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과 맞짱뜰 준비는 돼 있나?

[取중眞담] '중도와 균형' 노선의 새 인터넷신문 발의총회

등록 2003.06.20 06:25수정 2003.06.2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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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도와 균형을 표방하는 새로운 인터넷신문이 19일 서울 4.19 도서관에서 발의인 총회를 가졌다.

중도와 균형을 표방하는 새로운 인터넷신문이 19일 서울 4.19 도서관에서 발의인 총회를 가졌다.

오마이뉴스에서 미디어 분야를 주로 취재하는 손병관 기자입니다.

'미디어'라고 하면 예전에는 신문과 방송, 통신이 전부였지만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인터넷을 무시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런 경향은 작년 대통령 선거를 지내면서 더욱 심화됐는데, 현장기사에 강한 <오마이뉴스>를 필두로 해서 '깊이 있는 분석'을 내세우는 프레시안, 우익적 컬러의 독립신문과 개혁논객들이 주로 모인 서프라이즈가 대선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자 이제는 너도나도 인터넷신문을 창간하려고 합니다.

한국언론재단 웹사이트(www.kpf.or.kr)에 링크된 인터넷 신문이 벌써 101개나 되는데, 앞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도 인터넷신문을 만든다고 하니 가히 '인터넷 백가쟁명'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너도나도' 중에는 어제(19일) 서울 평동 4.19 도서관에서 발의인 총회를 가진 중도성향의 인터넷신문 'UpKorea'도 포함됩니다만, 모인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너도나도'라는 표현이 송구스러울 정도입니다.

제가 4.19 도서관에서 만난 분들만해도 경실련을 이끌고 있는 서경석 목사, YS정권때 각각 청와대 사회복지수석과 교육부 장관을 지낸 박세일 서울대 교수와 안병영 연세대 교수, 김진현 전 문화일보 사장,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 이인호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김규칠 불교방송 사장 등 우리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109명의 발의인 명단에는 소설가 박완서와 연극배우 박정자,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 이형모 시민의 신문 사장, 장명수 한국일보 이사, 조순형 민주당 의원 등의 이름이 눈에 띄더군요.


지난 1년간 조선일보에 한 달에 한번씩 줄기차게 칼럼을 써온 고려대 서지문 교수(영문학)도 오셨기에 모임 끝나고 인사나 드리려고 했는데, 중간에 가셔서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famous'하되 'notorious'하지 않은 사람들 중심으로 발의자 명단을 구성했다는 게 운영위원회의 설명인데, 명단을 본 제 느낌은 뭐랄까요? "적당히 보수적인 색채를 갖되 그 동안 가능한 욕 안먹고 종이신문에 칼럼 쓰신 분들이 다 모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도와 균형'을 표방한 인터넷신문에서 100명 이상의 '중도성향 발의인'을 이 정도 모은 것은 정말 대단한 실적이 아닌가요? 그러나 앞으로 500명까지 발의인을 확장하다 보면 '중도와 균형'에 부합되지 않는 분들도 더러 섞여 신문의 정체성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들더군요. 인터넷신문의 산파 격인 서경석 목사는 "우리와 코드가 맞는 전문가들을 많이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으니 일정 숫자까지는 인터넷신문의 창간취지를 훼손하는 인사는 포함되지 않을 것 같군요.

각설하고, 이분들이 이날 모여서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는 어제부터 신문, 방송에서 충분히 소개됐기에 저는 주로 현장 분위기와 제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언론 보도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책임있는 인터넷신문'의 임시홈페이지 'www.upkorea.ne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발의자 대회에 앞서 운영위원들이 약식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20여분간 꽤 많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박세일 교수는 오프라인 신문을 젖혀놓고 온라인신문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정치인들중에서 유일하게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포함된 이유를 묻자 서경석 목사는 "조 의원은 바른 말 하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런 분이라면 정당은 상관없다. 모시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답했습니다. 조 의원은 '튀는 언사'로 종종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중도성향의 오피니언 리더들로부터 점수 하나는 확실히 딴 느낌입니다.

기자회견 후 곧바로 총회가 시작됐습니다. 김진현, 송월주, 이세중, 이인호 네 분이 나와서 격려사를 하셨는데 "부패하지 않은 보수와 폭력을 거부하는 진보가 손을 잡아야한다"(김진현) "지역갈등, 계층갈등에다가 대선을 지내면서 세대갈등이 증폭됐다"(송월주) "당면 문제는 지성 대 폭력의 싸움"(이인호) 등의 말이 인상이 남았습니다.

