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어가고 있는 풍개이종찬
"으~ 턱쪼가리(턱)까지 찌리하다."
"그라이 그 시큼한 거로 말라꼬(왜) 따묵노?"
"아나! 니도 한 알 묵어봐라. 첨에는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시어도 자꾸 씹다보모 맛이 괘않타."
내 고향 마을 주변에는 50미터 남짓한 산들이 띄엄띄엄 황소처럼 엎드려 있었어. 그 산들은 멀찍이 보이는 불모산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 가시나 젖꼭지처럼 볼록 솟은 시루바위를 유모로 삼아 젖을 빨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간혹 바람이 불 때면 마치 먹이를 받아먹는 제비새끼처럼 재재거렸고.
당시 내 고향집은 마을 한가운데 위치가 제법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어. 우리집앞에는 도랑이 흐르고 있었고, 도랑 앞으로는 다랑이논이 계단을 이루고 있는 산수골이 환하게 내려다 보였지. 내 고향집 바로 옆집은 큰집이었고, 그 큰집 앞에는 공동우물이 하나 있었어.
산수골 곁에는 학교 운동장처럼 평평한 마당뫼가 있었지. 그 마당뫼 뒤 편에는 또 하나의 야트막한 산이 상남과 진해를 잇는 철로를 꼬리에 물고 있었고. 우리는 그 산을 앞산이라고 불렀어. 우리집 서쪽에 붙은 앞산가새가 아닌, 앞산 말이야. 왜 그렇게 구분해서 불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다만 앞산과 앞산가새는 분명 그 쓰임새가 달랐다는 것만은 알 수 있어. 앞산가새는 산꼭대기 뒤 편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거의 없었지. 산 전체가 모두 다랑이 밭이었어. 하지만 앞산은 소나무와 물푸레나무 등이 빼곡히 들어차, 말 그대로 산이었어. 다랑이밭도 산 발꿈치 근처에 서너 개 널부러져 있었고.
앞산은 산 너머에 있는 가음정이라는 마을과 우리 마을을 경계로 동과 서로 길게 드러누워 있었어. 동쪽으로는 불곡사가 있는 비음산 자락과 철로를 경계로 떨어져 있었고, 서쪽으로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과수원과 공동묘지를 사이에 두고 앞산가새와 맞붙어 있었지.
"올(오늘) 너거 아부지 과수원에 나가셨나?"
"울 아부지 올은 상남장에 가시고 안 계신다. 근데 와?"
"그라모 너거집 과수원에 가서 땅에 떨어진 풍개 몇 개만 주워 묵자. 떨어진 풍개로 가만히 놔두모 뭐할끼고."
"그라모 퍼뜩 가자. 울 아부지 오시기 전에."
그 앞산에는 서너 마지기 될까 말까한 오가네 과수원이 하나 있었어. 그 과수원에는 포도나무와 복숭아나무 그리고 자두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우리 마을에서 대지주에 속하던 그 오가네에는 내 또래에 해당되는 동무가 한 명 있었어. 마을 어르신들이 과수원집 아들이라고 부르는.
그날, 우리들은 과수원집 아들을 앞장 세워 앞산에 있는 그 과수원으로 향했어. 과수원 입구에는 당연히 과수원집 아들이 망을 섰고, 우리들은 과수원으로 들어가 가지가 부러질 것을 퍽이나 조심하면서 푸릇푸릇한 풍개를 주머니 가득 따 넣었지. 풍개? 그래. 우리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자두를 풍개라고 불렀거든.
근데 그 풍개는 너무나 시었어. 떫은 맛까지 감돌았지. 푸릇푸릇한 그 풍개를 한입 베어물면 이내 양 턱이 알싸해지면서 입에 침이 절로 가득 고였어. 우리들은 만 가지 인상을 다 찌푸리면서도 그 시큼한 풍개를 먹기에 바빴어. 그러다보면 어느새 입안 가득 향긋한 풍개향이 감돌았지. 제법 달착지근한 맛도 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