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송지영 번역. 동서문화사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준 책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그 중 하나가 <장자(莊子)>이다. 20여 년 간 어줍잖은 목회를 해오는 동안 세상은 거대한 맘몬과 바벨에 의해 모든 가치는 혼재되어 개판 오분 전으로 돌아가고 나 역시 삶의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그래도 똑바로 서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그때마다 나를 붙들어 주며, 지켜준 책이 바로 <장자>이다.
장자의 이름은 주(周)로 BC 370-285년경 중국 송나라 사람이었다. 장자가 활동하던 시절 중국 철학은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인적 주관주의로 전락, 모든 것을 자기중심에서 보고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백가쟁명을 학술적 개방이라고는 하나 제자(諸子)들은 각기의 문호를 폐쇄하고 남의 주장을 거부하여 오히려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을 가져왔다.
일반적으로 범한 당시의 철학적 과오는 국부적인 것에 치우쳐 전체를 보지 못하는 편집(偏執)과, 세상사를 인간중심, 자기위주로 보려는 망념, 권위의식에 빠져들어 자연의 진면목은 여러 가지 가상(假想)에 가려졌으며 여러 가상을 더듬어 생긴 지견(知見)은 다시 인간본성을 흐리게 만들어 놓았다.
이 미망(迷妄)된 인간들이 가상과 오식 사이에서 벌이는 시비 논쟁은 자연 평행선을 달리어 수습될 수 없었다. 장자철학은 그러한 가상과 가식, 편집과 편지(片知)를 철저히 타파, 자연과 적나라한 인간을 직접 빈틈없이 만나도록 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문제 이전으로 환원시키고 인생의 가장 순탄하고 자유로운 삶을 되찾도록 하는데 그 취지를 두었다.
그는 편집과 망념을 해소하는 철학적 기조로 자연의 정체성(整體性), 만유의 형평성(衡平性), 개체의 단위성(單位性), 그리고 모든 시비의 상인성(相因性) 등을 내세웠다. 장자에 의하면 세계는 개체들의 공능(功能)이 회현(會顯)하는 총화장(總和場)이며, 또 자연 외에 그 무엇이 있어 조물주제(造物主祭)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변화는 출렁대는 자연계의 일환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개체는 고립할 수 없고 서로 교섭 조화해야 한다. 장자가 나는 천지와 공생하고 만물과 공존한다(제물론)고 한 것이 그것으로 ‘천일합일(天一合一)’과 ‘물아무간(物我無間)’을 깨달은 말이다.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자연은 영원한데 나는 왜 단(短)한가 하는 비교에서 나오는 생사(生死), 화복(禍福) 등의 고뇌가 씻어지고, 나와 남이 의존관계에 있다고 볼 때, 어느 것은 위대하고 어느 것은 졸렬하다는 차등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일체는 자재(自在)요 평등일 뿐이다. 이러한 자연관에서 폐쇄된 소아(小我)가 개방되고 무분별한 무차등의 대아(大我)가 탄생한다. 장자의 달관된 인생관은 이러한 대아(大我)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장자의 인생관의 요지는 자연에 순응하라(全性), 항상 자기를 겸허하게 하라(保眞), 피차의 처지를 바꾸어서 시비를 보라 즉 전관보조(全觀普照)하라, 유용(有用)과 무용(無用) 사이에 처신하라(虛己) 등 네 가지로 집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