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 놀라시었소?"
"…"
장한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물었지만 반쯤 얼이 빠진 이회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한을 따라 안으로 들어선 이회옥은 사방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석실은 제법 넓었다. 마주 보이는 곳에는 여러 석실들이 있었고, 좌우 벽면에는 수없이 많은 병장기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연공관에 입관한 사람은 이 안에서 한 가지 병장기를 가지고 나갈 수 있소. 보기엔 다 괜찮아 보이지만 실상은 별 볼일 없는 것도 있고, 개중엔 정말 괜찮은 것들도 있으니 잘 생각하여 선택하시기 바라오."
"예? 아, 예!"
사방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던 이회옥은 장한의 말에 각종 병장기들이 정리되어 있는 병기대로 다가섰다. 한 눈에 보기에도 괜찮아 보였기에 그것을 살피려는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기관을 건드렸는지 나지막한 기관음이 들렸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 이회옥의 눈에는 안내하였던 장한의 하반신만이 보이고 있었다. 올려졌던 기관이 다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릉! 우르르르르릉!
"아앗! 이, 이보시오. 소생만 놔두고…"
"아참! 깜박 잊고 말하지 않았는데 밖으로 나오려면 가운데 있는 석탁에 쓰여 있는 것을 보시오."
"가운데 있는 석탁이요?"
"그렇소이다. 거기에 기관을 작동시키는 방법이 있…"
장한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기관이 완전히 닫히면 소리조차 끊기는 모양이었다.
"젠장! 여기서 나 혼자 뭘 어쩌라고… 혼자 있으면 심심한데… 그리고 갈 때 가더라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가르쳐 주고 가야지… 젠장! 인심 한번 되게 야박하네."
닫혀버린 기관 주변을 더듬던 이회옥은 홀로 남겨진 것이 못 마땅하여 투덜거렸다. 혼자 있는 것이라면 무림지옥갱의 독방에서 싫도록 경험하였기에 싫었던 것이다.
"젠장! 이제 꼼짝없이 갇힌 셈이군. 그나저나 배가 좀 고픈데…앗! 그러고 보니 먹을게 어디에 있는지 안 가르쳐주고 갔다. 이런 젠장! 이보시오. 이보시오. 밖에 아무도 없소?"
문득 뱃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자칫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이회옥은 얼른 벽면을 두드렸으나 얼마나 두꺼운지 아예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참! 석탁을 보면 기관을 여는 법이 있다고 했지?"
이회옥은 석실 정 중앙에 놓여 있는 석탁으로 향하였다.
< 이곳 다물 연공관에 든 후인을 환영하는 바이다.
노부는 위대하신 광개토대제로부터 감히 선무제일가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하사 받은 을지가(乙支家)의 가주 을지혁(乙支赫)이다. 노부는 만천하에 선무곡의 명성을 드날린 희대의 대영웅이신 대제의 우장(右將)이다.
노부는 대제께서 담덕(談德)이라는 아명(兒名)으로 불리실 때부터 같이 사냥을 다닌 사람으로 대제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불철주야 말을 달렸고 검을 휘둘렀다.
나는 대제를 위하여 이런 노래를 지었다.
白 頭 山 石 磨 刀 盡
豆 滿 江 水 飮 馬 無
男 兒 二 十 未 平 天
後 世 誰 稱 大 英 雄
백두산의 바위는 칼을 가느라 닳아 없어지고
두만강의 푸른 물은 말 먹이느라 말라붙었도다.
사내 나이 이십에 천하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누가 있어 나를 대영웅이라 칭하겠는가?
대제께서는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대영웅이셨다. 한 자루 장검으로 만국을 무릎 꿇리셨음이 이를 입증한다.
대제 앞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제아무리 강한 방파라 할지라도 대제의 출현과 동시에 무릎을 꿇어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호, 애재라!
대제께서 나이 사십도 넘기지 못하시고 일찍 붕어(崩御)하실 것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오호, 통재라!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만천하를 대제 앞에 무릎을 꿇릴 수 있었는데 그리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통탄스럽도다.
젊은 시절, 대제께서는 자신의 운명을 아시기라도 한 듯 노부에게 이르시길 이곳에 다물 연공관을 준비하라 명하셨다.
장차 본곡의 명성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날릴 기재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 하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후인이 정녕 대제께서 예언하신 후인이라면 아마 본가의 대가 끊긴 후일 것이다.
일찍이 대제께서 이르시길 본가의 대가 끊기면 대 고구려의 드높은 기상을 지닌 후인이 출현한다 이르셨기 때문이도다.
이에 노부는 천지신명께 엎드려 기원하거니와 일찍 본가의 대가 끊기기를 바라노라. 본가가 망해 선무곡이 더 위대해질 수 있다면 백 번 대가 끊긴다 하더라도 추호의 원도 없도다.
대제께서 친히 예언하신 후인이여!
이곳 다물 연공관에는 대제의 심모원려가 안배되어 있노라. 부디 그것을 찾아 대제의 뒤를 이어 선무곡으로 하여금 스스로 위대해지도록 해주길 바라노라.
허나 인연이 없다면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아무리 찾아도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석탁의 상판이 바닥에 닿도록 누르기만 하면 되노라.
후인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며 을지혁이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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