한 가지 토를 달자면, 보통 이런 모임을 하면 명망가들이 청중들을 상대로 '한마디'를 하는데 '인터넷신문'을 만들려는 분들이 너무 형식에 얽매이는 게 아닌가 하는 '발칙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이날 행사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다면 격려사 도중에 "공자님 말씀 접고 본론만 쏘라"는 '무례한 네티즌들'의 질타가 쏟아지지 않았을까요? 네티즌들의 '가벼운 문화'에 우려를 느끼는 분들이 많이 모였으니 제가 이런 지적을 하면 이분들도 할 말이 있겠죠.

이후 자유토론이 이어졌는데, 모임에 오신 분들은 "중도를 표방하되 진보와 보수의 양 흐름을 아우르자"(이용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보수와 진보, 세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매체가 없어서 아쉬웠다"(마인섭 성균관대 정치학 교수)며 '중도와 균형'을 유달리 강조하셨습니다.

홍원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경우 네 학기 지나면 정년퇴직인데 "앞으로 세대들이 어떤 세상에 살지 너무 걱정이 돼서 잠을 못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런 장소에 잘 안 나오는 분이 오실 정도면 세상 돌아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또 하나, 참석자들은 이 신문을 통해 과연 젊은 세대들과 대화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날 참석한 55명중에 가장 젊은 사람이 41세의 신지호 KDI 북한학 연구위원이니 이른바 '붉은악마'와 '노풍'의 주역이었던 2030세대들은 전무한 셈입니다.

운영위원인 박은정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는 자신이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더 익숙한 세대'라고 토로하고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습니다. 사회를 본 이병혜 KBS 시사앵커도 "컨텐츠를 어떻게 채우느냐가 문제이다. 젊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방향을 세우자"고 했는데, 일단 이 신문의 핵심컨텐츠는 논설과 칼럼, 정론이 될 것 같습니다. 발로 뛰는 기사와 속보보다는 '무게있는 지성의 목소리'로 승부를 본다는 구상인데, 세대를 아우르는 울림, 특히 네티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2030세대들에게 어필할 만한 상품을 내놓을 지는 두고봐야겠습니다.

8월15일에 창간준비호를 내고 내년 1월 정식으로 창간하기 전에 젊은이들과 청년단체들을 적극 참여시키고, 기자들도 새로 뽑는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질적 변화는 있겠죠.

아무래도 이 인터넷신문을 준비해온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서경석 목사 얘기를 더 해야겠습니다. 서 목사는 이날 모임에서 몇 가지 중요한 얘기를 했습니다.

첫째는 인터넷신문에 '바른 말 하는 용기를 갖자'는 거죠. 말 한 마디에 여러 집단에서 떡칠을 당하는 현실이지만, 당당하게 할 말을 하고 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바른 말'인지는 좀더 협의를 한다고 했습니다. 대신, 인터넷신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열린 민족주의' 같은 표현들이 안병영 교수가 기초한 발기 취지문에 나옵니다.

둘째는, 센세이셔널리즘의 배격입니다. 원색적으로 조회수를 높이지 말고 정석으로 승부를 보는 신문을 만들자는 겁니다.

타이틀을 섹시하게 뽑고 논쟁적인 기사를 많이 쓰기로 악명 높은 오마이뉴스류의 신문을 거부하자는 제안으로 들려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그래서 또 한편으로는, 안심(?)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신문과는 지향이나 컨셉이 차이가 많아서 중도균형의 이 신문에 빼앗길 독자들은 많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셋째, 이번에 만드는 신문은 단순한 인터넷 신문이 아니라 나라를 살리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서 목사는 "신문의 목적은 구국운동이지, 경제적 성공이 아니다"고 못박았습니다. 80년대 말 경실련으로 1세대 시민운동의 시대를 열어 젖힌 서 목사가 인터넷신문을 매개로 새로운 시민운동을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게 저의 해석이고 상당수 네티즌들도 고개를 끄덕이시리라 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문의 상업적 성공을 자신하는 눈치입니다. 나중에 사업계획을 설명하면서 나온 얘기지만, 지배주주(51%)가 되는 발기인들로부터 일단 자본금 10억 원을 만든 후 나머지는 건전한 기업 및 일반인에게 지분을 팔아서 최고 27억 원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대한 포부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틀림없이 3∼4년 후에 오마이뉴스처럼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먼 오마이뉴스 사정을 아는 저로서는 이 순간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이쯤에서 이날 행사를 취재한 제가 새로운 인터넷신문에 대해 몇 마디를 해야겠습니다. 저도 오마이뉴스에 만 3년간 글을 쓰면서 네티즌 정서나 인터넷 문화에 대해 나름대로 파악한 게 있으니 문외한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먼저, 네티즌들과 맞짱뜰 준비가 된 필진들이 확보되어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50대 이상이 대부분인 발의인들은 인터넷이라는 툴에 익숙하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1인 미디어인 '블로그'를 도입해서 회원들에게 개인홈페이지도 제공한다고 했는데,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이들사이에서도 앞으로의 변화발전 방향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블로그'를 참석자 몇 명이나 제대로 이해했을지?

