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살 장애학생 김준형군의 죽음

등록 2003.06.01 00:19수정 2003.06.0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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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여러 일간지를 통해 한 장애학생이 당한 비통한 죽음이 소개되어 우리 사회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서울 마포 성산중학교 3학년이었던 김준형군은 4월 3일 실종된 후 47일 동안이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채 병원에 숨진 채로 누워 있었다.

자폐 장애가 있는 김준형군은 4월 3일 아침 성산중학교 특수학급에서 준비한 월드컵 경기장 현장학습에 가기 위해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자폐장애와 함께 간혹 발작증세도 있어 준형이는 사람이 많은 곳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고 이날도 가기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현장학습에 꼭 참여하라는 선생님 말씀과 교육효과를 생각해 가게 되었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 먼저 도착해 선생님과 일행을 기다리다가 음료수를 사러 마트에 들어간 사이 준형군은 무언가에 시선이 이끌렸는지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준형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황급히 실종신고를 하고 백방으로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을 수가 없었다.

준형이는 순식간에 어머니를 잃어버렸고 온종일 헤매다가 전철이나 철도 등을 타고 평택까지 가게 되었다. 이날 밤 평택시 부근 철길을 헤매다가 갑자기 다가오는 화물 열차에 치어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지고 말았던 것이다.

준형군이 당한 사고는 우연히 미아찾기시민모임 관계자에 의해 실종신고 사진과 경찰쪽 사망자 사진이 같은 것을 알게되어 밝혀지게 되었다. 준형이 부모님은 실종 당일 사고로 숨진 줄도 모르고 속을 태우며 찾아 헤맸던 것이다.

같은 장애아 부모로서 김준형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주 준형군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위로와 함께 사고 경위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장애인참교육 부모회' 간부로서 김준형군의 사고가 특수교육 제도결함 때문이 아닌가 살펴보게 되었다. 한참동안 통화하고 나서, 준비되지 않은 특수교육 여건 속에서 힘겹게 지내온 준형군의 가족사와 열다섯 짧은 삶을 마감해야 했던 그 사회전기(Social biography)를 생생하게 보게 되었다.

김준형군은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여느 자폐아동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준형이의 교육을 위해서 어머니 김정민씨는 일반학교에 보내 통합교육을 받으며 생활하게 하였다. 어렵게 초등학교를 마치면서 어느정도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 교육환경은 장애학생에게 버거웠다. 일산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는데,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빈번했지만 교육적인 조치는 없었다. 또한 특수학급 학생이 20여명에 달해 특수교육 서비스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준형군은 학교를 싫어하게 되었고 더욱 마음을 닫고 말았다.

그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준형군 부모는 서울 마포로 이사했다. 그마나 학교가 작고 특수학급 학생수도 5명 내외인 성산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1년 정도가 지나자 제법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러 현장 학습에도 다니게 되었다. 문제는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교육 여건이 안되어 있어 외부 현장학습시에는 사고 위험에까지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특히 자폐성 장애학생은 상황과 상관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어 미아가 되기 쉽고 안전사고에 잘 대처할 줄 모른다.


준형군의 어머니는 "그날 보내지만 않았어도…" 라며 말끝을 흐리고는 당일 현장학습에 가기 싫어했던 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한없이 안타까워 했다. 학교쪽의 대책이 없는 가운데 현장학습 때마다 어머니가 동행해야 했고 이는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필자는 준형군의 사고를 접하고는 한가지 가정을 해본다. 만일 비로소 도입하고 있는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교육 보조원'이 성산중학교에 배치되었더라면, 준형이는 실종 위험으로부터 안전했을지도 모른다. 준형이가 당한 죽음은 최근 장애학생 부모들의 요구에 의해 도입되고 있는 특수교육 보조원제도가 왜 시급한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우리나라 교육행정가들이 장애학생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고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준형이는 오늘도 성산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 관료들은 특수교육 보조원제도는 2년간의 시험운영이 필요하다면서 예산이 부족해 금방 늘리기가 어렵다고 타령을 한다. 또한 전체 교육예산 대비 특수교육 예산을 2%에서 3%로 올리는데 5년이 지나야 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물론 그들의 과거를 보면 이런 안일한 계획마저도 제대로 실천될지 의문이다.

'특수교육 보조인력'은 한마디로 '장애인 편의시설'과 함께 특수교육을 가능케 하는 기본 조건이다. 또한 기본 인권으로서의 '장애학생 교육권'이 달린 문제이다. 이런 책임을 방기하면서 그토록 오랫동안 교육관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니. 이제라도 기득권에 안주하고 실천할 줄 모르는 교육관료들에게 나갈 세금이라도 줄여 아이들의 목숨을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당국은 장애학생 준형이가 죽음으로써 하는 호소와 그 어머니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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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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