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50

제세활빈단(制世活貧團) (3)

등록 2003.06.04 15:46수정 2003.06.0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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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월빙보를 공격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주석교 문제를 들고나올 것이외다."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소이다."

"허면, 이런 방법은 어떻겠소?"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소?"


"우리가 동시에 나서서 월빙보 공격을 반대하면 그 사이에 선무곡에서 무슨 수를 내도 낼 것이라 생각되오."
"흐음! 선무곡에 그럴 역량이 있다 생각하시오?"

상희태는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선무곡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무림천자성의 휘하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주석교가 공격당하면 선무곡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 생각할 것이오. 그러니 그들로서는 어떻게든 무림천자성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수를 쓸 것이오."
"하지만 그들의 역량으로는…"

"들어 보시오. 같은 정파라고는 하지만 소림사를 제외한 구파일방은 은근히 무림천자성에 대한 반감이 있소이다. 무림천자성이 있기 전까지 그들은 분명 강자였소. 하지만 지금은 아니오. 이빨 빠진 호랑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소이다. 그리고…"

강호의 정세를 면밀히 분석한 간택민의 설명 이후 상희태 역시 나름대로의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날 회동은 늦은 밤에 끝났다. 그리고 그들은 올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며칠 후, 화존궁과 일월마교에서는 무림천자성의 월빙보 공격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예상을 하고 있었겠지만 이토록 단호하고 신속하리라 판단할 수 없었던 무림천자성으로서는 주춤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판국에 전통적인 우호세력이 유대문도 월빙보 공격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마도 문파들 사이에 끼어 있기에 자칫 불똥이 튈까 싶어 자위적인 차원에서 내놓은 의견인 듯하다고 분석하였다.

* * *

"이런 젠장! 젠장!"
"궁주님, 고정하십시오."

"본좌가 지금 고정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느냐?"
"……!"

"지금 당장 화산분타를 철수시켜라. 그리고 점창파에서 납품 받던 포향주의 반입을 금지시켜라. 고얀 놈들 같으니…! 소림사에서도 찍소리 않고 본성의 명에 따르거늘…"
"그러면 화산파와 점창파의 재정에 막대한 영향이 있을 터인데 어찌…"

"흥! 그깟 놈들이 망하든지 말던지 본좌와는 아무 상관없다. 그러니 즉각 명대로 시행하라!"
"존명!"
"그리고 다른 문파들에겐 배첩을 띄워…"

수집된 정보에 의하면 소림사를 비롯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월빙보 공격을 반대한다는 보고를 받은 철룡화존은 펄펄 뛰고 있었다.

천하제일 문파인 무림천자성의 성주인 자신이 하겠다는데 감히 딴지를 걸고 나오는 문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만나기만 하면 설설 기던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까지 자신의 뜻에 반대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러니 화가 나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궁주님! 고정하십시오. 이런다고 순순히 물러서면 본궁의 체면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월빙보 공격을 밀어붙이십시오. 그러면 구파일방 등은 어쩔 수 없이 본궁의 뜻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

구부시는 보고하는 오각수 도날두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편을 들어줘도 시원치 않을 구파일방 장문인들까지 월빙보 침공에 반대하기 때문에 화가 났는데 그들이 자신의 뜻에 따를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짐작 못할 오각수가 아니었다. 강호에는 전혀 소문이 나지 않았지만 음모와 귀계라면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위인이 바로 오각수였다.

사실 무림천자성이 오늘과 같은 반석 위에 놓이게 된 것도 그의 공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뭔가 복안이 있어서인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슬그머니 미소까지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보고 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조만간 본궁의 공격에 정당성을 부여할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공격 개시를 명령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

"그때가 되면 점창파와 화산파가 지금은 반대하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틀림없이 한 몫 보려 달려들 것입니다."
"……!"

구부시는 감히 자신을 궁금하게 만든 죄가 어쩐지 알기나 하냐는 듯한 예리한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었다. 그것은 빨리 불지 않으면 뭔 일이 생겨도 책임질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 일을 밝힌다 함은 천기를 누설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궁금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시고…"
"무어라? 지금 나더러 궁금해도 참으라고?"

'허억…!'

능글맞은 표정으로 미소까지 짓고 있던 오각수는 싸늘해진 철룡화존을 보고 얼른 안색을 굳혔다.

그가 보기에 성주인 구부시는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위인이다. 아무리 작더라도 일파의 장문인이라면 자중자애하는 맛도 있어야 하고, 비켜가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비켜갈 줄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구부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어떤 것을 구분할 때 단 두 가지로 구분 짓는다. 흑이 아니면 백, 친구가 아니면 적!

다시 말해 구부시에게는 적과 아군의 중간쯤 되는 사람이 없고, 그림을 그려도 흑백이 분명한 그림만 좋아한다.

기분도 그렇다. 어찌나 단순한지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이렇게 두 가지만 있을 뿐이다. 기분이 좋으면 상을 내리고, 나쁘면 죽음을 내리는 사람이 바로 구부시이다.

실로 근시안적인 시각밖에 지니지 못한 철부지나 다름없는 인간이다. 그런 그가 부모를 잘 만난 덕에 무림천자성이라는 거대한 문파를 이끄는 성주가 된 것이다.

전에 오각수는 남몰래 음모를 획책해본 바가 있었다. 멍청한 구부시를 밀어내고 자신이 무림천자성의 성주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멍청한 그보다는 똑똑한 자신이 성주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어울리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포기하여야 하였다. 무림천자성에는 구부시보다도 더 멍청한 작자들이 많았다.

비보전주인 고파월이 그렇고, 제일호법인 고경지와 구부시의 채홍사(採紅使)나 다름없는 흑령재녀 나이수(羅怡秀)가 그랬다. 그들은 거의 맹목적으로 구부시를 추종하였다.

철룡화존 구부시를 시해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결코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천하를 움켜쥐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들 가운데 하나 정도는 포섭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은밀히 접해본 결과 구부시보다도 더 멍청한지 아무리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깨끗이 포기한 것이다.

대신 음모와 귀계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오른 뒤 적당한 기회를 엿보기로 하였다. 그동안엔 치부하는 한편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재미를 맛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구부시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전대 성주인 구린탄이 구부시에게 이르기를 오각수를 조심하라 하였다. 흉중에 야심이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읽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멍청한 구부시는 부친의 말을 까맣게 잊고 자신에게 알랑방귀를 뀌는 그를 중용한 것이다.

아무튼 아직까지는 구부시의 이목을 완전히 가리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잊지 않은 오각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구부시가 경쟁자인 비보전주 고파월에게 명을 내리면 언제든 자신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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