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모습이 좋더냐? 나를 닮고 싶으냐?"

해송에게 듣는 삶의 소리

등록 2003.06.19 12:46수정 2003.06.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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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폭풍전야의 고요함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숨어 있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작은 섬들은 오랜 세월 모진 바람을 다 이기고 우뚝 서 있다. 그 자리에 늘 그렇게 서 있다는 것이 너무도 고맙다.


폭풍전야의 고요함 속에서도 전혀 흔들리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거친 파도를 온 몸으로 받아들여 혼연일체가 될 각오로 우뚝 서 있는 작은 섬의 비장한 각오를 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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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거제도에 들렀다 외도에 들어가는 길, 배가 해금강에 멈추어 섰다. 갑판 위에 올라서 보니 거대한 바위산들이 우뚝 서서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우뚝 서서 "너희들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냐?"고 호통을 치며 압도하는 것만 같다.

높은 바위섬들도 장관이었지만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오랜 세월 빗물에 씻기고 또 씻기어 흙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바위에 뿌리를 내린 해송이었다.

해송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지만 척박한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작지만 삶의 내력을 볼 수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해송들의 모습 앞에서니 좋은 조건들을 풍족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엄살을 떨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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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해송은 마음 속 깊이 남아 있었다.


해송은 이렇게 나에게 묻는다.

"너, 내 모습이 좋더냐? 나를 닮고 싶으냐?"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할 만큼의 나무가 되기 위해 겪어야 했을 수많은 세월들을 보지 않고 감히 "그렇다!"고 대답한다는 것이 너무도 경솔한 대답인 듯하여 머뭇거려진다.

지금 눈에 보이는 저 모습을 만들기까지 해송이 겪어야만 했을 그 순간들을 나도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맞이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저 해송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감히 품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는 고요했다. 그러나 이 고요함 속에는 태풍 소델로의 북상으로 긴장감이 팽팽하게 맴돌고 있다.

해송은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들에게 평안할 때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태풍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단 한 번도 우리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어떻게 자신이 그 고난들과 맞서 싸웠는지를 단 한 번도 보여주질 않았다.

아니, 그 순간에 인간은 감히 가까이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외도에서 돌아오는 길, 해금강의 해송을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며 해송이 들려주는 삶의 소리들을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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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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