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지지한 것 좀 사줘라"

500원 짜리 조립식 장난감에 얽힌 추억

등록 2003.06.13 16:27수정 2003.06.1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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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요즘 여섯 살 짜리 막내아들은 조립식 장난감에 푹 빠져있습니다. 좀 좋은 조립식장난감을 사서 오래 가지고 놀면 좋겠는데 그건 싫다고 합니다.


"아빠, 나 오늘 승희상회가면 안돼?"
"거기가면 뭐하게?"
"지지한 것 좀 사오게......"

승희상회는 우리 동네 개구쟁이들의 집합장소요,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는 자그마한 슈퍼마켓입니다. 100원 짜리부터 비싸게는 1000원 짜리 까지 꼬마손님들을 겨냥해서 물건을 떼어오는 주인 아주머니의 눈썰미가 좋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꼭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거든요.

김민수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유치원 가는 아들에게 500원 짜리 하나를 쥐어줍니다.

"용휘야, 올 때 하나만 사오는 거야. 그리고 차 조심해서 와야한다."

기분이 좋아진 아들은 싱글벙글하며 유치원으로 갑니다. 유치원을 마치고 신나게 조립식 장난감을 들고 온 아들은 기분 좋게 "아빠, 나 지지한 것 사왔다"합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나는 아들이 만드는 것을 지켜보거나 아니면 거의 만들어주다시피 해야 합니다.


김민수
500원 짜리 조립식 장난감에는 설명서가 들어있고 제가 보기엔 허술하기 짝이 없는 프라스틱 부품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순서에 따라 만들어가다 보면 어김없이 로봇이 완성됩니다.
'참 재주도 좋다'
이것이 그 물건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입니다.

김민수
그 동안 아들과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500원 짜리 로봇들입니다. 내가 보기엔 지지한 것이지만 막내가 좋다고 하니 비싼 것 몇 번 가지고 놀다가 관심 밖으로 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 것은 나는 막내에게 '지지한 것'이라고 가르쳐 준 것인데 막내는 지지한 것 그러면 으레 승희상회에서 사는 장난감을 말하는 줄 압니다.




김민수
조립된 로봇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값에 비해 무진장 크게 느껴졌던 조립식장난감이 들었던 상자를 들고는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뻐했습니다. 정성을 들여 칼로 잘라내고 본드로 붙여가며 종일 씨름을 하다가 완성을 시키면 친구들과 누가 잘 만들었는지 시합을 했죠.

값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 지금의 500원 짜리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백원이나 2백원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싼 것이니 부품이 정교할 리가 없었고, 간혹 끼우는 곳이 부러져 버리면 아예 만들기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구슬이나 딱지, 조립식 장난감 따위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김민수
그런데 중3때 친하던 친구하나가 제대로 된 조립식오토바이를 만들어서 집에 장식을 해놓았는데 얼마나 멋진지 용돈을 모아 제법 정교한 부품으로 되어있는 조립식오토바이를 샀습니다. 조립식 장난감의 맛을 알게 된 것이죠.

오토바이를 거울집에 가서 유리상자에 담아달라고 하여 장식을 해 놓은 이후 한 동안 조립식 기타에 열중했던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말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진짜 기타를 사기까지 조립식 만들기는 취미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막내가 지지한 500원 짜리 조립식 장난감을 사와도 뚝딱 만들어 줍니다. 만들어 주고는 한 마디 합니다.

"용휘야, 이젠 지지한 것 말고 제대로 된 것 사서 한번 해 보자."

이젠 내가 만들고 싶은 거라는 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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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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