"신문을 조용한 마음으로 펼쳤다가 덮을 때는 마음이 심란하고 어지럽다"(박청수 원불교 강남교당 교무) "요새 뉴스나 신문을 보면 답답하다" (오경환 신부)는 얘기 속에서 오프라인 신문에는 익숙하면서도 펄펄 뛰는 인터넷뉴스와 네티즌 반응에는 둔감한 5060세대들의 현주소가 보였습니다. 스스로 네티즌이 되지 못하고 인터넷 문화를 즐기지 못하는 분들이 인터넷신문을 주도한다면 그 결과는 분명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장오현 동국대 경제학 교수가 "젊은 세대와 얼마나 솔직하게 얘기하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인터넷신문이 계몽하는 자세 이전에 젊은이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공론의 장으로 만들자"고 했는데, 정말 새겨들어야 할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째는 인터넷신문이 갈등의 원인은 이것저것 짚을 수 있어도 대다수가 납득할 만한 대안을 찾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조중동의 대립을 어떻게 해소할지, NEIS 시행을 둘러싼 교육계의 갈등은 어떻게 달랠지, 조흥은행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바른 대안인지, 새만금 사업을 계속 하는 게 좋을 지, 대북송금 특검 수사는 연장되어야 할 지... 앞으로 인터넷신문이 풀어가야 할 숙제는 정말 무궁무진하군요.

그러나 새로운 인터넷신문, 나아가 신문이 표방할 중도성향의 새로운 시민운동이 사회 갈등에 대한 설득력있는 처방을 내놓을 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박세일 교수가 인터넷신문에 대해 쓴 소논문에 보면 정치 파트에서 "여야 모두 국민통합과 민생개혁을 위한 비전과 전략, 문제의식이 없다. 그래서 국민은 더욱 걱정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여기저기 강연 다니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80년대에 장외에서 정치판을 놓고 '3김은 낚시나 가라'는 말 등으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 인기를 등에 업고 국회에까지 들어갔는데, 결국 재벌총수의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했다가 조용히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김 교수는 여전히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정치를 비웃는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러 다닙니다. 신문에 글을 쓰는 지식인들은 구구절절 바른 말만 하는데, 충언을 무시한 정치인들이 '엉덩이에 뿔난 못된 송아지'로 전락한 것인지 네티즌들에게 묻고싶군요.

마지막으로, 명망가 위주로 출발한 인터넷신문이 결국 엘리트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함만 훑어봐도 입이 쫙 벌어지는 발의인 명단을 보며 '구색은 제대로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른바 밑바닥 정서와 유리될 때 공론(公論)이 아닌 공론(空論)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우려입니다.

한 가지 웃지 못할 해프닝을 소개하죠. 이날 정치학을 전공하는 모 교수님이 오셨는데, 사회자가 한마디하라고 하자 이분 말씀이 "XXX 교수가 불러서 참여했다. 어르신이 명령을 주면 할 도리는 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순간, 저는 아연실색했고, 그 얘기를 듣던 일부 참석자들도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은사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한 해당교수는 은사가 모임에서 빠지면 '동반 탈당'하는 구도인지?

막판에 와서 제 글이 너무 비판적으로 흐른 것 같네요. 중도성향 인터넷신문에 대한 오마이뉴스 기자의 견제구가 아니라 새로운 인터넷신문의 대중성 확보를 위한 고언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하네요. 중도성향 인터넷신문이 쑥쑥 커서 조선일보와 안티조선 진영의 허심탄회한 대화의 자리도 마련하고 그러면 좋지 않을까 하는 미디어 취재기자로서의 바람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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