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자주국방 의지 어디로 가나

[김재홍칼럼] 무기도입 다변화와 국방예산 운용의 개혁이 관건

등록 2003.06.10 15:48수정 2003.06.16 15:53
0
원고료로 응원
"나는 전시에 작전통제권도 못가져"

노무현 대통령은 한반도 안보에서 자주국방과 국군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선 한반도 안보의 협력자 및 동북아 균형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 4월19일 진급 및 보직 신고를 한 군 장성들에게 언급한 내용으로 올바른 안보관이라고 평가된다.

그 이전에 노 대통령은 취임 전후해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인 우리 위상에 맞는 자주국방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 대통령이 전시에 국군 작전통제권도 갖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의 자주국방력에 대한 의지는 그것을 바탕으로 해야 한미동맹이 대등한 관계로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같다. 그러나 최근의 주한미군 동향을 보면 그의 자주국방 의지가 퇴색한 것 아닌가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현대 국제사회의 교류협력과 상호의존성을 고려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자주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상호의존성 보다 더 강한 동맹관계에서도 자주국방은 지켜야 한다. 국방정책, 군사전략, 무기생산 및 구매, 훈련교리, 국방예산 편성과 운용 면에서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더구나 큰 나라와의 동맹조약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바로 동맹이 실질적 간섭의 명분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한반도 안보는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해야 하며 동맹국인 미국은 지원역할에 그쳐야 한다.

주한미군 전력증강은 한반도 화약집중


주한미군이 앞으로 3년 동안 모두 14조여원 어치의 첨단무기들을 들여올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달 말 우리 국방부와 한미연합사령부가 발표한 내용이다. 14조원이면 국군의 5년간 무기도입 총액에 해당한다.

미군이 새로이 들여올 무기들을 보면 합동정밀직격폭탄(JDAM), 공격용 아파치 롱보헬기(AH-64D), 최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PAC-3), 무인 정찰기(UAV) 등이 포함돼 있다. 엄청난 군비증강이다.


여기다 주한미군 자체의 전력증강을 넘어서게 하는 것이 초고속 수송선((HSV) 도입이다. 이는 오키나와에 있는 주일미군 전력까지 초고속으로 실어 날라다 한반도에 투입하는 기능을 노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한반도는 중동지역과 함께 세계 최대의 화약고에 해당한다. 권위있는 군사전략 연구기관인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남한이 세계 군사력 순위 6위, 북한이 7위로 돼 있다. 남북한 모두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다.

미국이 자기네 예산으로 미군 전력을 강화하는데 왜 시비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땅에 '위험물질'을 반입하는데 어떻게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을 견제하니까 더 안전해지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주장도 나올지 모른다.

특정 국가가 안보를 튼튼히 하겠다면서 군비를 증강하면 그것은 그 나라의 내정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주변 국가들도 그 나라가 여차할 때는 방어할 수 있게 군사력을 더 높이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그것이 이른바 '안보의 딜레마'로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낳는 배경이다.

더구나 주한미군의 전력증강을 그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이 어떻게 좌시하겠는가. 안보 대비책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안보 대비책은 돈이 적게 들고 효율성이 크다고 판단한 핵무기 개발로 갈 것이 뻔하다.

진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선가 과감히 끊어주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방어충분성을 벗어난 공격적 군비증강 조치를 중단시켜야 한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중국 견제

주한미군의 역할은 이제 한반도 안보보장만이 아니다. 동북아지역의 안정유지가 또 하나의 임무다. 이는 노 대통령도 이미 언급했지만 지난달 발표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명기됐다.

동북아지역 균형정책은 미국의 국익에 바탕한 대외전략이지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다. 넓은 의미에서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지불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총액의 3분의 1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반도 안보 뿐아니라 미국의 동북아전략도 포함된 주한미군 역할이라면 이제 그 분담비율은 낮추어야 한다.

말이 동북아지역 안정이지 따지고 보면 미국이 추구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견제다. 2000년 5월26일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미 합참 2020년 전략보고서(JOINT VISION 2020)'의 주요 내용이다.

'중국 포위'라고까지 분석된 미 국방부의 아태전략은 지난 1998년 발효된 일본과의 신방위조약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적 돌발사태가 발발해서 미군이 작전에 들어갈 경우 그것을 일본이 지원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미국이 일본의 유사사태법 제정 등 재무장 움직임을 방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일본의 양두헤게모니(bi-hegemony) 지배구조는 더욱 심화돼 갈 것으로 우려된다.

한반도 지형에 맞지않는 무기를 사라니

주한미군의 전력증강 계획이 발표된 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과 리언 러 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은 조영길 국방부 장관에게 한국군도 첨단무기를 구매하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공격용 아파치헬기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사라고 종용했다.

미국측이 두 무기를 사라고 종용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부터다. 그러나 아파치헬기는 광활한 평지나 사막의 전투에 맞게 개발된 장비다. 좁은 산악형 전장환경인 한반도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패트리어트 미사일도 사정권이 짧은 한반도에선 별 쓸모가 없다. 예컨대 한반도 어디서든 미사일이 발사된 후 도달하는 시간은 5분 안팎이기 때문에 패트리어트으로 대응 요격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두 무기는 엄청나게 비싸서 투자 대 효과 면을 보아도 한국형 무기체계로선 낙제다. 그런데도 미국이 군사동맹 관계를 이용해 그런 불합리한 무기구매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이기주의며, 국방예산 운용에 부당한 압력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무기구매는 미국이 지나치게 독점해 왔다. 그런 독점 때문에 가격이 비싸고, 기술이전도 까다로우며, 보상교역 비율도 불리하다. 자주국방의 중요한 정책 중 하나는 무기도입선을 자유시장 원리에 맞게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는 것이다.

국방부는 국방예산의 증액 노력 못지않게 예산 운용을 철저히 효율성 위주로 개혁해야 한다. 2000년 이후 국방예산 항목을 보면 매년 인건비 비중이 높아지고 전력투자비가 떨어졌다. 올해 전력투자비는 국방예산 총액의 33.5%에 불과하고 경상운영비가 66.5%를 차지하고 있다.

국방예산을 과거 관행에서 완전 탈피하는 '제로 베이스'편성으로 하지 않는 한 그런 불균형 구조가 혁파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