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 보인다, 삶이 보인다"

유경의 <꽃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

등록 2003.06.10 17:50수정 2003.06.11 12:40
0
원고료로 응원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노인복지 쪽에서 일해요"라고 답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 노인들 힘들텐데"라는 꼬리말이 항상 붙는다. 복지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동 복지나 청소년 복지는 새롭게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여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반면, 노인복지는 아무리 잘해봐야 마지막이 어르신들의 죽음이라 힘들고 허무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노인 복지라는 공간에 7년 정도 몸담고 있으면서도 가끔 '노인'이라는 단어가 나와 관련 없는 먼 나라 언어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좀더 즐거운 노년을 지내도록 도와드릴 뿐 나는 가지 않을 세계인 것처럼 생각하고 달려간 적도 있다.


저마다 다른 인생 길을 걸어와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는 노년의 개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심코 무시해 버린 나에게 <꽃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의 저자 유경은 마른 나무에서도 여린 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듯, 노년기는 삶의 새싹이 숨어 있는 시기라고 말한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 소중함을 알지 못하듯 내 안에 있는 노년을 우리는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며 말하기 싫어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영화와 책을 통해 객관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노년을 전한 오마이뉴스 '녹색 노년'의 연재 기자 유경이 쓴 <꽃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는 또 다른 색깔을 띠며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즐겨보는 영화와 책, 동화 등을 매개로 130여개의 글을 쓴 저자는 여섯 개의 카테고리 속에 69편의 소재를 구슬 삼아, 그동안 미처 말하지 못했던 삶에 대한 성찰을 노년이라는 실에 꿰어 잔잔한 감동으로 엮었다.

생각하던 삶과는 다르게 인생이란 하루하루 견디며 버텨내는 것, 때로는 꾀죄죄하고 보잘 것 없이 허무해서 그냥 폭 꺼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며 지쳐 있을 때, 화려하지 않지만 그 자리를 지키며 소박하게 살아온 다양한 인생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요란하지 않고 거창하지 않아서, 아니 오히려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어서 더 위대하고 가슴에 와닿는 삶들이 지친 마음을 위로하며 용기를 주었다.

노인 복지를 하면서 만난 무수히 많은 노인들. 활기차고 즐거운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들도 많지만 모든 것을 세월 속에 빼앗겨 버린 듯 남아도는 시간 속에 아무런 바람도 없이 멍한 눈의 노년을 만날 때마다 '무슨 재미로 살까?' 또는 '무슨 의미로 삶이 지속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노년 그 자체가 무수히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알 수 있었다. 노년은 선물이며, 몸소 가르치는 선생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나이 드는 것이 좋은 다섯 가지 이유'를 명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나의 분수를 알게 됐다, 삶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 인식하게 됐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새로운 인생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며,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인생 선배 노인들, 그들이 걷고 있고 우리가 곧 도착하게 될 노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이 저절로 보인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꽃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

유경 지음,
서해문집, 2003

이 책의 다른 기사

더보기
당신도 언젠가는 늙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