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무처럼 살고 싶다

등록 2003.06.11 07:55수정 2003.06.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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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라산 정상부근에서 바라본 구상나무 숲과 하늘

한라산 정상부근에서 바라본 구상나무 숲과 하늘 ⓒ 김민수


욕심일런지도 모른다. 감히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그러나 욕심이라도 좋다. 살면서 자기를 위한 욕심을 한 가지쯤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초여름의 더위가 시작되던 날 한라산에 올랐다. 아주 천천히 올랐기에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이전에 보지 못하던 풍경들과 소중한 것들을 담아올 수 있었다. 산은 음미하며 오를 일이요, 즐기며 오를 일이다. 조금 더디게 가도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숲을 지나고 마침내 정상에 이르게 되고, 정상에 이르면 내려오게 되니 서두를 일이 아니다.

a 자작나무

자작나무 ⓒ 김민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자작나무는 잉걸일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백록담을 오르다 우연히 주목들 사이에서 발견한 자작나무, 지난 해 입었던 옷을 벗고 하얀 수피를 낸 모양새가 너무 예쁘고, 촉감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나무가 이런 부드러움을 담고 있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조심스레 벗겨 시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내가 만일 청년기라면 사랑하는 여인에게 정갈하게 편지를 써서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만져 본 나무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온 자작나무의 그 느낌은 아직도 손끝에 남아있다.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자작나무처럼 살고 싶다.

a 구상나무

구상나무 ⓒ 김민수

해발 1800미터에 이르니 구상나무의 두 가지 모습이 대조적이다. 푸른빛을 더해 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이제 푸르름은 다 벗어버리고 우뚝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구상나무가 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그렇게 이 천 년도 모자라 썩어서 천 년, 그래서 삼 천 년을 산다는 주목과 닮은 나무,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구상나무도 최소한 살아 천 년의 세월을 이미 훌쩍 넘겨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히 그 앞에 서있을 수가 없다.

한 자리에서 인고의 세월, 모진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을 구상나무의 삶은 깊게 패인 주름살 같은 구상나무의 나뭇결로 알 수 있다.


고교를 졸업한 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중에서 유독 만나고 싶었던 문학을 사랑하던 친구가 있었다. 30대 중반 절친했던 친구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 친구 생각이 더욱 간절했는데 이미 그 친구는 30대에 접어들기도 전에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차라리 찾지 말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우리 사람의 삶이란 그렇게 짧은 것 아닌가 생각하며 떠올렸던 나무가 주목이었다. 비록 주목은 내 곁에 없지만 구상나무는 주목과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인고의 세월을 그 한 자리에서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주목처럼, 구상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고 싶다.

a 고목을 의지해서 덩굴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고목을 의지해서 덩굴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 김민수

오랜 세월 푸른빛과 웅장함을 자랑하다 썩어져 가는 나무들을 보면 숙연해 진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썩고 또 썩어가면서 이제 다른 푸르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는 모습, 포기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나누어주고, 포기함으로 그는 또 다른 모습 안에 들어있다.
불교에서의 윤회, 기독교에서의 거듭남의 진리가 이 안에 들어있는 것이 아닌지.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 그 곳에서 온 삶을 살아가고, 보이지도 않는 그 깊은 땅속에 뿌리를 내린 만큼만 자라나는 나무, 그 오랜 인고의 세월도 때가 되면 미련없이 훌훌 벗어버리고 마감할 줄 알며, 마감한 후에는 미련없이 자신을 버림으로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삶의 지혜를 간직한 나무를 보면 '나도 저 나무처럼 살고 싶다. 그래서 새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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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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