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편지 <비비추>

부처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등록 2003.06.20 09:50수정 2003.07.0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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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3년 6월 18일 모후산의 비비추

2003년 6월 18일 모후산의 비비추 ⓒ 김해화

a 2003년 6월 18일 모후산의 비비추

2003년 6월 18일 모후산의 비비추 ⓒ 김해화

a 2003년 6월 18일 모후산의 비비추

2003년 6월 18일 모후산의 비비추 ⓒ 김해화

그동안 일 때문에 며칠 산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큰 바람이 온다는데 비바람 시작하기 전에 가까운 산을 한 바퀴 돌아와야지 하며 서둘러 집을 나서는데, 벌써 빗방울이 듣습니다. 일반도로로 가면서 가까운데서부터 들러가려던 생각을 바꿔 바로 고속도로로 들어섭니다. 주암 나들목에서 빠져 영천사 가는 길부터 둘러볼 셈입니다. 비는 오락가락하고 후텁지근 한 것이 정말 한바탕 하기는 할 모양입니다.

주암에는 아직 비가 오지 않습니다. 산에는 오르지 않고 차가 다닐 수 있는 길 주위를 둘러볼테니 점심준비를 할 필요가 없어서 광천 장날이라 제법 사람들이 북적대는 네거리를 그냥 지나칩니다. 영천사 가는 길로 들어서자 길가의 무덤에 핀 털중나리가 눈에 띕니다. 마음이 바빠 그냥 지나칩니다. 큰크리트 포장길을 벗어나 비포장길로 들어서는데 가슴이 내려 앉습니다.

걱정했던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몇넌 전부터 영천사에서 길가에 제초제를 뿌려대더니 올해도 또 약을 친 모양입니다.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어야할 개망초, 까치수영, 엉겅퀴, 비비추, 원추리, 꿩의다리, 돌가시나무, 싸리나무들이 시뻘겋게 말라죽어 있습니다. 쑥부쟁이. 벌개미취, 닭의장풀, 참취, 말라죽은 풀들 속에서 낯익은 모습들이 발견됩니다. 부처님 정말 왜 이러십니까?

a 2003년 6월 18일 제초제가 뿌려진 길

2003년 6월 18일 제초제가 뿌려진 길 ⓒ 김해화

이 길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놓여진 길이라고 합니다. 모후산 북쪽지역의 가파른 산등성이를 따라 순천시 주암면과 화순군 동복면을 이어주는 길이었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거의 쓰이지 않아서 땔나무를 실은 소달구지나 경운기가 가끔 다니고 밤이면 산짐승들이 오가는 길이었습니다.

비비추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분류 : 백합과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
자생지 : 산지의 냇가
크기 : 높이 30∼40cm

장병옥잠(長柄玉簪)·장병백합(長柄百合)·옥잠화라고도 한다. 산지의 냇가에서 자란다. 높이 30∼40cm이다. 잎은 모두 뿌리에서 돋아서 비스듬히 자란다. 잎은 달걀 모양 심장형 또는 타원형 달걀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고 8∼9맥이 있다.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지만 다소 물결 모양이다.

꽃은 연한 자줏빛으로 6∼8월에 피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총상으로 달리며 꽃줄기는 길이 30∼40cm이다. 포는 얇은 막질이고 자줏빛이 도는 흰색이며 작은꽃자루의 길이와 거의 비슷하다. 화관은 끝이 6개로
갈라져서 갈래조각이 약간 뒤로 젖혀지고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길게 꽃 밖으로 나온다.

열매는 삭과로서 비스듬히 서고 긴 타원형이다. 종자는 검은색으로서 가장자리에 날개가 있다. 연한 순을 식용하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한국·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비비추(for. alba)라고 한다.

<2003.6.18. 순천시 주암면 모후산에서 촬영>
그동안 길가에는 자연에 의한 생태계 복원이 이루어져서 철따라 갖가지 귀한 우리꽃들이 피고지는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특별보호수종인 히어리가 꽃철이면 꽃터널을 이루기도 했던 길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부터 겨우겨우 이름만 지니고 있던 영천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 길이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중간 콘크리트 포장을 하고,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주암면 쪽 길 입구에서 절까지의 생태계가 짓밟히더니, 그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에게는 한 해에 몇 번씩이나 제초제를 뿌려대고 있습니다.

차가 다니고 사람이 다니면 식물들은 스스로 비켜서서 길을 내어줍니다. 차가 다니고 사람이 다니는 동안에는 길은 언제나 길로서 유지될뿐만 아니라 차와 사람이 많이 오가면 오가는 만큼 길은 저절로 넓어지고 뚜렷해지지요. 영천사 가는 길에는 하루에 몇 번씩이나 차가 오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길에 차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다보면 절 이름을 단 승합차가 몇 번 오르내리고, 1년에 한 두번 고급승용차 만나고, 절과는 상관 없는 트럭 몇 대 오르내리는 길, 그 길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산 언덕에까지 제초제를 뿌려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제초제를 뿌려도 풀들은 되살아납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그 종류가 줄어들어 생태계가 단순해집니다. 길가에 발디딜 틈이 없던 벌개미취 밭은 솎아낸 듯이 드문드문해졌고 물매화 밭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타래난초도 눈에 띄지 않고 지천이던 산비장이는 남아서 꽃을 피우는 것이 한두 개체에 불과합니다. 길가의 나도송이풀과 뻐꾹나리는 올해를 무사히 넘길지 걱정됩니다.

부처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풀 한포기, 꽃 한송이도 다 목숨가진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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