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질경이우리꽃 자생화
"심심한 데 한번 붙으까?"
"니 또 어거지 부릴라카모(부리려면) 아예 안 붙을끼고."
"아이다. 요번에는 내도 이길 수 있다."
"좋타. 인자 진짜 마지막이다. 알았제?"
"됐다. 자, 니가 먼저 댕기봐라."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 곳곳에는 마치 화살 같이 가느다랗고 길쭉한 줄기를 뽐내는 질경이가 무척 많았어. 그 중 줄기가 칡넝쿨처럼 제법 질긴 질경이도 있었어. 그 질경이는 쌀밭등과 우리 마을의 경계에 놓여 있는 철로 주변에 특히 많았지.
그 철로는 마치 성주사 못둑처럼 큰 둑 위에 레일이 두 줄로 나란히 뻗어 있었어. 학교를 마치고 도시락을 달그락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너나 할것없이 지게를 지고 소를 앞장 세워 철로로 향했어. 상남에서 마산, 상남에서 진해로 가는 그 철로 말이야.
우리들은 철로가 놓인 그 둑을 철둑이라고 불렀어. 그 철둑 주변에는 소가 좋아하는 연한 풀이 무척 많았지. 그런 까닭에 철둑은 우리들이 소를 먹이고 소풀을 베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어. 또한 마땅한 놀이터가 없었던 우리들에게 철둑은 훌륭한 놀이터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고.
당시 우리들은 소풀이 많은 곳에 소를 매어놓은 뒤 소풀을 벴어. 그리고 이내 소풀을 한 바지개 가득 벤 뒤 철로 위에 올라가 놀았지. 철로 주변에 깔린 납짝한 자갈을 주워 논수제비를 날리기도 하고, 철로 양쪽에 맨발로 올라서서 허수아비처럼 양팔을 벌리고 누가 누가 더 멀리 가나 소풀내기를 하기도 했어.
그렇게 놀다가 문득 기차가 올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되면 레일에 귀를 갖다댔어. 오뉴월 햇살을 받은 레일은 제법 뜨거웠어. 우리들은 그 레일에서 가느다란 울림이 느껴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기차가 오고 있다는 것을 금새 눈치 챘지. 그리고 그때 상남역을 바라보면 빗금이 빨갛게 그어진 푯대가 이내 철커덕, 하면서 아래로 내려졌고.
"퍼뜩 숨어라. 기차가 온다카이."
"숨기는 와 숨노? 머슨 죄로 지었나. 숨구로(숨게)."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저 철길 건널목 밑에 숨자 이 말 아이가."
"니 그라다가 기차 불똥이 떨어지모 우짤라꼬?"
"니 가시나 아이제?"
그랬어. 그 철길 중간 중간에는 시내를 가로지르는 건널목이 있었어. 그 건널목 이음새 양쪽에는 아이들이 두세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있었고. 기차가 지나갈 무렵이 되면 우리들은 그 조그만 공간에 귀를 막고 엎드려 있었어. 조마조마한 마음을 옭좨며 기차가 어서 지나가기를 학수고대하면서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런 행동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어. 하지만 당시 우리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 누가 더 머스마다운지에 대한 기준으로 삼았지. 또한 그렇게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그 건널목을 누가 더 빨리 건너는가, 소풀내기도 했고. 그중 가장 아찔했던 내기는 건널목 위에 걸린 레일 위에 맨발로 올라가 양팔을 벌리고 걷는 일이었어.
"아이구! 저 넘의 손들이 죽을라꼬 아예 날로 받았나? 그라다가 기차라도 오모 우짤라꼬 그라노. 퍼뜩 안 건너오고 뭐하노."
"튀라. 잡히모 골로(큰일) 간다."
"소하고 소풀은 우짜고?"
"일단 튀고 보자."
그랬어. 레일이 걸린 그 건널목에서 노는 일은 참으로 위험했어. 자칫 잘못하여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는 순간이면 금새 건널목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었지.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은 철로에서는 놀아도 레일이 걸린 건널목에서는 절대 놀지 못하게 했고. 하지만 어르신들이 그렇게 혼을 내어도 건널목에 대한 우리들의 묘한 호기심은 막을 수가 없었어.
어! 이야기가 너무 엉뚱한 곳으로 흘렀나. 각설하고. 그래. 우리들은 마을 어르신들에게 그렇게 혼땜을 하고 난 뒤에서야 질경이 줄기를 가지고 놀았어. 질경이 놀이는 질경이 줄기를 마주 걸고 서로 자기 앞으로 당기는 놀이야. 이 놀이는 질경이 줄기가 먼저 끊어지는 쪽이 지는 놀이였지. 특히 풀숲에서 잘 자란 살찐 질경이 줄기는 아주 약했어.
그래서 우리들은 주로 철로 주변의 자갈밭 사이에 나 있는 빼빼 마른 질경이 줄기를 꺾었어. 그 질경이 줄기는 가늘면서도 소심줄처럼 제법 질겼어. 한 가지 재미 있는 것은 아무리 질긴 질경이 줄기라 하더라도 서로 걸고 당기면 반드시 어느 한쪽이 끊어지게 되어있다는 거야.
그때 어머니께서도 가끔 질경이 잎사귀를 따러 나오기도 하셨어. 어머니께서는 주로 풀밭에서 자란, 잎사귀가 상치처럼 제법 넓찍한 그런 질경이 잎사귀를 따셨어. 그리고 우물물에 깨끗하게 헹군 뒤 저녁상에 올렸지.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 질경이 잎을 손바닥 위에 척 올려놓고 밥 한숟갈과 된장을 조금 올린 뒤 한입 가득 집어넣었어.
"질갱이(질경이) 잎사구(잎사귀) 그기 머슨 맛이 있습니꺼?"
"와? 니도 묵고 싶나?"
"그기 아이고예."
"니 이기 몸에 울매나(얼마나) 좋은 줄 아나? 이거로 묵으모 오줌도 잘 나오고, 설사병도 멈춘다 아이가."
"오데 그 거뿐이가. 어지럽고 머리가 아픈 데는 직빵(금새 효과를 나타냄) 아이가. 얼라(아기)들 열 내리는 데도 그만이고."
그래. 지금도 가까운 들판에 나가면 내 어릴 때 보았던 그 질경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단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질경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 같아. 풀숲에서 상치처럼 잘 자란 질경이 잎사귀를 따는 아낙네도 없고. 게다가 질경이 줄기를 꺾어 마주 걸고 잡아당기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어.
그런 생각을 하면 웬지 쓸쓸해. 그래. 요즈음 사람들에게 그런 추억 하나 쯤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운 추억을 그렇게 묻어버리고 싶지 않아. 그래서 지금 질경이 잎사귀를 따고 있어. 그때 내 어머니께서 그랬던 것처럼 물에 헹궈 쌈을 싸먹기 위해서 말이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