내 살붙이 같다.

내가 소장한 카메라와 렌즈. 어지간히 사 모았다. 내 살붙이 같다. ⓒ 느릿느릿 박철

드디어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카메라가 생겼다. 지금 아내가 시집오면서 갖고 온 국산 삼성 미놀타 카메라였다. 일명 '똑딱이' 카메라이다. 생긴 게 앙증맞게 생겼다. 아내가 아버지 생일 선물로 사드린 카메라였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30년 전의 이야기이다. 신혼여행 때 찍은 사진도 그 카메라 찍은 사진이다. 그걸 둘러메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얼마나 들고 다녔던지 케이스가 너덜너덜 했다.

결혼해서 강원도 정선으로 목회를 가서 동네 아이들을 불러내 사진을 찍었다. 동네아이들은 다 내 사진모델이었다. 겨울이면 아이들을 교회에 집합시켜 산으로 토끼몰이를 나간다. 아이들 손에는 몽둥이가 하나씩 들려졌다. 그러나 토끼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토끼가 나타나면 몽둥이를 들었는데도 후려치지 못하고 무서워 피하고 만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아이, 내가 잡을 수 있었는데 아깝게 놓쳤네!” 한다. 그 정겨운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여름이면 아이들을 불러내 동네 우물터에 심은 메밀 꽃 앞에 세워놓고 필름 한 통을 다 찍었다. 나는 애인처럼 카메라를 늘 들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몸체만 10개 이상 바꿨다. 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a 추억의 졸업앨범. 올해 지석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찍어주었다.

추억의 졸업앨범. 올해 지석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찍어주었다. ⓒ 느릿느릿 박철

사진을 찍다보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다 내 몫이다. 지금도 어디를 가든지 영감이 떠오르면 양손 엄지와 검지로 네모 프레임을 만들어 사물을 본다. 오래된 습관이다. 그렇다고 사진을 잘 찍느냐 그것도 아니다. 사진을 기초부터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력은 신통치 않다. 아마추어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내가 카메라와 모터드라이브에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나서면 내가 프로인줄 안다. 우습다.

이년 전까지 만해도 내가 제법 사진을 잘 찍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인터넷 전용선이 들어오면서 사진동호회에 들어가 보니 나의 사진 실력이 얼마나 미천한 것인가를 절실히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진에 조금 눈이 떠졌다고 할까?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생명의 경외를 담아 좀더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진을 찍고 싶다.


또 하나 배우고 싶었던 것이 기타였다. 중학교시절 친구 녀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타를 배웠다. 기타야 값이 비싼 물건이 아니니 마음만 먹으면 살 수도 있었다. 나는 공부는 잘 못하면서 내 인생이 공부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타를 배우지 않았다. 더러 친구들 기타를 빌려 코드 잡는 연습을 해보기도 하곤 했지만 더 이상 배우지 않았다. 또 껄렁껄렁한 애들이 기타를 들고 다니며 팝송을 불러제끼는데, 솔직히 부러운 생각도 있으면서 ‘나도 저러면 안되지’ 하는 이상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모범생도 아니면서 모범생처럼 청소년시절을 보냈다.

목회를 하다보면 야외에 나가서 함께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자주 있다. 기타로 분위기를 잡고 양희은이나 김민기의 노래를 부르면 시쳇말로 아이들이 뿅간다. 그런데 나는 기타가 있어도 기타를 칠 줄 모르는 목석같은 사람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기타를 배워두는 건데 후회막급이다. 지금도 기타 잘 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최근에 기타리스트의 기타 소리를 들으며 가느다란 선에서 튕겨 나오는 소리에 빠져든다. 나는 김광석씨가 기타를 그렇게 잘 치는 줄 근자에 와서야 알았다. 깊은 울림을 준다.

어제 우리 집 큰아들 아딧줄이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교동 섬에는 기타학원이 없다. 다행히 이웃교회 후배목사가 단체로 중학생들 기타를 가르쳐 준다고 한다. 그걸 다른 애들한테 듣고 와서 기타를 배우겠다고 한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이 못난 아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앞으로 아딧줄이 기타의 고수는 아니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정도는 되었으면 한다.

“네가 배우고 싶으면 배워라. 기타라면 내일이라도 사줄 용의가 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아딧줄이 기타를 배운다면, 나도 옆자리에 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김민기나 김광석의 노래를 기타를 치며 부르고 싶다. 참 근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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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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