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홍윤선의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

등록 2003.06.02 10:53수정 2003.06.0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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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대중화할 때 사람들은 인터넷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에 흥분했다. 그리고 정보가 무한정 공유되고 개방된다는 순기능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익명성의 그늘에서 자란 거대한 무형의 폭력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자살사이트나 유해정보 사이트 등의 독소가 정신을 병들게 하자 비로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바이러스 연구소의 안철수씨가 이 책을 소개하는 글 첫머리에 쓴 내용이다. 처음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은 이 공간을 우리가 새롭게 발견한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인터넷 공간이 우리를 배신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역기능을 발휘할 때, 더 이상 이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향이 아니었다.


"인터넷 공간에는 천문학적인 수의 웹페이지가 존재한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인터넷 공간에 아무리 수많은 정보가 널려 있어도, 개별적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개인적 관심사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사이버 공동체도 사회 관심사를 통합하기 보다는 사회와 문화를 조각낸다."

지나치게 많은 웹페이지의 존재로 인해, 사회와 문화가 통합적이지 못하고 흩어져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래서 이러한 새로운 가치관의 재조립이 긍정적으로 흘러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재조립의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떤 집을 조립하는가에 달려 있다. 누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조립하느냐에 따라 시대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 가치관은 인본주의와 상업주의였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이 흐르고 있는 방향을 보면 인본주의적 성격보다는 상업주의적 성격이 더 강하다. 이러한 상업성에 기반을 둔 인터넷 문화의 급성장으로 인해, 우리는 여러가지 불균형을 그 후유증으로 얻게 되었다. 게임 등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만 집중된 컨텐츠 개발, 비슷비슷하고 하향 평준화된 내용물로 가득 찬 공간 형성, 쇼핑 위주의 닷컴 회사 설립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문화 공간이 매우 부족한 편인데, 그 부족한 틈새를 메우는 것이 상업성에 치중한 인터넷 문화가 되어 버렸다. 저자는 "상업적 사이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것은 인터넷 공간에 유통되는 정보 대부분이 소비 정보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언급한다.


즉 상업성으로 일관된 불균형이 생성되었고, 우리 사회 전체가 '집단 문화 실조 증후군'을 겪게 된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부족한 가운데 게임과 포르노로 점철된 인터넷 문화가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유교로 인해 성문화에 대한 금기가 심한 사회에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은 성에 대한 노골성을 드러내기에 너무 좋은 공간이 되었다.

저자는 "보수적 포장지로 단단히 싸여 있는 듯 하지만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결국 음란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음란한 성문화가 인터넷을 만났다" 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흔히 보편적인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보편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악화가 양화를 지배한다"는 논리가 인터넷 공간에서도 거침없이 허용되고 있다. 남들이 다 보니까 포르노 사이트도 괜찮은 것이고, 게임 중독도 심각한 것이 아니며, 남에 대한 극단적인 비방도 괜찮다는 사고가 팽배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위험한 사고가 인터넷 공간 안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로까지 확산될 때 사회는 매우 심각한 병을 앓게 될 것이다.

인터넷의 또 다른 결핍은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실질적인 정보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는 집중력을 방해한다. 주변에 정보가 많으면 오히려 정보에 대해 편견을 갖게 만든다. 정보는 본질적으로 해석의 문제이고, 제대로 된 해석을 위해서는 생각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주변에 정보가 지나치게 많으면 해석하고 생각하는 시간보다 그 정보를 단순히 읽고 소화하는 데 더 큰 노력과 시간을 들이게 된다. 당연히 집중력이 떨어지고 해석에 있어선 오류의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들은 "파편화 된 정보"들이다. 조각난 정보들의 범람으로 인해,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는 매우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즉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제대로 얻고, 이를 다시 논리 정연하게 조합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 나름의 정보 찾기 방법을 제시한다. (1)기대 수준을 낮춘다, (2)불필요한 반복 행위를 삼간다, (3)쓸모 있는 오프라인 자료의 출처를 찾는 데 만족하라, (4)정보를 평가하는 관점을 갖는다, (5)과잉 정보에 둔감하라 등이 그것이다.

인터넷 공간은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다르게 이야기한다던가, 현실과는 다른 의외의 행동을 한다던가, 지나친 감정적 경향을 드러내며, 병적인 몰입과 의존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서 무기력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이 게임 사이트에서는 활발히 활동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포르노 사이트를 유포하고 접속했던 한 개인이 현실에서는 점잖은 대학 교수이기도 하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다중적인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심각해지면서 다중 인격의 인간상을 양산할 수도 있다. "보통 인간의 내면에는 여러 가지 성향이 함께 있고 그러한 속성이 하나의 인격으로 통합되어 드러난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는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여러 성향이 각각 여러 개의 인격으로 나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우리나라 최초로 인터넷 중독 센터를 운영했던 정신과 전문의 김주한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이버 중독의 해법은 의외로, 단순한 우리의 일상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목적과 수단을 바로잡는 것이고,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고서도 기쁘고 보람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의 인생에 주인이 되는 것이다. 마법의 포로로 사로잡히기 이전에 내가 걸어 왔던 삶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되돌아본다면, 너무도 쉽게 진정 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고, 내가 사랑한 것은 무엇이고, 내게 정말 중요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그 본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삶이 인터넷에 얽매여 망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바로 그 때, 이 의사의 조언처럼 재빨리 자신의 원래 모습과 꿈을 되찾고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자. 그러면 인터넷이 더 이상 나를 구속하는 괴물이 아니라, 진정한 유토피아로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

홍윤선 지음,
굿인포메이션,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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