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주년, 월드컵 방송 돌아보기

1년 전 월드컵 방송의 횡포-시청자 선택권 봉쇄

등록 2003.06.04 19:32수정 2003.06.04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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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열광하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월드컵 축구대회도 국내·외의 찬사와 경탄 속에 막을 내린 지 1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1일 한일 경기와 1주년이란 명분으로 다시 월드컵 축구대회에 대한 평가도 찬사로 가득하다.

현재에도 대회에 다소의 흠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시비한다는 것은 어쩌면 국민정서가 용납하기 어려울 만큼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보다 나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대회를 냉철하게 결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열광의 환호성 속에 성찰의 기회마저 파묻어 버리는 것은 성숙한 모습이 아니다. 가릴 것은 가리고 고칠 것은 반성해야 미래를 약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업의 하나로 우리는 월드컵 축구대회 기간 중 보여준 우리 방송의 행태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방송의 횡포였다.

모든 지상파 TV가 64개 경기 전체를 동시에 중복해 중계하고, 그것도 모자라 재탕 삼탕한 까닭에 6월 한달 동안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해야 했다. 이같이 시청자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한 편성이 방송의 횡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심지어 국가 기간방송이며, 공영방송인 KBS마저 한국팀의 16강 진출 이후 우리 팀이 출전한 경기를 두 개의 TV채널이 동시에 중계했다.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전 세계에서 모두 지상파 TV가 경기 전체를 동시에 중복 중계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월드컵 축구대회를 우리와 같이 공동 개최한 일본의 경우 공영방송인 NHK만 전 경기를 중계하고 상업방송들은 협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중계했다.

월드컵 방송의 문제점은 대충 돌이켜보기에도 너무 많다.

△중복 편성으로 인한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 무시 △시청률 지상주의 △중계방송에 주관적 감정이입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은 뉴스 보도 △부실한 ARS(자동응답전화서비스) 퀴즈 경쟁 △방송 진행자의 `말' 사고 △폐막 후 천편일률적인 특집방송 등….


그 결과는 무엇인가? 시청자의 권리가 철저하게 박탈당한 것은 물론이고 지방자치선거마저 월드컵 열기 속에 파묻혀 버리게 했다. 과학적 조사결과는 아니지만 투표율이 50% 이하였던 것은 정치에 대한 식상함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월드컵 일색의 방송 탓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6월 15일까지 3사의 저녁 메인 뉴스 건수의 73%가 월드컵 뉴스였던 데 비해 지방선거뉴스 등은 10%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시간대를 옮기고 시간도 단축한 뉴스시간에 온통 월드컵 얘기밖에 없다시피 한 탓에 6월 한달 동안 시청자들은 뉴스 문맹자가 돼야 했다. 이것이 방송의 횡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시청 선택권은 방송의 공익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장치이며, 이를 논리적 근거로 담보하여 지상파 민영방송, 케이블, 위성방송 등 지속적인 채널의 증가가 있어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다시 새로운 채널을 요구하는 것은 채널 수의 증가가 그간 선택권 확대에 기여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현재의 방송은 말로만 시청자 선택권을 강화하고 있다. 선택권 강화라고 해봐야 항상 주어진 범위 내에서의 제한된 선택을 단지 '선택'이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시청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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