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52

제세활빈단(制世活貧團) (5)

등록 2003.06.06 12:30수정 2003.06.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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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소림에는 골치 아픈 망나니 하나가 있었다. 그는 누군가가 산문 앞에 내버렸던 아이였는데 장로 가운데 하나가 불쌍히 여겨 제자로 거둔 아이였다.

어린 시절에는 본 바탕을 알 수 없기에 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차차 성장하면서 수없이 계율을 어겨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불전에 올라온 시줏돈을 몽땅 들고 나가 낙양의 기루들을 두루 섭렵하였다.

술을 마셨고, 계집질을 하였으며, 도박도 하였고, 심지어는 승복을 걸친 채 패싸움까지 벌였다. 나중에는 금박을 입힌 불상까지 들고 나가 팔았다. 물론 그것으로 도박과 계집질을 하였고 그것으로도 모자란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렸다.

체면을 중시하던 소림사로서는 정말 골치 아픈 제자였다. 하여 어떻게든 그를 다스리기 위하여 면벽(面壁)도 시켜보았고, 계율원 지하에 있는 뇌옥에 가둬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반성했다 싶어 꺼내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 사고를 치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제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치라 생각하였지만 엄연히 소림의 제자였으며 특별히 살인이나 강간 등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바 없기에 차마 참수형으로 다스릴 수 없던 소림사는 그를 파문해 버렸다.


한동안 강호를 떠돌던 그가 나타난 곳은 무한(武漢)이었다.

그는 소림에서 익힌 무공으로 무한 인근에 있던 불량배들과 무뢰한들, 그리고 난봉꾼들과 무림 각파에서 죄를 지어 파문 당한 제자들을 굴복시키면서 점차 세력을 넓혀갔다.


그 다음에 그와 그의 일당들이 한 일은 무한에 거주하던 양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것이다. 소림사를 비롯한 각파의 잡다한 무공을 익힌 그들을 당해낼 재간이 있는 양민들은 없었다.

당시 각파에서는 자파의 내실을 기하기 위한 수련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제자들 영입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기에 그들 일당이 벌이는 일에 관심을 가진 문파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각파에서 죄를 짓거나 골치 아픈 존재들을 흡수해주었기에 그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였다. 덕분에 그들에 의하여 죽은 양민들의 수효는 그야말로 부지기수가 되었다.

양민들이 죽은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들이 자리잡고자 하는 자리에 살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원하던 자리를 얻은 그들은 조악하기는 하지만 성곽을 세우고 세력을 키워갔다. 이들의 악행은 가히 끝이 없었다.

방화와 약탈은 보통이었고 살인, 강도를 밥먹듯 하였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반반하면 강간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수간까지 자행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명문정파들은 그들을 토벌하였다.

행하는 일마다 악행이었기 때문이고, 놔두면 점점 더 골치 아픈 존재가 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들을 이끌던 자의 종복 가운데에는 제왕비로 이정기를 시해하고 도주한 구판돌의 선조가 있었다.

근본이 이러하기에 오늘날 무림최고의 세력이라 하는 무림천자성 성주 구부시를 비롯한 일당들이 그토록 천박한 것이다.

오늘 날 무림천자성에 빌붙어 막대한 부를 챙기는 유대문은 훨씬 더 오래된 문파이다. 소림사가 생기기도 전부터 존재하였으며, 선무곡과 마찬가지로 같은 혈족들이 모여 만든 문파이다.

이들은 천지신명이 자신들을 선택하였다는 선민(選民)사상에 젖어 있는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오만불손한 것이다.

유대문에 대한 모든 설명을 들은 이회옥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지금은 무림천자성의 위세에 눌려 있지만 언젠가는 유대문이 득세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가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그들의 습성을 감안한다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단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는 무림이지만 무림이 생긴 이후 지금껏 있어왔던 모든 싸움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반드시 연루되는 문파가 있었다. 유대문이 바로 그 문파이다.

그들 인근에 자리한 마도 문파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짓이 너무도 눈꼴시어서 똑바로는 볼 수 없을 지경이라 하였다. 그래서 견원지간(犬猿之間)처럼 늘 으르렁대는 사이였다.

무림에는 두 번의 암흑대전이 있었다. 그 가운데 두 번째 일어난 암흑대전은 화산파와 왜문, 그리고 곤륜파가 일으킨 것이다.

당시 화산파의 장문인이었던 흑염도사는 유대문도들의 되먹지 못한 거만함을 보다 못해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렸다.

유대문도라면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단 하나도 남김 없이 모조리 죽이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완전히 씨를 말려버리면 더 이상 눈꼴신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유대문이 하는 짓은 정파 무림인들의 눈에서도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적지 않은 유대문도들이 비명횡사하였다.

암흑대전이 끝난 후 잠시 숨죽이고 있던 유대문도들은 특유의 간사함으로 무림천자성에 빌붙을 수 있었다. 덕분에 막강한 금력이 생긴 그들은 온갖 수작을 다 부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팔래문의 터전 가운데 일부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원래 주인인 팔래문도들에게 나가라고 한 일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인근 마도문파들을 핍박하면서 점차 영토를 넓히겠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가만히 두고만 볼 마도인들이 아니었다. 하여 유대문과의 일전을 벌인바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마도문파들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유대문의 배후에 막강한 힘을 지닌 무림천자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자를 불려준다면서 무림천자성 수뇌부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뇌물 공세를 편 결과 현재로서는 만병지왕이라 할 수 있는 무적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병장기끼리 격돌할 때마다 자신의 병장기가 여지없이 박살났으니 마도 사람들로서는 분통이 터졌지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유대문은 요즘도 적지 않은 분란을 야기시키는 중이라 하였다. 무림천자성이 아무리 자제하라 일러도 수시로 마도 문파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무림천자성의 수뇌부들 대부분이 유대문의 뇌물에 흐물흐물 녹아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회옥은 무림천자성과 유대문의 주요 인물들 뿐만 아니라, 왜문 등 각파의 주요인물들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울러 제세활빈단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오래 전 선무곡 수뇌부들이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던 때가 있었다. 덕분에 하급 제자들 가운데에는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탄식이 터져 나올 때였다.

하여 다음과 같은 싯구가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였다.

金 樽 美 酒 千 人 血
玉 盤 嘉 肴 萬 姓 膏
燭 淚 落 時 民 淚 落
歌 聲 高 處 怨 聲 高

금 술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일천 백성의 피요,
옥 소반에 놓인 기름진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농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이즈음 홍길동(洪吉童)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활빈당(活貧黨)이라는 조직이 생겨났고, 이들은 권력의 힘으로 양민들을 괴롭히던 부패한 관리같은 자들을 징계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어떤 행위를 얼마나 가혹하게 하였는지가 상세히 기록된 살생부가 그들의 징계수위를 결정했다. 대부분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몰수하고 장형(杖刑)으로 다스리는 것으로 끝냈지만 심하게 가렴주구를 일삼았던 자들은 목숨도 잃고 재산도 잃었다.

이렇게 하여 모아진 재물은 힘없는 양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었다. 하여 활빈당이 사라진 뒤에도 선무곡 사람들은 살기 어려워질 때마다 그들을 떠올렸다.

한때 활발히 활동하다 홀연히 사라진 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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